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불붙은 더치페이.. 식당은 부글부글

이민석 기자 2016. 6. 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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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이 밥 먹고 카드 7개 내밀어.. 불황으로 늘어나는 '각자 계산'] 직장 동료끼리 같이 식사하고 上司가 내던 문화 많이 사라져 - 피크시간 계산대 북새통 메뉴·가격 확인하느라 진땀.. '각자 계산 불가' 선언하기도

지난 7일 낮 12시 30분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 강남구 역삼역 부근의 한 일식집. 한자리에서 점심을 같이 먹은 직장 동료 7명이 자신이 먹은 우동·덮밥 등 4500~6000원짜리 밥값을 따로 내겠다며 신용카드 7개를 내밀었다. 종업원이 손님이 먹은 메뉴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계산하는 동안 식사를 마친 손님 5명이 뒤를 이으면서 46㎡(14평) 남짓한 식당은 계산 대기 줄로 꽉 찼다. 식당 주인 한모(63)씨는 "손님 절반 이상이 단체로 식사를 하고는 각자 카드로 결제하다 보니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먹은 밥값을 각자 계산하는 '더치페이(각자 부담)'를 하는 직장인 손님이 늘어나면서 식당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손님이 몰리는 피크 시간에 종업원들이 단체 손님들이 각자 먹은 밥값을 따지느라 서빙 업무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손님이 "왜 이리 계산이 늦느냐"고 항의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음식점 업계에 따르면 직장 동료끼리 같이 식사를 하고 상사가 밥값을 내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직장인들 지갑이 얇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4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점심값으로 내는 비용은 평균 6300원이었다. 이 조사에서 '점심값이 비싸졌다'는 응답이 43.9%(207명)에 달했고, 59.3%(280명)는 '점심 비용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직장인 이모(32)씨는 "팀원 5~6명이 먹은 식사를 한 명이 결제하는 건 월급받는 직장인들에겐 부담스러운 것 아니냐"며 "계산 시간은 오래 걸려도 각자 먹은 밥값을 부담하는 게 깔끔하다"고 했다.

더치페이의 확산은 신용카드 결제 금액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식당에서 카드(신용·체크·직불 등)로 결제한 건수는 지난 2009년 12억6250만건에서 2013년 26억1600만건으로 4년 만에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결제 한 건당 평균 금액은 같은 기간 4만원에서 2만9000원으로 오히려 27.5% 감소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직장 회식이나 동문 모임처럼 한꺼번에 수십만원씩 큰 금액을 결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손님들이 자기 밥값을 따로 계산한다"고 말했다.

주로 신용카드로 이루어지는 더치페이 확산에 식당 주인들은 울상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근처에서 순두부집을 운영하는 한모(65)씨는 "점심시간 손님들은 비슷한 시간에 몰려와서 한 번에 우르르 나가는데 한창 음식 만들고 옮길 시간에 각자 계산하겠다고 줄지어 서 있는 손님들을 보면 답답해진다"고 했다.

일부 식당은 '각자 카드 결제 불가' 방침을 선언하고 나섰다. 계산하려는 손님들로 식당 입구가 복잡한 것을 보고 식사를 하러 왔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찜닭집은 지난달 계산대 앞에 '개별 결제 불가'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이 식당의 주 손님층인 20~30대 손님 중 80% 정도가 카드로 더치페이를 하고 있다. 종업원 박모(44)씨는 "'왜 결제 방식을 마음대로 정하느냐' '카드 결제 못 하게 하는 건 불법 아니냐'며 항의하는 손님이 많지만, 수십명이 몰리는 점심시간대에 각자 계산을 하겠다는 손님들이 많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계산할 때 각자 주문한 음식의 종류와 가격을 확인하느라 지친 일부 식당은 자구책으로 주문과 계산 방식을 바꾸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김치찌개집은 300만원을 들여 식당 입구에 식권(食券) 자동판매기를 설치했다. 손님이 메뉴를 골라 카드로 결제한 뒤 발급받은 영수증을 점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주인 김모(49)씨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계산 전쟁을 치른다고 종업원을 한 명 더 뽑아야 할 상황이었다"며 "기계가 비싸지만 종업원 한 명 더 뽑는 인건비보다는 싸게 먹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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