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0억원 적립하고도 적자 타령인 이화여대

이상원 기자 2016. 8. 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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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7월31일 새벽, 이화여대 학생들이 페이스북 ‘Save Our Ewha’ 계정에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화여대 평의원 교수들과의 대화였다. 한 학생이 '왜 학생들이 반대하는 무리한 사업들을 계속하나?'라고 묻자, 평의원 교수가 대답했다. '학교가 3년간 적자였다. 작년에는 1000억원 적자가 났다.'

정말 지난해 이화여대의 재정수지가 1000억원 적자였을까? 대학의 한 해 손익은 각 학교 ‘교비회계 운영(손익)계산서’에서 파악할 수 있다. 등록금·기부금·국고보조금 등 ‘들어온 돈’과 교수 임금이나 연구비 같은 운영비용을 비교하면 된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 손익을 읽을 때, 이화여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2015년 결산 기준 운영계산서에서 적자는 약 62억원에 불과하다. 한 회계사는 '운영계산서 어디에도 ‘1000억원 적자’의 근거는 없다. 다만 인출된 적립금 1050억원을 두고 한 말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취재 기간에 해당 발언을 한 교수와 대학 재무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적립금은 사립대학이 매년 쓰지 않고 남은 돈이 누적된 것이다. 일종의 저축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은 목적에 따라 예산 일부를 미리 적립금으로 편성한다. 항목은 연구적립금·장학적립금·건축적립금·퇴직적립금·기타적립금 등이다. 기타적립금을 제외한 각 적립금은 그 이름에 적시된 목적(연구지원금, 장학금 등)에만 쓸 수 있다. 지난 6월 대학교육연구소의 ‘이월·적립금’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사립대학들의 교비 적립금은 모두 8조2000억원 정도다(아래 <표> 참조). 그중 1위인 이화여대의 누적 적립금은 7300억원에 달한다.

대학은 적립금을 가능하면 인출하지 않고 적립해두려는 유인을 가진다. 2014년 8월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은 '(적립금은) 중장기적 학교 발전을 위한 사업에 투자돼야 하기 때문에 학교의 경상적 지출을 보전하는 데엔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적어도 운영계산서로 보면, 녹취록에 공개된 ‘적자 1000억원’ 발언은 ‘팩트’라기보다 적립금 인출을 극도로 꺼리는 사학 입장을 반영했을 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영리기관인 대학에서는 적립금이 늘어나도 총장이나 이사장에게 직접 이득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개인이 대학 적립금을 챙기기는 어렵다. 대학교육연구소에서 펴낸 <미친 등록금의 나라>는 무분별한 적립금 축적을 비판하면서도 '적립금은 부정·비리로 만들어진 돈이 아니며 미래 투자를 위해 조성되는 공식적인 자금이 맞다'라고 썼다. 사립대학이 적립금을 쌓는 데에 골몰하는 이유는 의외로 건전하다. 미래 재정이 불안해서다.

한국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기관에 지원금을 주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이 본격적으로 재정을 지원받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이후 2003년까지 정부는 학생 수에 따라 액수를 책정하는 균일한 방법으로 대학 재정을 지원했다. 학생이 많을수록 지원금도 많이 받았다는 의미다. 이른바 ‘일반재정지원(일반지원)’이다.

ⓒ시사IN 이명익 : 8월2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추진하는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들이 졸업장 반납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질서가 완전히 바뀐다.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가 일반지원을 전면 폐기한 것이다. 이후 도입된 특수목적지원(선별지원)에서, 대학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교육사업에 참여를 신청하게 된다. 정부는 각 대학을 평가해서 선별된 학교에게만 재정을 지원한다. 다만, 선정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액은 대폭 늘렸다. 교육부 관계자는 '당시 국회나 감사원에서 내실 없는 대학을 많이 비판했다. 그래서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해 (교육) 성과를 끌어올리려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면 프라임 사업,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등 정부 주도 재정지원 사업에 선정되는 길밖에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해당된다.

정부 지원금 늘면 재단 전입금은 줄여

이 같은 시스템 변화에 따라 안정적으로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대학들은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보험’ 격으로 늘린 것이 이월·적립금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사립대학들은 적립금을 유례없이 많이 쌓았다. 예상 지출보다 예산을 많이 편성해 돈을 남기는 경우도 잦았다. 2006년에는 한 해에만 무려 1조3413억원이 적립됐다. 한편으로는 정부 주도 재정지원 사업에 목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적립금 쌓기에 골몰하게 된 것이다.

일단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부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대학들은 이 돈을 어떻게 활용할까? 2014년 한국교육개발원 김훈호 연구위원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교육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 4년제 사립 일반대학 118개를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교육 성과 높이기’라는 정부의 의도는 대학 측의 계산을 거치면서 당초의 목표를 상실하고 만다.

정부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더 많이 받은 학교의 경우에도, 정작 ‘교육 성과’를 높이는 데 투자되어야 할 연구비나 학생 관련 경비의 규모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정부 지원으로 학교 살림이 일시적으로 넉넉해지면, 법인이 대학에 대한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에는 정부 지원과 법인 지원이 반비례하게 될 정도였다. ‘우수 대학을 교육부와 법인 양측에서 밀어주겠다’는 정부 측 계산은 빗나갔다. 실제로 ‘정부 주도 재정지원 사업(코어, 프라임 소형, 평생교육 단과대학) 3관왕’인 이화여대의 2015년 결산 기준 법인 전입금은 1.8%로, 사립대 평균인 4.2%의 절반 이하다.

돈을 아끼는 데 재미를 들인 법인은 계속 새로운 사업에 지원하려 했다. 정부에서 받은 재정지원은 연구비나 학생 관련 경비 대신 인건비에 주로 들어갔다. 행정직원 수나 유명 교수 유무가 재정지원 평가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적립금 축적에도 영향을 줬다. 스타 교수들의 퇴직금을 충당하려 퇴직 적립금을 더 모았고, 근 50% 가까이 되는 건축적립금도 언제 어떤 분야에 생길지 모를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겨냥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대학이 쌓은 적립금에는 순기능이 있다. 적립금을 충분히 쌓아 재정건전성을 확보한 대학은, 건학 이념에 맞지 않거나 내부 구성원들이 반대하는 정부 시책을 망설임 없이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사학법인이 적립금을 쌓아두고도 법인의 돈을 아끼려고 정부 재정지원을 탐낸다면? 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학내 여론을 무시하고 어떤 재정지원 사업이든 뛰어드는 학교가 많아질 것이다. 이대뿐만 아니라 어떤 학교, 어떤 사업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20여 년간 사립대학 가운데 적립금 수위를 지켜온 이화여대가 시작이었다.

이상원 기자 /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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