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장사 반대' 이화여대 vs '만학도 존중' 동국대

김준영 2016. 8. 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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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 단과대학(평단)’ 사업 시행을 놓고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들이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동국대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수천명이 ‘총장 퇴진’까지 요구하며 강한 결속을 이어가는 이대에 비해 동국대는 냉랭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는 평단 사업에 대한 학교별 입장 및 학생들의 인식 차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대 vs 동국대, ‘만학도 학위 수여’ 놓고 입장 엇갈려

11일 오전 서울 중구에 있는 동국대 본관 앞에는 뙤약볕 아래 학생 5명이 부채질을 하며 자리를 펴고 있었다. 이들은 동국대 총학생회가 주축이 돼 전날부터 학교 측의 평단 사업 운영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동참하는 학생이 40여명까지 늘었고, 13일까지 24시간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또한 “구성원과 충분한 소통을 거칠 시간이 없고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면 평단사업은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라며 “졸속행정으로 평생교육을 망치는 불통과 무능을 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동국대 총학생회 학생들이 10일 학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생교육 제도가 있는데도 평생교육단과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등록금 손실분을 보장하려는 것”이라며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동국대 관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살펴보면 총학생회의 시위와 관련해 ‘새로운 미래 동문을 개방적인 자세로 대해야 한다’, ‘만학도들의 기회를 박탈하지 말라’, ‘늦은 시기에 학문에 대한 배고픔을 아는가’ 등 냉담한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날 동국대에서 만난 학생 A씨는 “직장인에게 학위 준다고 해서 재학생들에게 딱히 피해를 보는 건 아닌 것 같아 굳이 반대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에 이어 전날 수천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모여 학내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이대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이대 본관에서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최경희 총장이 사퇴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동국대 학생들의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야간 대학 등을 통해 고졸 취업자나 직장인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재직자 과정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운영해오던 과정을 평단 사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셈이다.

반면 이대는 재직자 과정을 운영하지 않다가 이번에 갑자기 시작하는 입장이다. 이대는 평생교육원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이는 수료증만 발급하는 차원으로 학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10일 오후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교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
◆“이대, 안 먹던 떡 급히 먹다 체해”

전국 다수의 대학은 정부의 ‘선취업 후진학’ 기조가 강해지는 데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학생 유치를 통해 재정 확충에도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재직자 과정을 앞다퉈 운영하고 있다. 내년에 수도권 지역에서 재직자 과정을 시행하는 대학은 고려대·한양대 등 10여곳(약 1500명)이다. 야간 대학 등의 학부 학위 과정을 학교별로 시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2008년부터 ‘평생학습 중심대학’ 사업 참여 대학을 모집해 예산을 지원해왔다. 지난해에는 전국의 30여 대학이 선정됐다. 여기에 올해 평단 사업이 새로 추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직자 과정을 운영하지 않는 대학들도 있다. 서울대·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 등 소위 ‘명문대’로 통하거나 재정에 여유가 있는 대학들이다. 1996년부터 삼성이 운영에 참여한 성균관대는 연평균 1000억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는 덕에 굳이 재직자 과정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이대 졸업장 반납 퍼포먼스 재학생들이 평생교육단과대 설립에 반대하며 엿새째 대학 본관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2일 이화여대 정문 앞 벽에 이 학교 졸업생들의 졸업증서 사본이 부착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대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재직자 과정을 외면해 오다가 올해 갑자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재학생 및 졸업생 등 내부로부터 “재정 관리를 엉망으로 해놓고 학위장사를 벌인다”는 목소리와 외부로부터 ‘학벌 순혈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B대학의 한 관계자는 “‘급 낮은 학교나 하는 사업’이라며 외면하던 것을 갑자기 올해 시행하는 것을 보고 대학가에서는 ‘이대가 안 먹던 떡을 급히 먹다가 체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라고 전했다.

대학가에서는 기존의 평생학습 중심대학 사업과 평단 사업이 겹치기 때문에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단 사업은 학위를 수여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업과 같은 측면이 있지만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전문화 등 더 가다듬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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