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갈 곳 없는 장애학생

입력 2016. 4. 16. 03:01 수정 2016. 4. 16.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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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은 장애인의 날.. 어두운 현실]
[동아일보]
“왜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에 방치하지요?”

자폐증 진단을 받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아버지인 김모 씨(42)는 최근 담임교사에게 불려가 이런 말을 듣고는 억장이 무너졌다. 안 보내고 방치하다니…. 4년째 특수학교 배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장애인을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 수준에 상처를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여기에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특수학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설립이 잇따라 무산되거나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는 자폐증이나 지적장애 같은 인지기능 장애, 언어발달 장애 등을 의미한다.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지만 신체가 건강해 외형상으로는 장애인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학생들의 상당수는 일반학교로 보내진다.

명분은 ‘통합교육’.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장애 학생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기를 수 있고 비장애 학생도 약자를 보듬는 법을 배워가는 이상적인 교육이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복도로 뛰어나가거나 소리를 지르는 자폐 학생, 교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이 일반학교에 떠넘기듯 맡겨진다. 적응에 실패하면 또 다른 학교로 옮겨간다. 수도권의 한 교육지원청 특수교육 담당자 김모 씨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는 셈”이라고 표현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취급을 견뎌야 하는 장애 학생, 그리고 강도 높은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 이들을 마주해야 하는 비장애 학생의 서툰 동거로 학교는 늘 긴장 상태다.

주민들 “장애인 학교 싫다”… 외면당한 자폐아들, 발만 동동 ▼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동대문구 성일중학교 안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교육시설을 설치하기로 하자 학교 앞에 일부 학부모가
‘어린 학생과 장애인은 공존할 수 없다’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위 사진)를 내걸었다. 이에 반발한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시설
설립을 촉구하며 성일중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장애인에게는 해당 장애에 맞는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꼭 필요한 교육일 뿐이다. 하지만 2016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교육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올해로 ‘장애인의 날’은 36년째를 맞지만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세보단 ‘장애는 불편하고 덜 떨어진 상태’라고 인식하는 세태가 여전하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특수학교 설립이나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 편성도 비장애인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는 현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같은 장애인 학교 ‘님비(NIMBY)’ 때문에 고통 받는 생생한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장애인 싫다는 못난 편견

특수학교 부족 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서울이다. 2003년 특수학교를 마지막으로 설립한 이후로 14년 동안 단 한 곳의 특수학교도 세우지 못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없는 자치구는 8곳(양천, 금천, 영등포, 용산, 성동, 동대문, 중랑, 중구)에 이른다.

학교 설립이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의 반발이다. 2018년에 개교할 계획으로 서울 강서구에 설립이 추진되던 발달장애 대상 ‘서진학교’와 2019년 중랑구에 건립할 예정이던 ‘동진학교’는 모두 주민들의 반대로 아직 공사의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특히 강서구는 지역 정치인이 특수학교 설립 예정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전국적으로도 특수학교 설립이 지연되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기도교육청은 용인시 처인구에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지만 주민 반대 때문에 착공조차 못했다. 강원도교육청이 설립을 추진하는 원주특수학교와 동해특수학교는 지난해 12월까지 주민 반대로 착공을 하지 못하다 최근에야 가까스로 공사를 시작했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만큼이나 장애인과 학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장애인 혐오 발언이다.

설립 무산 위기에 처한 서진학교 예정 부지에서 지난해 말 공사를 촉구하던 장애인 학부모 강모 씨(47)는 지역 주민에게 견디기 힘든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이 주민이 “(강 씨 자녀가) 국립한방의료원에서 한방치료를 받으면 장애가 나을지도 모르죠”라고 비아냥거린 것. 강 씨는 “모욕감이 들었고 주민들이 장애인과 공존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아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먹먹해졌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8월 서울 동대문구 성일중 안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시설 ‘서울커리어월드’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일부 지역 주민은 “장애인과 성일중 학생들은 공존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차라리 쓰레기장이 들어오는 것이 낫다”라고 폭언을 한 주민까지 있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지역 주민들은 지역 정치인의 힘을 빌려 반대투쟁에 나서기도 하는데 여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주민 반대에 힘을 보태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며 “외롭고 쓸쓸한 장애인을 누가 대표해주나 싶어 더 씁쓸해진다”라고 말했다.

일반학교로 등 떼밀리는 발달장애아들

김모 씨(21)는 한때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매일 죽는 사내’로 불렸다. 그가 고교 3학년이던 2014년 3월 한 달간 관내 경찰서에 보고된 자살 시도 횟수만 7번. 그는 매번 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오금동 횡단보도와 마천동에 위치한 PC방 4층 옥상이었다.

그해 3월 17일 오전 2시. 정적을 깨는 무전소리가 들렸다. 송파경찰서 소속 당직 경찰은 누군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에 장소를 확인하고는 “아마 그 녀석일 거야”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경찰이 데려온 사람은 바로 김 씨였다. “내가 쥐포가 되도록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면 사람이 쥐포처럼 납작해진다고 생각했다. 경찰서에서조차 자살하겠다며 총을 빼앗으려고 난동을 부렸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김 씨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지원했지만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볍다는 이유로 입학이 거부된 학생이었다. 김 씨의 아버지(61)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중증장애인이 특수학교를 들어가는지 궁금할 정도”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들의 장애와 학교, 사회의 차별에 찌든 표정이었다.

