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아가씨'의 숨은 주인공, 미술과 의상

고석희 2016. 6. 4. 07: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탐욕을 채우고 관능을 입히니 매혹적이로구나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가씨’의 주인공은 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조선과 일본 그리고 서양 문화가 뒤섞인 시대적 풍경과 네 캐릭터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 속 공간과 의상 역시 주역이라 할 만하다. 노련한 스태프들이 연륜과 땀으로 완성한 시각적 요소들은 숱한 디테일과 상징들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아가씨’의 비주얼을 담당한 류성희 미술감독과 조상경 의상감독에게 제작 뒷이야기를 들었다.추악한 비밀이 담긴 코우즈키의 서재
‘아가씨’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공간은 히데코(김민희)의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서재다. 코우즈키가 집무실로 사용하는 이곳은 각종 고서와 골동품으로 가득하다. 책꽂이와 문고는 대부분 영국식이지만, 코우즈키가 서신을 쓰고 서적을 읽는 중앙 공간과 벽은 일본식이다. ‘올드보이’(2003)부터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맞춰 온 류성희 미술감독은 “서로 뿌리가 다른 동서양 양식을 어떤 비율로 섞을지 결정하는 게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아가씨’로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을 수상했다. 경쟁 부문 진출작 가운데 최고의 기술 스태프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박쥐’(2009)도 그렇지만, 박 감독님은 유독 이질적 요소들이 만나서 빚는 조화나 충돌을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여러 가지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최대한 재미있게 보일까 고민했다.” 류 미술감독의 말이다.

류 미술감독은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1930년대가 배경인 ‘암살’(2015, 최동훈 감독)에도 참여했다. 그는 “시대를 재현하는 데 충실했던 ‘암살’과 달리, ‘아가씨’는 공간을 캐릭터로 만들어야 했기에 더욱 작업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특히 코우즈키의 서재는 가장 고심해 만들었다고. 코우즈키가 물질과 향락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공간이기에 단순히 멋지고 고풍스럽게 꾸미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서재라는 공간에 코우즈키의 도착적인 성(性)적 욕망과 사대주의적 허영이 묻어나야 했기 때문.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지난해 일본을 방문했던 류 미술감독은 문득 ‘서재 내부에 일본식 인공 정원을 들인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정원은 산과 강 같은 자연 세계를 축소해 제한된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코우즈키의 서재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DIMA 종합촬영소 실내 스튜디오에 지었다. 바닥의 다다미 장판을 들어내면 실내 연못과 수석(水石), 분재가 있는 정원으로 탈바꿈한다. 평소엔 코우즈키의 집무실이지만, 그가 귀족을 초대해 변태적 욕망을 공유하는 사교 공간, 히데코가 서책을 낭독하는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평소 좋고 싫은 티를 내지 않는 박 감독은 완성된 서재를 보고 “훌륭하다”며 감탄했다.
동서양 하이브리드 건축
‘레베카’(1940, 앨프리드 히치콕) ‘크림슨 피크’(2015,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와 ‘아가씨’의 공통점은 등장인물만큼이나 저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아가씨’의 주요 무대인 저택은 네 남녀, 히데코와 숙희(김태리) 그리고 백작(하정우)과 코우즈키의 욕망과 음모가 교차하는 무대이자 각 캐릭터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곳. 영화 초반, 저택 관리인인 사사키 부인(김해숙)은 아가씨 히데코의 새로운 하녀로 들어온 숙희를 안내하며 “일본과 영국을 존경한 주인 마님(코우즈키)이 양쪽의 건축법을 본따 지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저택은 일본식 기와집과 서양식 건축물 등 서로 다른 양식의 건물 두 채가 한 건물처럼 기이하게 붙어 있는 구조다. 제작진은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재하는 건물을 찾았고, 마침내 일본 미에현 구와나시에 위치한 저택(사진1)을 외관 촬영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두 가지 양식이 서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후반 작업에서 CG(컴퓨터 그래픽)로 완전히 새로운 서양식 저택 구조(사진2)를 덧입혔다. 시각효과 업체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4th Creative Party)의 솜씨다.캐릭터를 연기한 의상
‘올드보이’ 이후 박 감독 작품의 의상을 담당해 온 조상경 의상감독. 이번 작업에서 그는 네 캐릭터의 성격과 극 중 상황이 드러나는 ‘위트 있는’ 의상 제작을 목표로 삼았다. “박 감독의 시나리오에는 배우들의 감정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나리오 분석만 제대로 하면 의상 컨셉트를 잡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조 의상감독의 말이다. ‘아가씨’는 3장으로 구성된 영화. 조 의상감독은 각 장마다 달라지는 히데코의 감정을 의상에 반영해 단계적으로 변화를 줬다. 가령 1장에 등장하는 유약한 히데코의 의상은 아이보리 블라우스와 카키색 치마 등 정숙하고 심플하게 구성했다. 반면 2·3장에서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는 히데코의 행동에 맞게 기모노와 유카타의 채도를 높였다. 조 의상감독에 따르면 “여러 벌의 드레스와 기모노, 코르셋을 번갈아 입어야 했던 김민희가 배우들 중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백작은 30년대 부유층이 입던 양복을, 일본인을 동경하는 코우즈키는 일본 귀족들이 즐겨 입던 검정색 실크 기모노를 착용한다. 조 의상감독은 “각 시대에 따라 다른 일본 복식의 기준점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영화의 배경이 다이쇼 시대(1912~26)와 쇼와 시대(1926~89)의 중간 지점이었기 때문. 그는 당시 복식 자료를 참고해 박 감독과 논의한 결과, 히데코가 처음 조선 땅으로 건너온 시기가 1910년대였을 거라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다이쇼 시대의 복식을 선택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30년대 당시 사용된 원단과 부속물을 공수하고, 디테일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옷을 입는 것보다 벗기는 장면이 의상을 손질하는 게 더 어렵다. 만약 코르셋 끈을 푸는 장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다면, 구멍 하나하나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코르셋 하나 완성하는 데 꼬박 몇 달이 걸렸다.”
두 여인의 욕망이 숨 쉬는 히데코의 방
숙희와 히데코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히데코의 방은 한색 계열의 푸른색이 쓰였다. 하늘색과 옥색 사이의 스카이 블루로, 차갑고 외로운 히데코의 캐릭터를 반영해 박찬욱 감독이 직접 고른 것. 벽과 가구는 심리적 중압감을 주는 어두운 톤의 나무로 구성했다.

