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 "넌 천안함이니까 싫어. 가까이 오지 마"

임태우 기자 2016. 6. 7. 16: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늦은 밤 ‘천안함’이 서해상에서 침몰했습니다. 대한민국 장병 46명은 숨을 거뒀습니다. 군은 숨진 46명을 용사로 추모했고, 58명의 생존 장병도 영웅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생존자들 앞에서 한 말은 달랐습니다. 해군은 내부적으로 천안함 생존 장병을 ‘패잔병’으로 표현했습니다. SBS 취재진이 입수한 한 해군 교육자료에는 천안함 피격 원인을 ‘서해에서 대잠 위협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매너리즘)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당시 천안함 장병의 당직 근무 상태가 불량했다고 기술하며 책임을 장병에 돌리기도 했습니다. 군이 천안함 백서 등을 통해 ‘당직 근무자들은 정상 근무 중이었다’라고 밝힌 내용과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SBS 취재진은 천안함 사건 당시 생존한 정주현 중사를 만나 군 내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이후 소말리아 청해부대로 파병까지 자원했지만, 군 내부의 보이지 않는 차별에 고민하다가 지난해 6월 전역했습니다. <편집자 주>

▷ 기자: 천안함 사건 이후 어떤 일을 하셨죠?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교육사 부대에서 지원업무를 했고, 신형 개조 사업도 잠깐 참여했었습니다. 그다음에 소말리아 파병을 갔다 왔어요. 14년 5월에 출발해서 11월까지 청해부대에서 근무했었죠.

▷ 기자: 청해부대에 계실 때 천안함을 주제로 한 내부 교육자료를 접하셨다고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네, 청해부대 안에서 여러 가지 자체 교육을 시키죠. 그중에 천안함에 대한 교육 안이 있더라고요. 제가 천안함 장병이고 하니까 더 관심을 기울였었던 건데, 교육자료를 살펴보니까 ‘천안함은 장비의 능력문제가 아니라, 오퍼레이터(운영요원) 즉, 저희 천안함 대원들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라고 명시가 돼 있는 거예요. 

▷ 기자: 천안함 사건 당사자로서 어떠셨어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너무 화가 났죠. 그래서 그 교육자료를 천안함 함장님께 한국에 와서 보고를 드렸었어요. 그리고 보고 과정을 주임관사에게도 말씀드렸더니 왜 이런 짓을 했느냐고 저를 질책하셨죠.. 그때 주임관사는 부대의 아버지 격이었거든요.

▷ 기자: 이런 짓이라면?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그러니까 왜 이런 이 문서를 천안함 함장한테 갖다 줬느냐….

▷ 기자: 그 교육자료는 중사님이 개인적으로 받은 문서인가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 아뇨, 어느 회사나 흔히 인트라넷이 있잖아요. 군에도 국방망이라는 인트라넷이 있어요. 거기에 그 자료가 몇 개월 전부터 올라와 있었죠. 교육자료 내용은 제가 일부러 얼버무리는 게 아니라, 화가 나서 얼마 안 읽었어요. 더 자세한 내용은 보안 때문에 여기까지만 설명해 드릴게요.

▷ 기자: 어쨌든 교육 자료도 그 정도일진대,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군 내부의 시선은 어떻습니까?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같은 해군조차, 해군에서 잠수함을 타던 상관이 천안함은 장비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오퍼레이트들의 실수다 이렇게 얘기를 해 버리고.주임관사도 “천안함이니까 난 네가 싫어.” 이렇게 저한테 얘기한 적도 있었거든요. 천안함이라고 해서 감싸 안아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솔직히 제가 일을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처음부터 천안함이니까 저를 안 좋게 보고 시작하는 거죠.

▷ 기자: 국민은 천안함을 나라 지킨 용사로 알고 있는데, 군 내부에선 많이 다르군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네, 제가 천안함 사건이 끝나고 나서 처음 들었던 말은 “함장은 죽었어야 한다.” 그것도 부대 상사한테 그 말을 들었습니다. 상사가 술 취해서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 “천안함이라서 너 싫어!” 이렇게 얘기하고, 그다음에 또 승조하는데 “너 천안함이니까, 너랑 같이 있으면 일 날 것 같다. 가까이 오지 마라!” 이런 식으로 얘기하곤 했죠. 그럴 때마다 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죠. 그렇다고 제가 그분들한테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요?

▷ 기자: 혹시 천안함을 나쁘게 보는 건 군에서도 아주 일부가 아닐까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해당 교육자료를 만들었던 ○○○ 대위의 잘못이 아니라, ○○○ 대위마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던,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던 해군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위도 잠수함 장교예요. 사실 천안함 사건의 본질은 잠수함 장교가 수사관보다 더 잘 알아요. 그런데 ○○○ 대위마저도 왜 그렇게 생각을 했겠어요. 바로 해군이 그렇게 교육을 했기 때문이죠.

▷ 기자: 계속해서 천안함 출신이라는, 안 좋은 꼬리표가 따라다닌 거군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네, 제가 실수하면 “그냥 뭐 바보, 일 못하는 놈, 너는 원래 천안함이니까….” 이런 소리 듣고 지적을 받고, 그다음에 일 잘해도 중간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비전이 없었죠. 차라리 천안함을 안 겪고 다른 배를 탔으면 제가 좋아하는 군 생활을 계속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 기자: 그런 시선을 스스로 극복해보려는 노력은 안 해보셨어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나름 많이 노력했죠. 천안함을 겪고 난 뒤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하는데, 병원을 가면 분위기상 욕먹죠. 아프다는 티를 못 내요. 천안함 트라우마 때문에 이제 배를 타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이런저런 환청이 많이 들린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이겨내고도 저는 소말리아를 또 지원해서 갔어요. 갔는데도, 천안함만 얘기만 나오면 다 저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어요.

▷ 기자: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트라우마가 두 가지 정도 있어요. 첫 번째는 그 깜짝깜짝 놀라는 걸 정말 싫어하고, 두 번째는 추운 걸 정말 싫어합니다. 폭침 당시 쾅하는, 그 소리 때문에 제가 깜짝 놀라는 걸 정말 싫어하게 됐고, 추운 건 그날이 정말 추웠거든요. 지금도 겨울날 추울 때 간혹가다가 그날의 기억이 너무 많이 나서 마비가 약간 올 때도 있어요. 정신적으로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공황장애라고 하나요.

▷ 기자: 그런 트라우마를 견디면서도 군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6월 전역하셨다고요. 이유는 뭔가요?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딜 가든 핍박 받는 것 같고, 무시당하는 기분도 너무 싫었고. 제가 20대 중반인데, 해군은 제 무대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천안함 때문에 같이 근무하기 싫다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데 어떻게 그런 자리에서 제가 근무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천안함 장병에 대해 거짓말하는 해군이 원래도 미웠는데, 더 미워졌어요. 천안함 사고를 겪고 허리 디스크라고 분명히 판정을 받았는데, 치료 받으러 갔을 때 군의관들이 천안함 때문은 아닌 것 같다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 기자: 이제 와서 천안함을 미워하시는 건?

▶ 정주현 전 중사/천안함 생존장병:

아니에요. 그땐 정말 행복했죠, 천안함 타면서요.그때 같이 근무했던 장병이 사실 가족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가족보다 끈끈한 우정을, 아니 정을 많이 느꼈었고. 정말 천안함처럼 의기투합한 부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보니까 “아, 천안함 시절이 정말 좋았었구나.” 이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요.   

* 취재 : 박수진 기자 / 기획·구성 : 임태우 기자 / 디자인 : 김은정   

임태우 기자eigh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