[단독]지상욱 지지자들 '금품 살포' 수사 지연..총선 '봐주기' 의혹

김형규 기자 2016. 9.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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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선거 캠프와의 연관성 보여주는 증거 묵살 정황 드러나
ㆍ피의자 압수수색 두달간 뒷짐…경찰 수뇌부 개입 주목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지상욱 대변인의 지지자들이 총선 당시 금품을 살포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지연하는 등 부실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다. 경찰은 금품 살포가 선거캠프와 관계없이 이뤄진 일이라고 결론내렸지만 후보나 캠프와의 직접 연관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묵살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또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이 두 달 가까이 지연되는 등 ‘봐주기’를 했다는 의혹이 검찰과 경찰 안팎에서 일고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해 12월 지상욱 의원 지역구(서울 중구·성동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지상욱 후보를 지지해달라”는 취지로 여성 당원들에게 현금과 목도리를 돌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새누리당 당원 홍모씨(62)와 고모씨(55)를 기소 의견으로 지난 6월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경찰은 이들이 정식 선거운동원이 아니고 캠프와 관계없이 자체 판단으로 범행했다며 “지상욱 당선자는 사건과 관련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경찰은 당시에도 홍씨와 고씨가 지 의원과 연관이 깊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수사자료에는 이들이 선거 당시 하루에도 2~3차례씩 지 의원과 통화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홍씨는 올해 1월 새누리당 지역구 당원들에게 ‘조직총괄본부장’ 명의로 단체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이때는 지 의원이 이미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시점이다. 홍씨는 2015년부터 지 의원이 관리하던 봉사단체인 ‘중구무지개행복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물려받았다. 경찰 주장대로 홍씨와 고씨가 지 의원의 단순 지지자이고 자발적으로 금품을 돌렸다고 보기 힘든 대목이다. 이에 대해 오창배 남대문서 수사과장은 이날 “금품을 살포한 이들이 캠프와 연관돼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것만으로 지 의원의 금품 살포 개입 여부를 추궁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수사 절차도 석연찮은 점이 여럿이다. 경찰은 금품을 받은 여성 당원의 진술을 올 3월 초 확보했다. 그러나 이 여성에 대한 통신 압수수색영장은 3월 말에 신청해 받았다. 더구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된 홍씨와 고씨에 대한 통신영장은 4월13일 선거가 끝나고도 한 달여가 지난 5월 중순쯤 신청해 받았다. 통상 경찰은 금품 수수 등 구체적 범죄 혐의가 포착되면 곧바로 통신내역을 조회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이를 통해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되면 계좌 추적과 사무실 압수수색 등으로 더 확실한 증거 확보에 나선다. 그러나 남대문서가 통신영장 신청을 뒤늦게 하면서 경찰은 추가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 지 의원 측이 선거일 이틀여 뒤 선거사무실을 폐쇄하면서 경찰은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도조차 못했다.

선거 사건 베테랑인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선거범죄의 경우 투표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면이 있지만 일단 선거가 끝난 후에는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선거가 끝나고도 한 달 넘게 압수수색영장 신청이 지연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에서도 “영장이 늦게 나온 탓에 증거가 다 사라져 아쉽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은 영장 신청은 경찰의 선거사범 수사지침과도 어긋난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말부터 총선이 치러진 올해 4월까지 여러 차례 문서를 통해 일선서에 “선거사범 수사는 공소시효가 6개월로 매우 짧고 수사 지연 시 상대 후보 측의 공정성 논란이 야기된다”며 신속한 수사를 강조했다. 서울경찰청은 선거 직후 “선거사무소 등이 해산 절차에 들어가므로 혐의 입증을 위해 압수수색 등을 신속히 진행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매뉴얼과 다른 ‘늑장 수사’ 의혹에 대해 오창배 수사과장은 “당시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자 진술밖에 없어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렸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뒤늦게 영장을 신청할 당시엔 새로운 증거나 진술이 확보됐는지 묻는 질문엔 “진술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답했다.

경찰 수뇌부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경찰청은 이번 총선 당시 정치인 등 주요 인사가 연루된 선거 사건의 경우 내사 착수 시점부터 수사 단계별로 진행 상황을 지방경찰청을 거쳐 경찰청까지 즉시 보고토록 일선서에 지시했다.

이번 사건에서 남대문서의 보고라인에 있는 서울경찰청 백승언 수사2계장과 김갑식 수사과장은 “총선 당시 보고받은 사건만 250건이 넘는다. 특정한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답변할 만큼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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