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불편해도 싸잖아요"..고시원에 외국인이 산다

글 사진=권준협 기자 2016. 6. 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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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주거비' 탓에 외국인 학생도 고시원 생활..고시원 '고학생 자취방'→'외국인 단기 거처'로
연세대 교환학생 브룩 베첼로씨가 지난달 29일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고시원 침대에 앉아 있다. 베첼로씨는 “지금은 지저분하다”며 공개를 꺼렸지만 거듭된 부탁에 내부를 보여줬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A고시원 4층 복도. 금발의 여학생 브룩 베첼러(24·여)씨가 자신의 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신발을 꺼내 신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는 지난 2월 말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뒤부터 이 고시원에서 산다고 했다.

베첼러씨 방은 여느 고시원과 다를 게 없다. 책상과 책장 겸 선반, 침대 하나가 붙박이로 들어간 방은 딱 1인용이다. 한눈에도 두 평(6.6㎡)이 안 됐다. 선반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가지가 가득했고,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한 단짜리 소형 냉장고도 있었다. 남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베첼러씨는 “고시원 월세가 기숙사비보다 절반 이상 싼 데다 학교와 가까워 선택했다”고 말했다.

대학가 고시원은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따닥따닥 붙은 방들, 좁은 공간에 갖춰진 가구와 가전제품 등은 최소 비용으로 거두는 최대 실용성을 보여준다. 주로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과 고시생, 취업준비생 등에게 값싼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이런 고시원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늘면서 고시원이 ‘글로벌 기숙사’로 변신하고 있다.

베첼러씨가 머무는 고시원엔 그를 포함해 외국인이 11명이다. 연세대 앞 B고시원에는 10명가량이 머물고 있다. 인근 C고시원은 방 32개 가운데 절반을 외국인 유학생이 차지하고 있다. 국적도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처럼 비교적 가까운 나라부터 미국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까지 다양하다. 이들 대부분은 고시원 근처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왔거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왜 외국인 유학생 사이에 ‘고시원 한류’가 불고 있을까. 이들은 ‘치명적인 주거비용’을 꼽는다. 연세대만 놓고 보면 기숙사 비용이 4개월에 250만원 수준이다. 반면 학교 앞 고시원 월세는 25만~45만원 정도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보증금, 월세 등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외국인 유학생이 엄두를 내기도 힘들다. 다른 대학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오아나 파두레투(30·여)씨는 “처음에는 원룸을 알아봤지만 보증금이 너무 비싸 놀랐다. 그래서 보증금이나 계약기간 부담이 없는 고시원에 살게 됐다”고 했다. 파두레투씨는 5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재충전을 위해 한국에 왔다.

고시원은 기숙사보다 생활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기숙사마다 갖고 있는 깐깐한 규정이 없어서다. 서울 중구 동국대 인근의 D고시원에 살고 있는 중국인 류유유(21·여)씨는 “기숙사는 통금시간도 있고 2인실을 써야 해서 제약이 많다”며 “중국 친구들이 고시원에 많이 살아 같이 밥도 만들어 먹고 여행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 고시원의 경우 여학생 중 두세 명을 제외한 20여명이 모두 중국인이라고 한다.

좁고 밀폐된 고시원이 아늑할 리는 없다. 대부분 고시원은 복도 너비가 성인 남성 두 명이 나란히 서지 못할 정도다. 소음은 가장 큰 불편사항이다. 베첼러씨는 “옆방에서 나는 통화소리 때문에 가끔 괴롭다”며 “고시원에 외국인이 많다 보니 시차 때문에 밤늦게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들은 고시원을 합리적 거주공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충무로 주변 여성전용고시원에서 1년간 살다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돌아간 애쉬 루이즈(24·여)씨는 모바일 메신저로 5일 “학생에게는 학교와 가깝고 저렴한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며 “외국 학생에게 고시원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글·사진=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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