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빌리티' 욕구..30대 유부남, 돈 많은 총각 의사인 척

임선영.권혁재 2016. 5. 2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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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이 지배하는 SNS에선 곧잘 재력·경험·직업 등을 거짓으로 꾸며 ‘있어 보이는 나’를 추구한다. 사진 속 모델은 빌딩 사이에서 사뿐히 공중으로 솟구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버팀대를 딛고 30cm쯤 점프했을 뿐이다. 진실은 프레임 바깥에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모델 한서빈]
‘허세샷’은 SNS 속으로 도피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재력·직업 꾸며내는 ‘SNS 허언증’ 확산
| “우월한 기분에 우쭐, 멈출 수가 없어”
사기·유명인 사칭 등 범죄로 이어져

정모(36)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들은 그를 ‘청담동 부잣집 딸’로 알고 있다. 그는 SNS에서 자신의 집을 부유층이 많이 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아파트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호화로운 가구가 놓인 방 사진, 다양한 해외여행 사진 등도 수시로 올린다. 하지만 ‘내 방 사진’이라고 올린 건 가구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쇼룸 사진이다. 또 다른 사람의 SNS에 올라온 해외여행 사진을 내려받아 마치 자신이 다녀온 것처럼 꾸몄다.

그는 실제론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서울 강북 지역의 33㎡(10평)짜리 다세대주택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적은 수입을 쪼개 시골 부모님의 생활비까지 보태야 하기에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쇼핑도 맘 편히 하기 힘든 형편이다. 그의 친구인 안씨는 정씨가 SNS에 올리는 내용이 대부분 거짓인 것을 안다. 정씨는 걱정하는 안씨에게 “남들의 SNS를 보면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아 맘이 아프다”며 “온라인 공간에서만이라도 내가 평소 꿈꾸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유부남인 직장인 박모(32)씨는 한때 SNS에서 ‘부유한 미혼 의사’로 통했다.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익혔던 의학용어를 활용해 의사 행세를 했다. 친구 소유의 고가 외제차와 시계 사진을 자신의 것인 양 올렸다. 그러자 몇몇 여성이 쪽지를 보내 관심을 보였다.

박씨는 신분을 속인 채 해당 여성들을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마냥 즐거웠던 ‘가짜의 삶’은 최근 아내에게 들통나면서 멈췄다. 박씨는 결국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그는 “내 실상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내가 꾸민 모습엔 ‘좋아요’를 누르고 ‘부럽다’고 반응했다”며 “현실에선 좀처럼 느끼기 힘든 우월한 기분이 들어 멈출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재력·경험·직업 등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현상을 ‘SNS 허언(虛言)증’이라고 부른다. 허언증은 상습적으로 거짓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 말하는 증상이다. 이런 허언증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강력해진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SNS 허언증’을 팍팍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도피하면서 생긴 결과라고 진단한다.

나경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실 세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못 견디고 계속 SNS 속 삶으로 도피하는, 일종의 ‘심리적 생존’ 추구”라고 설명했다. 어렵게 성취하기보다 손쉽게 ‘척’하는 쪽을 택한다는 얘기다. 김형근 서울중독심리연구소 소장도 “SNS에서 거짓말을 반복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관심에 목말라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호주에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서 100만 이상의 팔로어를 끌었던 ‘SNS 스타’ 에세나 오닐(당시 19세)이 “나의 SNS는 허상”이라고 고백해 파문을 일으켰다. 12세부터 SNS를 시작한 그는 “내 몸매와 나의 인생이 얼마나 멋진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며 한 업체가 제공하는 옷을 입고 그 대가로 수십만원을 받은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런 ‘과대 포장’이 심해지면 ‘SNS 허언증’에 빠지기 쉽고, 더 나아가 아예 다른 사람을 사칭하는 현상으로까지 진행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유재석·아이유 등 유명 연예인을 사칭한 SNS 계정이 문제가 된 바 있다.

