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평가해달라"더니.. 댓글 달았다가 고소당했다

이태동 기자 2016. 5. 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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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가 된 SNS] [4] 성행하는 악플 유도 비즈니스 의도적으로 악플 유도 글 올려 댓글 달리면 무더기로 고소.. 합의금 요구하거나 민사소송 착수금 200만~300만원.. 상담센터 운영 법무법인도 등장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정한솔(26 ·가명)씨는 최근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SNS에 악성 댓글(악플)을 단 혐의로 고소당했으니 경찰에 출석하라"는 통보였다. 6개월 전 페이스북에 한 여성이 "내 얼굴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평가해달라"며 올린 사진에 "못생겼네. 관심종자(SNS에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구나"라는 댓글을 단 것이 화근이었다. "쓰레기같이 생겼다", "저 얼굴로 결혼이나 하겠나. 거지 같네" 등의 댓글을 단 수십 명도 정씨와 함께 고소당했다. 정씨는 "검찰로 넘겨진다니 겁이 나 100만원에 합의했다"며 "욕설을 한 것도 아니고 '평가'를 해달라기에 그렇게 한 것뿐인데 이게 죄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SNS나 인터넷에 일부러 악플을 유도하는 글을 올린 뒤 댓글을 단 사람을 무더기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해 합의금을 뜯어내는 이른바 '악플 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악플 장사꾼들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려 고소를 취하하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하는 조건으로 악플러들에게 합의금을 받아낸다. 실제로 지난해 경찰이 적발해 검찰로 넘긴 사이버상 명예훼손 사범 9517명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12.3%인 1174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혐의가 없다고 밝혀졌거나 고소인과 합의해 수사가 종결된 경우 등이다.

악플 장사꾼들은 먹잇감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악플을 유도하는 글을 올린다는 점에서 '악플러 사냥꾼'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찰에 따르면, 악플러 사냥꾼의 수법엔 일정한 패턴이 있다. ①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논쟁적인 글을 올리거나 다른 이용자들을 슬슬 약 올려놓고, ②악성 댓글이 달리면 무더기로 고소해, ③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민사소송을 거는 것이다.

특히 별생각 없이 장난 삼아 SNS에 댓글을 다는 청소년들이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자식의 장래에 불이익으로 작용할까 봐 부모들이 쉽게 합의를 해주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강수환(18·가명)군은 1년 전 한 여성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남자들이 군대에서 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게시물에 "미친X"이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고소당했다. 고소한 여성은 "고소를 취하하려면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강군의 부모가 나서 용서를 빌고 350만원에 합의를 봤다. 강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하긴 했지만, 철없는 청소년기에 잠깐 실수로 빨간 줄(전과)이 그어질까 걱정돼 어쩔 수 없이 합의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강군처럼 악플을 단 20명을 고소해 합의금 수백만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악플러 사냥꾼의 주된 활동무대는 국내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커뮤니티다. 국내에 서버가 있어 악플러의 신원을 추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해외 SNS에 댓글을 단다고 해서 사냥꾼들의 공격을 피해갈 순 없다. 경찰 관계자는 "사냥꾼들은 경찰에 요청하지 않고 직접 신상 털기를 통해 악플러의 신원을 파악한다"면서 "일선 사이버팀에는 이렇게 상습적으로 악플러를 고소하는 사람들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했다.

악플 비즈니스 시장(市場)도 생겨나고 있다. 악플 다는 사람들을 고소하기 위해 24시간 상담센터까지 운영하는 법무법인도 등장했다. 한 악플 고소 전문 법무법인 관계자는 "착수금 200만~300만원 정도면 악플러 수십 명을 무더기로 고소할 수 있다"고 했다. 합의금을 받아낼 경우 30% 정도를 성공보수로 법무법인에 떼준다고 한다. 본지가 직접 한 법무법인에 전화를 걸어 "내 글에 악플을 단 사람들을 고소하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하자 "한 명당 합의금 200만원씩만 잡고 10명만 모아도 2000만원이다. 특히 미성년자·취업준비생일 경우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답이 돌아왔다.

악플과 관련한 고소 남발이 심해지자 검찰에서도 대책을 내놓았다. 검찰은 지난해 4월 "합의금을 목적으로 여러 사람을 고소하고 부당하게 합의금을 요구하면 공갈죄·부당이득죄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경미한 악플의 경우 조사 없이 각하하고, 초범이며 반성의 기미가 있으면 정상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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