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들은 왜 '새누리 참패'를 예측 못했나

정철운 기자 2016. 4. 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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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157~175석” 민심 못 읽은 기자들… 잘못된 여론조사, 정치인 발언에만 의존, 숲을 못 보는 한계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 45.8%, 제가 28.5%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17.3%p 격차입니다. 이 숫자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이것이 왜곡인지 아닌지 제가 증명보이겠습니다.”(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 트윗) 4.13총선에서 정세균 후보는 52.6%를 득표해 39.7%를 득표한 오세훈 후보를 여유 있게 제치고 당선됐다. KBS 여론조사와 개표결과의 격차는 무려 30.2%p였다. 정세균 후보의 선전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수준의 격차다. 틀려도 너무 틀렸다.

▲ 정세균 더민주 후보의 트윗.
▲ KBS 총선 개표방송의 한 장면. 정세균 후보는 당선됐다.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총선 3일 전인 4월1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새누리당 157석~175석, 더민주 83석~100석, 국민의당 25석~32석 등 예측 결과를 내놨다. 언론사는 이를 근거로 판세를 예측하고 정당별 반응을 담았다.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실패를 예상한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었고, 더민주는 123석으로 원내 1당이 됐다. 새누리당은 3자구도로 얻은 어부지리 의석이 33석으로 나타났다. 여소야대, 그야말로 여당의 참패였다.

정치부 기자들의 예측은 왜 이렇게 크게 빗나갔을까. 당장 정치부 기자들의 능력이 도마에 오른다. 중앙일간지의 부장급 인사는 “유선전화 중심 여론조사가 내놓은 잘못된 숫자에 기자들이 민심을 착각했다. 다야 구도가 표를 분산시켜 여당에 유리할 거란 도그마에 사로잡혀 정작 유권자의 삶과 기사가 분리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정치기사는 현장의 민심보다 여의도에 갇힌 정치 분석만 가득했다”고 덧붙였다.

정치부 기자들은 주로 당직자를 만나고 정치인의 말에 주목한다. 정치저널리즘의 한계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번 총선국면에서 ‘옥새파동’이나 ‘비례파동’ 당시 김무성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수십 명의 기자들이 길바닥에서 ‘뻗치기’를 하고 똑같은 말과 표정을 전달하는 취재시스템이 민심을 왜곡하려는 의도와 상관없이 민심과 괴리되는 기사를 만든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이 말에 의한 정치만 따라 다닌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 여기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조윤호 기자
열세·경합지역으로 언론이 보도했던 곳의 당직자들은 정치기사와 현장의 ‘괴리’를 꼬집었다. 인천시 지역구에서 당선된 더민주 캠프관계자는 “현장 분위기로는 당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언론이 비관적으로만 이야기해서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들은 유권자에게 묻는 대신 유권자 표심을 한 번 가공한 당직자나 전문가 이야기만 듣는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테이블에 앉아 데이터만 보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 지역구에서 당선된 더민주 캠프관계자는 “유세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유승민 사태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출·퇴근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현장서 느낀 것과 언론보도는 많이 달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작 기자들이 현장을 모른다. 기자들이 인터넷만 보고 비슷하게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이 같은 정치기사의 ‘비현실성’은 기존 레거시(legacy) 저널리즘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대원 언론학 박사(전 매일경제 기자)는 “기성언론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정치·사회분야였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분석능력에서 기성언론의 능력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다들 정치 기사를 못 믿겠다고 한다. 기존 언론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사회 기사는 (신뢰의) 마지노선이었는데 이 부분도 균열이 생겼다”고 우려하며 “(이번 예측실패는) 어떤 형태로든 언론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조선일보 3월29일자 2면.
정치저널리즘의 떨어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정치지형을 분석하는 기본 틀인 여론조사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권자가 접해온 여론조사는 대부분 유선전화RDD 방식이다. 유선 여론조사는 집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노년층 의견이 확대 대표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유선 조사의 편향성을 보완하기 위해 인구비례 가중치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으나 가중치를 부여해도 ‘여당 편향’이 바로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언론사에서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지만 부정확한 여론조사를 반복하고 있다. 비용 때문이다. 주요 시사주간지의 중견 기자는 “대부분 언론사가 여론조사는 해야 하는데 돈이 없는 상황이다. 유선RDD로 하면 500만원 미만에 할 수 있는데 휴대전화RDD를 포함하면 1000만원이 넘어간다. 방송사도 출구조사에 모든 예산을 쏟아 붓고 사전조사는 유선 RDD를 쓴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이번 ‘예측실패’를 “돈 없는 언론사와 날림 여론조사업체의 합작품”으로 정의했다. 이 기자는 “기자들은 현장 르포만으로는 감이 안 오니까 여론조사를 근거로 전망기사를 쓰게 되는데 유선 RDD로는 젊은 층의 표심을 잡아낼 수 없다. 그 결과 필리버스터 이후 여론을 읽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결과가 편의지향적인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것도 잘못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지금껏 ‘앉아서 써왔던’ 정치부 기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김대원 박사는 그러나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자들은 기사를 썼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정확했던 예측은 수십억이 소요된 지상파3사의 공동출구조사였다. 정확한 민심 예측에는 인력과 비용이 소모된다. 취재기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치기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뉴스수용자들이 질 높은 기사에 돈을 지불하는 구조가 우선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구조는 정치인의 코멘트를 받아 빨리 송고하는 식의 ‘값싼’ 기사의 ROI(투자 수익률)가 가장 높은 상황이다. 기자들에게 더 좋은 정치기사를 쓰라고 주문하기도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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