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 임산부석' 1년..잠자는 아줌마, 서 있는 임산부

남형도 기자 2016. 8. 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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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임산부석 디자인 핑크색으로 바꿨지만 양보 실종 여전..비워둔 경우 거의 없어, 정작 임산부는 서 있기도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지하철 임산부석 디자인 핑크색으로 바꿨지만 양보 실종 여전…비워둔 경우 거의 없어, 정작 임산부는 서 있기도]

지하철 5호선 핑크색 임산부석에 한 남성이 앉아있다. 옆에 빈 좌석이 여러개 있음에도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5일 오후 3시 지하철 5호선의 한 전동차 안.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엔 4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반대 방향 끝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도 50대로 보이는 아줌마가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또 다른 전동차엔 빈 좌석이 여러개 있는데도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몸을 기댄 아저씨가 있었다. 배려석에 10대 학생이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20대 여성이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임산부가 앉도록 배려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었다.

서울시가 지하철 임산부배려석의 벽과 바닥을 '핑크색'으로 도색한지 1년이 지났지만 양보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기도 했지만, 2~3 정거장이 지나지 않아 다른 승객이 앉기 일쑤였다. 승객 대다수는 임산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두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임산부석을 차지한 승객들 때문에 정작 임산부가 배려 받지 못하고 서 있는 상황까지 목격됐다.

그동안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은 양보가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었다. 좌석엔 '엠블럼' 하나만 붙어 있어 승객이 앉기라도 하면 임산부 배려석인지 여부를 알기 힘들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7월 말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2884개 좌석 디자인을 바꿨다.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좌석과 등받이, 바닥까지 '분홍색'으로 연출했다. 바닥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도 넣었다.

20대로 보이는 대학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5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지하철 5호선 3개 전동차를 다니며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 42곳을 확인한 결과 임산부를 위해 비워둔 곳은 4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좌석 38곳 중 임산부가 앉아 있는 좌석은 한 곳도 없었다. 노인과 중년 남성·여성이 가장 많았고, 20대 남성과 여성, 고등학생, 아이까지 다양한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했다.

핑크색으로 주목도를 높였기 때문에 '임산부 배려석'의 인지도는 높았지만 앉는 것에 대해선 별 거부감이 없었다. 30대 승객 A씨는 "임산부 배려석인 것은 알았지만, 피곤해서 앉았다"며 "항상 비워둬야 하는 것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50대 승객 B씨도 "비좁게 앉지 않아도 되는 좌석이라 편해서 앉았다"며 "임산부가 오면 비워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 이 여성이 앉아 있을 때 임산부가 탑승해 근처 출입구에 서 있기도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일부 승객은 임산부 배려석을 피해서 앉기도 했다. 40대 남성 승객 C씨는 탑승하자 마자 임산부 배려석을 피해 사람들 사이에 끼여 앉았다. C씨는 "임산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둬야 탑승했을 때 편하게 앉을 것 같아 다른 좌석에 앉았다"고 말했다.

실제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한 승객들 때문에 임산부가 못 앉는 상황이 목격되기도 했다. 5호선 오목교역에서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매단 초기 임산부가 탑승했지만, 배려석 두 곳은 50대 아줌마 2명이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앉을 자리를 둘러보던 임산부는 출입구 쪽에 서 있었다.

전동차에서 만난 임산부들은 배려를 호소했다. 임신 6개월이라는 임산부 D씨는 "노약자석은 노인들 때문에 불편하고, 임산부 배려석은 다른 승객들이 대부분 앉아 있다"며 "무거운 몸으로 지하철에 서서 갈 때면 정말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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