김 씨는 발달장애 1급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평소에도 안절부절못하고, 자동차의 사이드미러를 이유 없이 발로 차는 등 또래 친구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때 두 번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정신지체 질환으로 장애등급을 받은 것은 그가 중학교 2학년 때인 2009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고교 진학 무렵 특수학교를 지원했는데 안 됐어요. ‘몸은 멀쩡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교육지원청은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으면 좋아질 거라고 했죠.”

김 씨의 아버지는 뒤늦게 병원에서 운영하는 치료학교도 알아봤지만 “대기 인원이 꽉 차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운 좋게 들어간다고 해도 한 달에 80만 원에 이르는 수업비가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송파구에 위치한 일반고로 아들을 보냈다.

일반고 특수학급에 배치됐지만 장애 종류가 전혀 다른 지체장애 학생과 같은 반에 묶였다고 한다. 그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골칫덩어리가 됐다. 예체능 시간엔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반을 썼는데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거나 불안해하는 증세를 보였다. 심지어 수업 중에 커터로 손목을 그으려고 해 교사와 학생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통합교육 시간에는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곤 했다. 고3 때는 학교를 가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 “복합장애 나타나야 특수학교 입학 발달장애아는 부모에 기댈 수밖에…” ▼

학생들은 김 씨를 두고 정신병자라고 수군댔다. 사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또래들이 한겨울에 김 씨를 학교 정문 앞 분수대에 밀어 넣어 아버지가 학교에 옷을 가져다 준 적도 있었다.

김 씨는 2014년 4월 경찰서를 수차례 오가던 중 정문 앞에 서 있던 의경에게 돌을 던져 처음으로 입건됐다. 지난해까지 발달장애·지체장애 교육기관이 설치된 대전소년원(대산학교)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1년을 보냈다. 지금은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맡겨진 상황이다. 아직도 그의 학적은 일반고 3학년이다.

긴 시간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김 씨만이 아니다. 서울의 한 일반고에 재학 중인 발달장애인 A 군(18)은 지난해 성동구의 학교에서 광진구의 현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지난해 일반고에서 특수학급에 배정받았으나 주로 예체능 시간에 이뤄지던 통합수업 도중에 알 수 없는 괴성을 계속 지르는 게 문제가 됐다.

전학 간 학교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5월 A 군은 텃밭에 나가서 진행하는 야외실습을 거부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울부짖는 등 불안증세가 계속되자 당황한 교사는 활동보조인을 학교로 불러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자 A 군은 갑자기 조리용 칼을 들고 복도로 달려 나갔다. 결국 A 군은 이를 막아선 교사의 팔에 칼을 휘둘러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A 군의 집 근처인 서울 동대문구와 중랑구에는 발달장애인 특수학교가 없다. 가장 가까운 발달장애인 특수학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에만 1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마저도 한 반 7명 정원에 3명씩 초과한 상태였다. A 군은 다시 일반계 고교로 떠밀리듯 전학을 갔다.

70%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특수학교

교육부에 따르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장애학생은 2006년 6만2538명에서 지난해 8만8067명으로 2만5529명(40%)이 급증했다. 이전에는 장애를 쉬쉬했지만 이제는 진단을 받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국의 특수학교는 143개교에서 167개교로 24개 학교가 늘고 증가한 정원은 2000여 명에 그쳤다. 현재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자의 약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70%는 특수학교에 들어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특수학교 정원마저 줄어들었다. 2008년 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특수교육법)에 따라 특수학교 정원이 학급당 △유치원 4명 △초등학교·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으로 조정된 것. 이전에는 학급당 정원이 최대 12명이었다.

그러나 각 시도교육청이 학교를 설립하려고 해도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증가하는데 이에 맞춰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갈 곳 없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넣기 위해 일반고의 학급 수를 무리하게 늘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울정민학교는 2001년 개교 당시 23개 학급으로 시작했는데 올해 40학급까지 늘었다. 직업훈련실, 재활실, 체육실 등이 있던 자리를 전부 교실로 바꿨다. 이 학교 관계자는 “처음엔 장애인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지금은 보육이나 하면 다행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통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중증 장애학생을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배치하는 시도교육청 실무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시도교육청에 소속된 특수교육운영위원회 위원은 장애 정도와 필요에 따라 학생들을 특수학교와 일반학교(특수학급)로 나눠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합교육의 우수성만 앞세워 장애학생의 학부모에게 일반학교를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데 급급하다.

서울시교육청이 위촉한 특수교육운영위원회 위원 김모 씨는 “복합장애가 나타나지 않는 한 특수학교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설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숟가락을 쥐는 법 등을 배우는 재활훈련이 필요한 지체장애 학생과 시계 보는 법을 모르는 발달장애 학생은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갖고 가르칠 수 있는 특수학교로 보내야 하는데도 일반학교에 보내는 게 현실”이라며 “학부모가 각자 잘 치료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내실 있게 할 수는 없을까. 학부모들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특수교육법 제2조는 통합교육을 ‘특수교육 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장애 유형·장애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반학교도 법적으로 이에 걸맞은 시설을 갖추고 교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이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발달장애, 지체장애 등 장애 종류에 맞춰 교원을 전부 확보하기도 어렵고 학생이 졸업하면 교사만 남겨 놓을 수도 없어 사립학교에서 채용을 꺼린다”고 털어놨다.

더 큰 문제는 학습 성과를 내야 하는 교육 현실이다. 김남연 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회장은 “우리의 교육목표는 공존이 아니라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다 보니 성과가 더딘 장애학생과 같이 수업을 받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통합교육이 원칙이라고 해도 준비되지 않은 장애·비장애 학생의 ‘강제 통합’마저 환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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