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가 무너뜨린 대학 교육의 다양성

천관율 기자 입력 2016. 8. 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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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생들이 대학 본관을 점거했다. 사흘째인 지난 7월30일, 경찰 1600명이 학내에 투입됐다. 전국의 주목을 끌면서 역풍이 불었다. 졸업생도 대거 가세해 재학생 편에 섰다. 8월3일 대학본부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싸움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한여름의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대표도, 조직도 없는 ‘달팽이 민주주의’의 승리 참조). 그러나 봄의 이야기는 정반대다. 2016년 봄에도 이화여대는 대학본부와 학생 측의 충돌을 겪었다. ‘봄’은 대학본부의 승리로 끝났다.

올여름의 이화여대를 달군 이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이하 평단사업)이었다. 취업 유경험자를 수능 대신 경력과 면접 등으로 선발하는 단과대학을 따로 설치하도록 하는 교육부 사업이다. 이화여대는 올해 처음 선발한 평단사업 선정 10개 대학 중 하나였지만, 반발에 밀린 학교는 재정지원 30억원을 포기했다. 지난봄의 이화여대를 휩쓴 이슈는 프라임 사업(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이었다. 노동시장 수요에 맞춰 대입 정원을 조정하는 교육부 사업으로, 학과들을 통폐합하여 정원을 감축하거나 인문계에서 이공계로 정원을 이동시킨다. 이화여대는 올해 5월 첫 선발한 프라임 사업 21개 대학에도 선정됐다. 평단사업 포기 선언이 나오고 이틀이 지난 8월5일 현재까지도 학생들은 농성을 풀지 않았다. 이들은 프라임 사업 추진부터 누적된 대학본부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총장 사퇴를 요구한다. 학생들에게 봄과 여름의 싸움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져 있다.

ⓒ연합뉴스 : 8월3일 저녁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학내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행진을 벌였다.

둘은 목적과 규모가 다른 사업이다. 특히 평단사업은 선취업 후진학 평생교육이라는 나무랄 데 없는 명분을 갖고 있어서 이화여대 학생들을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화여대 졸업장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싫어서 나선 싸움이라는 냉소적인 논평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학생들이 옳다. 평단사업과 프라임 사업은 큰 틀에서 보면 교육부가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 정책 꾸러미에 포함된 갈래다. 프라임 사업과 평단사업 외에도 ACE(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사업), CORE(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 등이 대학 구조개혁 정책에 포함된다.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구동 원리는 같다. 정책 목표를 달성할 동력은 ‘돈’과 ‘대학평가’라는 당근과 채찍이다. 교육부는 선정된 대학에 지원금을 안겨준다. 선정되려면 교육부 평가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각각의 사업이 각자 평가지표를 갖고 있고, 그와 별개로 ‘대학 구조개혁 평가’도 실시한다. 돈으로 유인하고 평가지표로 옥죄어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구조다.

파열음은 여기서 난다. 교육부 정책에 대학본부가 따라가려 하지만 학생과 교수 등이 반발하는 장면이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기업형 대학 경영의 대표주자 격인 중앙대는 지난해 봄, 교육부 정책보다 한발 앞서 학과를 전면 폐지하는 등 급진적인 구조 재편을 시도하다 교수들의 집단 반발에 물러섰다. 지난해 12월에는 경희대 부총장이 총학생회와의 면담에서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융합해 웹툰창작학과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국문과+전자전파과=웹툰과’ 공식은 교육부 정책을 추종한 엉터리 융합 시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숭실대·인하대·경성대·신라대·동의대·건국대·단국대·성신여대도 내홍을 겪었다.

그래서 큰 틀로 보면 여름의 이화여대에서 벌어진 평단사업 갈등은 오히려 지엽적인 충돌에 가깝다. 돈과 대학평가를 무기로 교육부가 주도하는 대학 구조개혁 흐름에, 기존 대학들이 저마다의 대응책을 모색하며 요동치는 모습이야말로 2016년 한국 대학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그리고 근저에는 한국의 고등교육이 직면한 구조적인 위기가 깔려 있다.

2016년 한국 대학은 ‘샌드위치 위기’에 처했다. 한편으로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닥쳐온다. 55만명 수준인 현재 대입 정원이 유지된다면 고교 졸업자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지는 역전이 2018년에 일어나고, 2023년께에는 대입 정원이 15만명 남아돌게 된다(위의 <표 1> 참조).

반대편에는 대졸자와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불일치)가 있다. 노동시장 수요와 대졸자 공급이 어긋나 있다. 인문 계열 졸업자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 오래고, 공학 계열 졸업자가 필요한 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4년까지 공학 계열 전공자 25만명이 부족한 반면, 인문 계열과 사회 계열에서는 53만명이 초과 공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청년실업률 9.2%는 통계 기준이 개정된 1999년 이후 최고치다.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떨어지다 보니 대학 졸업장의 가치도 낮아진다. 4년제 대졸자 네 명 중 한 명은 고졸 평균보다 임금이 낮다(아래 <표 2> 참조). 고등교육에 투자하고도 이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는 ‘고등교육 거품’이 발생한다.

대학에 들어올 지원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대학을 거쳐간 졸업생의 몸값은 낮다. 넘쳐나는 지원자를 골라 쓸어 담기만 하면 되었던 한국의 대학들은 비로소 진정한 도전에 직면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일련의 대학 구조개혁 패키지는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현실 인식은 정확하다. 이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상 유지’는 가능한 대안이 아니므로 가장 먼저 제쳐두어야 한다.