류 미술감독은 이파리와 꽃봉오리 같은 식물의 이미지로 두 여성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형상화했다. 미술팀은 영국 건축가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 디자인을 토대로, 한국과 일본의 스타일을 섞어 벽지뿐 아니라 테이블과 소파 등 가구에도 식물 패턴을 넣었다. 류 미술감독은 “비록 영화에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식물의 집요한 묘사가 그로테스크하게 보여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의 창작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한계에 부딪힐 때가 아닌가. 미술뿐 아니라 의상, 소품 등 여러 파트가 각자 교류하며 제 몫을 다해 줬기에 가능했다. 개인적으론 미술과 캐릭터를 결합할 수 있었던 무척 신나는 작업이었다.” 류 미술감독의 말이다.코우즈키의 애장품, 춘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히데코가 코우즈키의 서재에서 읽는 책에는 인도의 『탄트라』, 중국의 『금병매』를 연상시키는 고전 춘화(春畵)가 수록돼 있다. 남녀의 애정 행각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이 춘화는 진품 아닌 소품으로, 놀랍게도 대부분 미술팀이 동아시아·인도 등 아시아 각국의 춘화를 일일이 공부하며 손수 그린 것. “작업하면서 춘화를 1000장 가까이 본 것 같다. 미술팀 대부분이 여성이었기에 작업 초기엔 꽤 민망해 했지만, 몇 달 지나니 다들 대놓고 심드렁하게 보더라. 그림만 봐도 어느 국가의 춘화인지, 국가별 성적 콤플렉스는 어떻게 다른지 한눈에 알 만큼 전문가가 다 됐다(웃음).”(류성희 미술감독)
▶관련 기사
[매거진M] 베일 벗은 ‘아가씨’ 두 개의 시선으로 탐미하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中에 "5년치 거래 기록 내놔라"···미국, 이번엔 화웨이

3년간 직장 내 왕따 당한 여교사, "도벽 있다" 소문에···

사드 얘기만 나오면···앞서가는 미국, 수습하는 한국

"죽어서도 예쁜女 지나가면···" 남자의 욕망에 대하여

김정은 연회 베풀기도···北 최고의 외국인 사업가는?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