‘SNS 허언증’이 심각해 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고 있다. 나경세 교수는 “SNS에 계속 거짓된 내용을 올려 거짓말쟁이가 됐다는 자책감에 상담을 받는 내원 환자가 5년 전에 비해 3배가량 많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우울증도 앓고 있다”고 말했다.

| 명품 가방 사서 사진만 찍고 반품
해외여행 스냅사진 돈 주고 촬영

‘척’하기 위해 주로 활용하는 수단은 외제차와 명품 가방·옷 등이다. 백화점에서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 뒤 사진만 찍어 SNS에 올리고는 반품하는 방식도 많이 쓴다. 물론 SNS에 올리는 구매 후기에서 반품했다는 말은 당연히 ‘편집’된다. 사진 연출에도 적극적이다.

해외여행도 ‘인증샷’을 SNS에 도배하기 위해 간다. 일부는 전문 사진사를 고용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느낌’의 스냅사진을 찍기도 한다. 파리·로마 같은 유명 여행지에는 스냅사진 전문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어 ‘반나절 촬영 20여 장에 30만원’ 등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러다 보니 SNS 이용자들도 ‘게시된 모습’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시장 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사람들이 SNS에선 행복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남성(53.1%)보다 여성(69.3%)에게서 이런 생각이 강했다. SNS에서 보여지는 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 것이라는 의견은 6.4%뿐이었다.

| 행복한 모습만 보이는 ‘허세샷’ 대세
‘허언증’ 상담 환자 5년 새 3배 늘어

이 때문에 최근엔 능력·재력을 우회적으로 과시하는 ‘허세샷’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차가 막힌다’는 글과 함께 외제차 핸들이 조금 보이는 사진을 올리거나 ‘카페 디저트가 맛이 없다’며 불평하는 사진 한쪽에서 명품 가방을 살짝 보여주는 식이다.

아예 ‘있어빌리티(있다+ability)’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행복 경연장’이 된 SNS에서 ‘허세’가 현대인이 갖춰야 할 하나의 능력이라는 의미다. 『트렌드 코리아 2016』(김난도 지음, 미래의 창)에선 ‘있어빌리티’를 설명하면서 “포장력이자 연출력이 되고 자신을 브랜딩하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 팍팍한 현실서 가상세계로 도피 심리
타인 시선보다 자신에게 관심 가져야

이런 ‘허세샷’을 풍자한 작품 사진도 등장했다. 태국의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밖에 숨겨진 진실’이란 주제로 올린 시리즈다. 사진 속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지만 프레임을 키우면 먹다 만 인스턴트 음식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멋스러운 애플 맥북이 사실 폭탄 맞은 것처럼 지저분한 방 침대 위에 놓여 있다. 거꾸로 선 요가 동작은 친구가 잡아준 덕이다. 프레임 밖의 진실이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의 범주 안에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김형근 소장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며 “SNS의 원래 목적이 ‘소통’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경세 교수는 “관심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와 내 주변에 돌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실제 생활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때 SNS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S BOX] “하버드서 카톡으로 합격 소식” “축하”…온라인서 허무개그식 ‘허언증 놀이’

커뮤니티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엔 ‘허언증 갤러리’가 있다. 누가 봐도 거짓말인 얘기를 유머의 소재로 삼아 맞장구치면서 노는 공간이다. ‘하버드대에서 카카오톡으로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는 글에 ‘축하한다’ ‘하버드가 어디죠? 지방대라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예요’란 댓글이 달리는 식이다.

이런 ‘허언증 놀이’는 ‘SNS 허언증’과는 다르다. 거짓된 삶을 진짜인 것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저 과시나 허풍으로 잠시나마 웃어보자는 것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두고 ‘파도가 쓸어가기 전에 모래성을 만들어봤다’고 하거나 진시황릉 병마용이 ‘내가 수집한 미니어처’라고 자랑한다. 취업난과 같이 팍팍한 현실을 풍자하기도 한다.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9급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이 있는지 궁금하다’거나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편의점 알바를 목표로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현대자동차 경영지원팀에서 경력을 쌓았는데 오늘 편의점 알바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식의 자조 섞인 글들이다. 취업준비생 박모(28)씨는 “‘허언증 갤러리’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글들인데 재밌다. 동질감을 느끼면서 위로를 받고 스트레스도 해소한다”고 말했다.

나경세 교수는 “SNS를 통해 타인의 행복을 자주 접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점점 각박해진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면서 억눌린 욕망을 유머와 거짓말로 희석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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