문제는 해법도 적절한가다. 교육부의 논리는 이렇다. 핵심축인 프라임 사업은 대학 정원 감축을 유도하므로 학령인구 감소의 대책이다. 동시에 이공계로의 정원 이동을 유도하므로 노동시장 불일치의 대책도 된다. 구조개혁 정책 패키지 중에서도 프라임 사업의 규모가 단연 크다. ‘대형’에 선정된 대학은 3년에 걸쳐 총 450억원을, ‘소형’에 선정된 대학은 150억원을 받는다. 평단사업은 취업자가 언제든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학습 시스템을 만들어,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재교육 프로그램이 된다. 일련의 프로그램은 ‘사회 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인다.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현장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올해 5월 전국 대학교수 이메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아래 <표 3-1> <표 3-2> 참조).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한 교수 중 86.2%가 ‘재정지원을 통한 정부의 대학 통제’를 꼽았다. 또, 재정지원 사업 중 효과적이지 못한 사업으로는 프라임 사업을 꼽은 응답자가 56.6%였다. 가장 핵심 사업이 가장 나쁜 평가를 받았다.

교육부 정책에 불만이 많은 교수들이 더 열심히 조사에 응한 편향된 결과일 수도 있고, 프라임 사업으로 교수직 유지를 위협받는 인문·사회계열 교수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교육부의 구조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대학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이 깔린 반론이 나온다.

노동시장과 고등교육의 차이 무시했다는 비판도

'고등교육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교육경제학을 연구한 경제학자 김진영 교수(건국대)의 일성은 좀 뜻밖이었다. 경제학자의 용어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던 순간, 설명이 이어졌다. '모든 정보를 미리 알 수는 없고 미래는 결코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이건 시장주의자의 기본 관점이다. 미래의 혁신이 어디서 등장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가 어떤 혁신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이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양성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마다 갖는 자율성이 핵심이다. 미래의 일자리 수요를 예측해서 고등교육의 정원을 중앙정부가 조정할 수 있다? 시장주의자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사회주의에 가깝지.'

ⓒ연합뉴스 : 2015년 3월, 학교의 구조조정에 맞서 중앙대 교수들이 전체 교수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그런데 이것이 교육부가 구조개혁 사업에서 보여주는 접근법이라고 김 교수는 짚는다. 예측이 어긋나게 될 시점은 이 계획의 입안자들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먼 미래다. 그래서 관료 조직은 예측하지 못할 먼 미래를 위해 고등교육의 다양성을 키워낼 이유가 별로 없다.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가 갈라질 때 관료 조직은 기꺼이 단기 목표를 추구한다. 관료 조직이 장기 목표에 헌신하도록 이끌려면 좋은 리더십이 작동해야만 한다.

2015년 중앙대 사태가 한창이던 시절 기자와 만난 사회학자 신진욱 교수(중앙대)의 진단도 다른 학문의 용어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제도에는 저마다 특유의 리듬이 있다. 교육부는 노동시장과 고등교육이 마치 한 제도처럼 움직이는 게 ‘매치’라고 생각하는데, 둘은 리듬이 다르다. 노동시장의 변동성이 훨씬 크다. 지금은 인문계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불과 10년 전에는 ‘이공계 위기론’이 온 나라의 화두였다. 빠른 노동시장에 느린 고등교육이 맞춰 출렁대면 둘 다 엉망진창이 되는데, 교육부 계획이 그렇게 둘을 연결하자는 얘기다.'

시장 연구자와 제도 연구자의 언어가 보기 드물게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고등교육은 사회 변화에 맞춰 그때그때 재조직하는 생산라인처럼 대응할 수 없다. 오히려 고등교육은 기초와 뿌리가 튼튼한 ‘범용성 높은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으로 사회 변화에 대응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제도는 리듬이 다르다. 고등교육 체제를 기초학문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많은 연구자들이 믿는 이유다.

ⓒ연합뉴스 : 올해 4월20일 10개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프라임(PRIME·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방향에도 난제는 있다. 기초학문은 당장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몸값을 크게 올려주지는 않는다. 국비 지원 등 공적 투자는 필수다. 그런데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나드는 ‘고등교육 폭발 사회’다. 이 비율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기초학문 중심 재편도 국비 지원 확대도 요원한 얘기가 된다. 70%가 대학을 가고 이른바 ‘최상위 대학’마저 직업훈련소처럼 기능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이냐는 연구자들을 취재 과정에서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대학을 가는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는 고등교육’과 ‘기초학문 중심 대학’ 셋은 공존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기초학문 중심 대학’과 ‘고등교육의 국가 책임’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를 두고 사회가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미다.

이 논의는 결국 ‘실용 트랙’과 ‘범용 트랙’의 분리를 추구하게 된다. 2년제 전문대학은 노동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능력이 더 높으므로 그쪽으로 특화한다. 4년제 대학은 범용성을 추구하도록 재편한다. 이 모델이 작동하려면 4년제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떨어져야 하고, 실용 트랙인 전문대의 위상이 크게 높아져야 한다. 이것은 물론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천대받지 않는 사회 문화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가능한 얘기다. 이화여대의 봄과 여름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대학은 물론 교육부 차원도 넘어서도록 확장된다. 중요한 사회문제가 거의 그렇듯, 고등교육 문제를 고등교육만 손대서 풀기는 무척 어렵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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