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아들에 "지구가 뒤집혀도 엄마는 네 편이야"

2016. 5. 1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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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소수자의 날’ 부모들이 말하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17일 오전 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인 하늘(앞줄 왼쪽 둘째)씨 등 인권·종교·학생 단체 대표자들이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과 배제의 시선으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와 선동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분류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해 시작됐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부모는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기도 하지만, 혐오의 가장 큰 가해자일 수도 있어요.”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60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밝힌 이름은 ‘하늘’. 8년 전, 아들이 ‘게이’라는 걸 받아들인 뒤 새로 생긴 ‘활동명’이다. 아들의 성 정체성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성소수자’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엄마였다. 하지만 아들을 받아들인 이후 그는 동성애자·양성애자·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의 부모·가족 모임 대표를 맡아 아들과 같은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회견엔 성소수자 인권단체 26곳, 시민단체 95곳이 연대의 뜻을 밝혔다.

미국의 케이틀린 라이언 박사(보건정책학)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성소수자 자녀의 성 정체성을 강하게 거부하면 자녀의 자살 시도율이 8배, 우울증 발병률이 6배 높아진다. 트랜스젠더 김연희(가명)씨를 ‘치료’하겠다며 폭력을 휘두른 이도 그의 부모(▶‘동성애’ 치료한다며 “귀신 들렸다” 무자비 폭행)였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은 이날, 성소수자 자녀들을 먼저 품 안에 받아들인 엄마 아빠들이 적어도 자녀에게 ‘가해자’가 되진 말자며 <한겨레>에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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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뒤집어져도 나는 네 편이야” 게이 아들을 둔 엄마 하늘 2008년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4일 내내 학교도 안 가고 밥도 먹지 않은 채 잠만 잤다. 아들 친구에게 몰래 전화해 혹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때 처음 아들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됐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며칠간 굶던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지구가 뒤집어져도 엄마는 네 편이야.” ‘네 편’이라는 단어에 밑줄까지 그었다. “엄마, 밥 주세요.” 그렇게 아들은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30대에 접어든 아들은 5년째 파트너와 함께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 아들은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준 “최고의 엄마” 덕분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거부하면 성소수자 자녀는 갈 곳이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널 지지한다’는 부모의 한마디다.

■ “성 정체성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이 아들을 둔 엄마 지인 2013년 아들의 문자를 ‘몰래’ 훔쳐보고, 아들이 게이란 걸 알게 됐다.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 있니”. 할 수 있는 온갖 모진 말을 다 쏟아부었다. 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여긴 탓이다. 그러다 남편과 함께 <바비를 위한 기도>란 영화를 보게 됐다. 게이 아들을 인정하지 못한 엄마의 모진 말에 아들이 목숨을 끊는 내용이었다. 실화를 담은 이 영화가 나를 바꿨다. ‘동성애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잘못하면 내 아이가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이어지는데도 많은 성소수자가 왜 그걸 바꾸지 않겠는가. 동성애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도, 치유해야 할 필요도 없다.

■ “우리 아들, 혼자가 아니더라고요” 양성애자 아들을 둔 아빠 권영한 “아빠, 저 양성애자예요.” 2014년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시원하게’ 커밍아웃을 해왔다. 2011년 성소수자 인권 강의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내 아이가 혹시 성소수자라면 나는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그게 왜 어때서”라고 반문했지만, 솔직히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 고백한다. 그러던 중 아들의 제안으로 성소수자 혐오 문제를 다룬 한 지상파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방송 출연 이후 영상에 달린 댓글을 봤다. 몇만개의 댓글 중에서 아들과 같은 성소수자들이 사랑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태그하면서 “힘내자. 사랑한다”고 서로를 다독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 내 아들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가슴속 응어리가 스멀스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부모가 이해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항문섹스’ ‘에이즈’ 등 성소수자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자녀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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