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반짝' 이런 정치 다 '폐지'당

정재현 2016. 3. 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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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폐지당' 양유진 활동가

[오마이뉴스정재현 기자]

지난 2월 17일, 장애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차별에 저항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양유진 활동가를 만났다.

전장연은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나 활동보조 서비스 투쟁에 선두에 서왔으며, 현재는 빈곤사회연대 등 단체와 함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하고 광화문역에서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전장연이 오는 4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당' 출범을 선언했다. 너도나도 '당'을 출범하는 지금, 어떤 이슈로 장애·빈민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는 '당'을 출범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자 광화문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거 끝나고 소식 없는 후보들... 직접 나설 수밖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양유진 활동가
ⓒ 금속노동자 신문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장연 서울지역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이번에 출범을 앞두고 있는 폐지당 준비위원 양유진입니다."

- 이제 곧 농성이 1300일차입니다. 처음 농성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흔히 우리 농성장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농성장이라고 이야기해요. 한국 사회에서 주된 복지 대상층이라 할 수 있는데, 국가가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는 장애등급제라는 기준을 매겨 복지 수급권 밖으로 내쫓고 혜택을 받지 못하게 걸림돌을 만들고 있어요.

빈곤 문제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는데 부양의무자 기준을 만들어 놓고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가난과 장애는 개인 책임이 아니라는 고민을 가지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같은 '악'의 기준을 없애자는 투쟁을 하기 위해 이곳 광화문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로 인한 장애, 빈곤 주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부양의무제의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녀가 있어서 혹은 부모가 있어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장애등급제의 경우 장애 등급이 1,2급 그리고 중복 3급이 아니면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자 기준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생활 전반이 어려워져요. 그러나 대상자 선정할 때 당사자의 삶과 현실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나 아닌가만 보기 때문에 복지의 사각지대가 굉장히 커요."
 
- 농성을 1300일 가까이 하셨으니 안 해본 투쟁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투쟁을 펼쳐오셨나요?
"저희가 농성을 2012년 8월 11일부터 시작했어요. 당시 대선으로 한창 시국이 시끄러울 때였죠. 농성 이전에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웠어요. 그래서 농성시작하고 선전활동에 집중하면서 이 문제를 알리고 정책적인 내용을 변화시키는 투쟁을 전개했어요.

또, 당시 선거철이니까 정치인들이 농성장에 많이 다녀갔어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기도 하고, 안철수 후보도 고 김주영 동지 장례식장에 얼굴을 비췄어요.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서는 소식이 없네요. 하지만 진보정당들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농성장 지킴이도 맡아주시면서 함께 투쟁하고 있어요."

농성 초반엔 각 정당의 대선 후보에게 엽서를 보내는 투쟁과 함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바라는 시민들의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현재도 서명운동은 계속 진행중이다.

- 이 외에도 다양한 기획 투쟁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2013년 겨울엔 12월 한 달 내내 백기완 선생님이나 김조광수 영화감독 등 유명 인사분들과 농성장에서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려내는 활동을 했어요. 2014년엔 '차차차(차별을 걷어차는 자동차)'라고 해서, 리프트차 5대를 공수해서 10여 명이 팀을 꾸려 세종시도 가고, 부산까지 총 7박8일 동안 전국 순회를 투쟁을 했어요.

이때 부산 지역의 철거민이나 굴뚝에서 투쟁하던 스타케미칼 해복투 차광호 동지와도 연대했어요. 작년엔 농성 1000일부터, (투쟁) 3주년을 앞둔 95일 동안 '우리 삶에 적색 신호가 켜졌다'고 해서, 전국 곳곳 파란 신호등에서 우리 목소리를 알리는 '그린 라이트를 켜줘' 투쟁도 하고요."

"폐지당은 장애인·빈민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정당"

 지난 1월 27일 폐지당 준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사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이러한 투쟁의 연장에서 이번에 폐지당을 창당한 건가요?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정책협약을 맺고 마치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약속을 하는데, 선거가 끝나면 약속은 사라져 버리니 허무하더라고요. 진보정당은 예외로 두더라도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여당, 야당을 보면 기대할 것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더라고요.

'장애당사자, 빈민들이 주체적으로 거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정치를 해보자, 요즘 너도나도 당 만드는데 우리도 못할게 뭐 있냐' 이런 도발적인 심정도 들었고요. 그래서 폐지당을 출범하게 되었어요."

- 폐지당은 어떤 분들이 준비하고 있나요?
"장애, 빈민 당사자들을 최대한 조직하고 있어요. 정식 당이 아니기 때문에 연대 단체든, 기존 정당 당원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당원이 될 수 있고요. 당 준비는 기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집행부가 폐지당 준비위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당원 모집은 선거 직전까지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

지난 3월 10일, 폐지당은 창당대회를 개최했다. 창당대회에선 장애·빈민 당사자들이 지역 비례대표로, 성소수자·철거민·홈리스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영역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폐지당은 정식 정당이 아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모임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정한 것도 상징적인 의미만 지닌다. -기자주)

- 폐지당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폐지당과 함께하는 이들이 '정치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폐지당이 쉽게 이해가 되는데, 몇몇 분들은 이게 어떻게 당인지, 진짜 정당을 만들고 후보를 내는 건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폐지당을 준비하면서 인권, 성소수자 등 여러 운동 진영과 함께 만나게 되는 연대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더욱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 부탁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농성이 마침표를 찍을 텐데, 그때 좌절하는 게 아니라 몇 년간 우리가 고생해서 이 정도 성과를 얻었다, 서로 토닥이면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군가 손을 뻗으면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가지면 좋겠어요."

현재 제도권 정당은 '진박'을 자처하며 대통령에게 줄 서고, 운동권 진영은 계파 간 헐뜯기에 바쁘다. 진보정당은 마치 자신들이 노동자 민중의 대표임을 자처하지만 '정치'는 없고 '표'만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소외 받는 장애인들이 직접 정치를 위해 나섰다.

누군가는 '진짜 정당도 아닌데 무슨 정치를 하느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체 '정치'란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노동자 장애 빈민의 삶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이 사회를 체제를 바꾸기 위해 이들이 정치의 주체로 서는 과정이 '정치'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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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재현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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