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플러스] 나이 많은 교수라 음담패설?..7년간 방치한 학교

안현모 기자 2016. 3. 2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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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교수가 올해 신입생들에게 써오라며 나눠준 과제입니다. 허리 사이즈, 목 사이즈, 상의 사이즈가 뭐냐 당신의 미의 기준이 뭐냐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겨봐라 등등 장난인가 싶은데요, 나중에 취업할 때 면접관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무조건 꼼꼼히 작성해오라고 내준 이력서였습니다.

얼마 전 8시 뉴스를 통해서도 보도해 드렸는데요, 문제는 이 이상한 이력서 한 장, 이상한 교수 한 명에서 그친 게 아니었습니다. 강청완 기자가 그 뒷이야기를 취재파일에 남겼습니다.

해당 교수의 수강생으로부터 강의를 녹음한 음성 파일을 어렵사리 구했습니다. 방송에는 5초 남짓 짧게 소개됐는데요, 수업의 절반이 육두문자와 비속어라서 그나마 '삐' 처리 하지 않고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깨끗한 부분을 고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욕설과 음담패설뿐 아니라 성적인 발언도 차마 리포트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성인 남학생 여학생 수십 명을 앞에 두고 분자의 +, - 성질을 성관계에 비유한 건 약과였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으로 한창 들떠 있어야 할 16학번 새내기 학생들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심한 모욕감에 자괴감까지 느꼈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비싼 등록금으로 학교를 다니는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부터 내가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와서 이런 대접을 받나 하는 자기 비하까지,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모르겠는 깊은 상처와 고뇌로 힘들어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늘 그렇듯 교수에게 밉보여선 안 되기 때문에 게다가 해당 학과는 실기 점수가 중요한 방사선학과였기에 학생들은 침묵하며 부당한 관행들을 참아야 했습니다.

일부 학생들이 학교 측에 항의했지만,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함구령부터 떨어졌고, 선배들은 학과 이미지부터 걱정하며 후배들의 SNS를 단속했습니다. 정작 걱정할 건 따로 있었는데 말입니다.

기자가 해명을 들으러 찾아갔을 때도 학과장은 교수가 나이가 많아서 옛날 방식으로 가르친 것 같다고 설명했고, 교무처장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문제의 교수 당사자도 학생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려 했을 뿐 사과할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쯤 되면 교수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의식이 잘못돼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 기자는 철저한 재발 방지를 약속할 테니 뉴스에 내보내지 말아 달라는 학교 측 부탁에도 오히려 기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교수 한 사람을 면직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문제 제기를 받고도 쉬쉬하기에 급급했던 학교와 황당한 수업 내용을 알고도 7년간 방치한 학과, 그리고 학생들 마음은 눈곱만치도 헤아리지 않았던 교수 모두가 공범이 되어 함께 빚어낸 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좀 아프더라도 적폐를 해소하는 데에는 가끔 외부의 충격이 필요합니다.

▶ [취재파일] 취업하려면 '성형하고 싶은 신체부위' 써라?   

안현모 기자ahnhyunm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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