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년 6억∼7억원 기부하는 '청년 버핏' 박철상씨

2016. 2. 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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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회사일 병행하며 종자돈 불려 수백억원대 자산 보유 "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남들에게도 기회 줘야" "40년간 현 기부 수준 유지..점차 제 이름 걷어내고 갈 길 가겠다"
'청년 버핏' 박철상 씨 (대구=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매년 6∼7억원을 기부하는 박철상(32·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부 철학을 밝혔다. 2016.2.24 psykims@yna.co.kr
'청년 버핏' 박철상 씨 (대구=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매년 6∼7억원을 기부하는 박철상(32·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부 철학을 밝혔다. 2016.2.24 psykims@yna.co.kr
'청년 버핏' 박철상 씨 (대구=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매년 6∼7억원을 기부하는 박철상(32·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부 철학을 밝혔다. 2016.2.24 psykims@yna.co.kr

학업·회사일 병행하며 종자돈 불려 수백억원대 자산 보유

"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남들에게도 기회 줘야"

"40년간 현 기부 수준 유지…점차 제 이름 걷어내고 갈 길 가겠다"

(대구=연합뉴스) 한무선 기자 =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 제 앞에 있는데 허기진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 같이 먹는 게 가장 좋은 일이죠. 저 혼자 다 먹을 수 없거든요."

대학생 신분으로 고액 개인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고 연간 7억원에 가까운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기부 왕' 박철상(32·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가 기부 활동을 이같이 비유하며 설명했다.

자칫 건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들어보면 그가 기부를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으며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관념을 배제하고 있다는 태도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박씨가 보유한 수백억원대 자산은 부모에게서 직접 물려받거나 일확천금으로 번 게 아니다. 스스로 종자돈을 모으고, 졸업을 유예하며 회사에 다니고, 공부해 불려가며 축적한 것이다.

박씨는 "제게 기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차원이다"며 "훌륭한 부모님 등 부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저는 타고났기에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 기부함으로써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게 여유가 되는 돈이기 때문에 기부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자수성가한 사람도 자기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늘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또 "기부금을 출연하는 것은 기부를 시작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기부금을 받는 사람에게 기부자의 취지에 맞게 돈이 전달될 때까지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야 그것이 진정한 기부이며 기부의 완성이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자신이 말한 '기부의 완성'을 위해 애초 올해 유학을 떠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앞으로 3∼4년간 국내에 머물며 기부사업이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돌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그동안 다니던 자산운용회사에서 나와 남은 학기를 마치기 위해 학교에 다니며 기부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보유한 부동산도 없고 차 한 대 굴리지 않는 그는 외관상 수수한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다음은 박씨와 일문일답.

-- 유학을 떠나기로 해 이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 유학 계획이 지금 많이 틀어진 상황이다. 공부하러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그동안 장학기금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워낙 드는 바람에 그리됐다. 애초 올여름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따러 미국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거시경제를 분석하다 보니 올 하반기를 시작으로 내년에 본격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오겠다 싶어 그것도 걱정거리가 됐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관계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기업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기부금이다. 가계도 어렵고 지원도 못 받으면 없는 분들이 이중고를 겪게 된다. 제 기부사업 토대를 더 다져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유학 계획을 3∼4년 늦췄다.

-- '한국의 청년 버핏'으로 불릴 정도인데 어디에 얼마나 기부하고 있는지.

▲ 우선 보육원, 조손가정, 홀로 어르신, 소년소녀 가장 등에게 연간 7천만∼8천만원을 기부한다.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시민단체나 공익단체에 매년 4천만원 정도가 들고, 고등학교 2곳과 경북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것이 연간 5억원이다. 얼마 전에는 의료비 지원을 위한 '복현의료기금'도 출연해 해마다 5천만을 낸다. 다 합쳐서 연간 6억 5천만원에서 7억원 사이가 될 것으로 본다.

-- 언제부터 기부를 시작했나.

▲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유복하게 자랐는데 대입 무렵 가세가 기울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혔다. 당시 억울하다고도 생각했다. 이후 군대에 가 거기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자 마음이 바뀌었다. 좋은 부모와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지 않았나 싶었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친구는 애초부터 기회를 박탈당한 것 아닌가 하는 구조적인 문제의식이 생겨 여유가 생기면 도움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2007년 제대한 뒤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면서 시설에도 지원금 편차가 큰 걸 알게 됐고, 그때 한두 군데 돈 몇십 만원씩 보내준 게 시작이었다.

--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배경이 있다고.

▲ 제 스스로 한계에 맞닥뜨려서다. 다른 분들이 좀 같이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가입했다. 기부를 적극 알리면 뒤따라오지 않을까 싶어서다. 제가 애초 계획보다 기부 규모를 더 늘렸기에 힘에 부치는 부분도 있고, 앞으로 고등학교 2곳에 장학기금을 더 지원할 생각이라 빠듯하다. 실제로 제가 지난달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고 나서 저를 보고 가입했다는 분들 얘기가 들리더라.

