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공자에 준 보청기, 알고 보니 '재고 부품'으로 제작
[뉴스데스크]
◀ 앵커 ▶
군 복무처럼 공무 중에 청각에 장애를 갖게 된 국가유공자들에게 정부가 예산으로 보청기를 구매해서 무상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 보청기 중에 상당수가 오래된 재고 부품으로 만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먹는 음식도 아닌데 오래되면 어때하실 수도 있는데요.
보청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정준희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중앙보훈병원 의료기기 창고.
한쪽 구석에 보청기 부품들이 박스째 쌓여 있습니다.
보청기 부품은 온도와 습도 변화에 매우 민감한 전자제품이어서, 보관을 위한 설비를 갖춰야 하지만 병원시설은 그저 물류창고 수준입니다.
[보훈병원 관계자 A]
"저희가 좀 열악합니다. 어쩔 수없이 박스를 잘라서 보관하는 겁니다. (정전기 방지용) 케이스 같은 게 없다 보니까…"
취재진이 입수한 보훈공단의 감사보고서.
보훈병원은 지난해에만 맞춤형 보청기 12종류에 쓰는 핵심 부품들을 길게는 1년 이상 이렇게 보관해왔습니다.
보청기는 보통 생산된 지 두 달 내 부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장기 재고 보관과 사용은 업계에서는 황당한 일입니다.
[보훈병원 관계자 B]
((담당) 부장님도 지금 (감사에) 걸렸잖아요.)
"저도 걸렸어요."
(재고 있는 건 계속 사용을 하는 거예요?)
"일단 그렇게…"
보훈병원에서 보청기를 지급받은 김성식 씨.
잘 들리지 않고 잔고장이 잦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일련번호를 조회해봤더니 신청하기 넉 달이나 전에 나온 부품으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김성식/군사격 난청이명 피해예방협회장]
"화가 났죠. 4개월 전에 출고된 제품을 가져다 저에게 줬다는 게 국가유공자가 어디 재활용 단체도 아니고…"
또 다른 유공자 박 모 씨 역시 재고부품임을 알고 고마웠던 마음이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난청 국가유공자 A]
"제품이 오래되고 습기 차고 불량이 많아질 수가 있죠. 배터리도 금방 닳고 보청기에서 울림이 되게 심해요."
그렇다면, 제조업체도 아닌 보훈병원은 왜 장기간 부품을 보관하고 있는 걸까.
유공자의 신청이 들어오면 보훈병원이 제조업체에 주문해 납품을 받는 게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보훈병원은 상당수를 부품단계에서 납품받아 보관해오다 유공자의 신청이 있으면 이 부품을 다시 제조업체에 보내 완성품을 재납품 받는 복잡한 방식을 취해왔습니다.
[의료기기업계 관계자]
"병원에서 부품을 가지고 있다가 주문을 넣을 때 같이 보내고 그런 경우는 없거든요. (유공자 보청기에) 불합리한 부분이 보이는 건 사실이고요."
보훈병원 측은 "과거 관행에 따라 물품검수 차원에서 진행한 일"이라며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난청 국가유공자 B]
"다치고 싶어서 귀를 다친 게 아니잖습니까. 지급받은 것들이 정상적인 물건이 아닐 경우에 저희를 두 번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난청과 이명으로 국가유공자가 되는 사람은 10명 안팎.
신청자의 5%만이 힘겹게 얻는 보청기 무상지원 자격이 유명무실한 예우가 되지 않도록 철저한 실태 점검이 시급해 보입니다.
MBC뉴스 정준희입니다.
정준희기자 (rosinante@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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