-- 기부금 중 장학기금 비중이 큰 까닭은.

▲ 원래부터 장학기금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건 수십 년 뒤 계획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다 2013년 하반기 제가 다니는 과 장학금으로 3천만 원을 처음 내놨다.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버느라 자기 역량을 개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후배들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당시 10∼15년 뒤쯤 학교 전체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으나 2014년 세월호 사고를 겪으며 또 생각이 바뀌어 지난해 경북대생을 위한 '복현장학기금'을 개설했다. 1년에 제가 지원하는 장학생 수는 고교생과 대학생 합쳐 300명 정도이고 금액은 5억원 정도다.

-- 세월호 사고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당시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책도 눈에 안 들어왔다. 밤에 잠도 안 오고 해서 어차피 여기서 잠 못 들 바엔 진도에 가서 쓰레기나 줍자 하는 마음에 사고가 난 다음 주 월요일 진도로 갔다. 진도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는 되돌아오려고 했는데 안산에 임시분향소를 차렸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갔다. 그때 임시분향소에서 하룻밤 자원봉사를 하며 단원고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해서 사제관계 등에 대해 그전엔 회의감이 있었으나 세월호 사고 때 탈출할 수 있었는데도 자기 조끼 벗어준 학생들 얘기 등을 듣고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그때 장학기금을 지금 당장 준비하고, 고교 장학 대상자를 넓히고, 좋은 교사를 양성하자고 마음먹었다.

-- 장학기금을 내놓고 나서 관리하는 게 남다른데.

▲ 장학금 대상자 선정에 관여한다. 대개 장학금 대상자는 소득이나 성적 기준으로 선발하지만 제 경우 복현장학기금을 예로 들면 1, 2차로 나눠서 대상자를 선정한다. 1차는 서류와 에세이, 2차는 교수 면접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각자 처한 경제적 형편이 어떤지, 의지와 열정이 있는지, 인성이 잘 갖춰져 있는지를 살핀다. 작년 1회 복현장학기금 대상자 선정 때는 수백명의 에세이를 모두 읽었다. 인성을 보는 것은 제 장학사업이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장학금을 받은 친구들이 나중에 자신들도 남을 위해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자산운용업 길로는 어떻게 들어섰나.

▲ 2004년 대학에 들어가기 전 재수하고서 비는 시간이 있어 투자를 한 것이 자산운용 시작이다. 그전에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체계적인 경제관을 잡으라고 주식 계좌를 만들어주신 일이 있다. 돈이 없으니 모의투자를 했는데 실적이 좋았고 그 경험이 경제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일깨워줬다. 원래는 문학을 좋아했지만 주식을 접하면서 경제정책, 정치적 이해관계, 국제관계, 외교, 종교, 문화 이런 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책도 이것저것 많이 읽고 시야가 넓어졌다. 물욕이 적은 편이어서 주식 투자를 할 때 냉정한 판단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렇게 통찰력과 거시경제를 보는 안목이 생겨 빨리 부를 쌓는 동력이 됐다. 지금도 책은 1년에 130∼150권 정도를 읽는다.

-- 투자에 대한 생각을 더 들려달라.

▲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투자교육이 없는 것이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초등 교육과정에 파이낸스 분야가 있어 어릴 때부터 경제관, 금융관을 잡아준다. 우리는 초·중·고 과정에서 그게 없고 고교 경제 과목도 금융관을 키우는 데 별 의미가 없다. 선진국은 간접투자 비중이 높은데 우리는 직접투자 비중이 크고 또 그만큼 시장 안정성이 낮다. 선진국처럼 투자전문가도 길러내지 않는다. 직접투자는 돈을 벌어도 문제, 잃어도 문제다. 돈을 벌면 자기가 하는 일을 경시하게 되고 반대로 돈을 잃으면 패닉 상태가 돼 가장이 가장 역할도 못한다. 사회적 손실이 크다. 제가 경영학을 공부하려는 것도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투자전문가 후학을 양성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 앞으로 기부와 진로 계획은.

▲ 40년간 기부할 계획을 잡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비용 등을 계산하니 작년 7월 목표한 자산 규모에 딱 도달했다. 그래서 자산운용업을 접기로 했고 더는 그 일은 하지 않는다. 기부 계획을 세운 만큼 앞으로 기부 규모를 크게 늘리지는 못하고 지금 수준으로 40년은 유지할 생각이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가고자 기부사업에 관여하는 것이다. 제게 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차원이다. 여윳돈으로 하는 것이며 희생하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고 계획대로 기부하겠다. 저는 장학사업을 하는 이들 중 한 명이고 앞으로 많은 분이 이 일을 함께 해나가야 하므로 장학기금이 자리 잡으면 여기저기에 있는 제 이름도 걷어내려고 한다. 3∼4년 후에는 MBA를 취득하러 유학할 것이고 그 과정을 마치면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순서가 바뀌었지만 이제부터 공부해 제 길을 찾아가겠다.

ms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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