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미군은 백마 타고 온 천사였나

강창욱 기자 2016. 2. 2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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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소공원 앞에서 열린 효순ㆍ미순양 3주기 추모 촛불집회. 국민일보DB
2003년 6월 13일 미8군 영내 교회에서 열린 효순ㆍ미순양 추모 예배. 국민일보DB
국민일보 1992년 11월 5일자 '윤금이 피살 사건' 보도. 국민일보DB
주한미군의 10대 여학생 성폭행 사건으로 미8군에 야간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진 2011년 10월 12일 밤 미군 헌병들이 서울 이태원의 클럽과 주점을 순찰하는 모습. 국민일보DB

일어나 보니 반미-빨갱이가 돼 있었다.

나는 지난 17일 만난 80대 여성이 그 긴 세월을 살며 겪었다는 일들을 기사로 전했는데 그 첫 부분이 해방 이후 주한미군의 부녀자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고양 원당에 주둔하던 미국인들은 수시로 인근 마을 여자를 잡아다 강간했다고 그 80대 여성, 강씨 할머니는 말했다.

[관련 기사 보기]

▶미군이 오면 소녀는 땅속에 숨어야 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해자가 미국인이 맞는지 다시 물어야 했다. 미국인이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초 알고 간 이야기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강씨 할머니를 만나러 간 건 그가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굴속에 숨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터무니없는 한일 위안부 합의부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했다 지운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까지, 위안부 이슈가 굴러가는 상황에서 강씨 할머니 사연에는 시사성과 시의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려 말할 이유도 없어서 그런 증언이라면 더 시사점이 있었다(이 말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기만적 주장을 한다는 식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만난 분이 시작부터 내가 듣고 간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니 잠시 난감했다. 일본 쪽이 아니라 미군이 여자들을 잡아가서 벌어진 일이라면 이야기의 시의성은 기각당할 수 있다. 기사가 시의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걸 왜 썼느냐”는 식으로 저의를 의심받게 된다. 물론 이 기사는 학력인정학교 졸업을 앞둔 고령 여성의 인생사를 듣는 것이었으니 형식적 시의성은 담보되지만 내용의 시의성이 위태로워지는 것까진 어쩌기 어렵다.

나로서는 상대의 말이 달라진 것이라 강씨 할머니 기억에 착오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단서는 학력인정학교가 졸업식을 알리기 위해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거기에 ‘일제시대 때 위안부로 잡아가는 것을 피해 굴속에 숨어 지내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던 강옥준(84세) 학생’이라고 언급돼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설명은 제삼자들이 옮겨 적으면서 생긴 오류였고 할머니가 말을 바꾸거나 한 건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재차 확인했다면 위안부 징집이 아니라 미군을 피해 숨은 것이었다고 강씨 할머니는 정정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가려 말하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도중 부녀자 약취 가해자의 국적이 애초 생각한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는 대목은 이렇다(강씨 할머니가 잘못 기억하거나 말을 바꾼 게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그 부분 문답을 그대로 옮긴다).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굴속에 숨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그 얘기를 어떻게 듣고 숨은 겁니까.

“위안부보담 거기서 우리 집에서 능이 3킬로? 2킬로가 얼마지? 4킬로가 10리라고 그랬어.”

-그럼 1킬로가 2.5리쯤 됩니다(실제로 그렇다).

“그럼 10리에서 반쯤 되는 데 서삼릉이라고 있어요. 근데 그 능 안에 미국사람들이 와서 주둔하고 있을 때 자꾸 색시 내놓으라고 댕기고 그냥 그랬대니까. 쪼그만 한 것도 여자들이라면 잡아다가 강간을 허고.”

-미국사람이요?

“예.”

-일본사람이 아니고요.

“예. 미국사람들이요. 여자들을 잡아다 강간을 했어요. 그때.”

미군이 성폭행 좀 하면 어떠냐니

그 시절 미군이 부녀자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증언은 계속 있어왔다. 단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처럼 핵심적 이슈로 서지 못하고 여론의 주변부를 맴돌다 제 풀에 지쳐 소멸하기를 간헐적으로 반복했을 뿐이다.

강씨 할머니가 겪었다는 일은 그게 일본 때문이든, 미국 때문이든 당연히 기록해야 할 사건이다. 부녀자 유린은 누가 하는지와 관계없이 자명한 범죄 행위다. 그 행위가 일본이 하면 나쁘고 미국이 하면 덜 나쁜 짓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판단 준거를 점검해봐야 한다. 무고한 사람의 인격과 생명, 삶과 존엄성을 짓밟는 행동 중에 누가 하느냐에 따라 경중이 달라지는 나쁜 짓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어야 한다.

한국을 구원한 영웅으로 대접받는 미국이 그런 일을 벌였다면 그 이중성 때문에라도 더욱 기록돼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우익만 모르는 체하는 일이지만 저 시절 미군 범죄는 피해자들만 작은 소리로 탄원하는 문제로 소외당하고 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갈라놓고 대하면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18일 강씨 할머니 이야기가 걸린 인터넷에선 미군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사람과 그래서 선동을 위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를 빨갱이로 몰고 있었다. 역시나 이 기사를 지금 왜 썼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많았다. 젊은 미군들이 객지 한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얼마나 외로웠겠느냐거나 한국을 구한 미군이 좀 그랬으면 어떠냐는 말을 내뱉는 자도 있었다. 그런 부류는 이메일로도 항의했다. 할머니의 기억을 검증했느냐고 추궁하는 사람부터 자신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그 할머니를 직접 만나 확인해야겠다는 사람까지 다양해서 신선하기도 했다.

미국은 백마 타고 온 천사인가

진보, 보수 없이 통탄해야 할 이야기에 사람들은 진보, 보수로 나뉘어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연 해방 직후나 한국전쟁 전후 그 혼란한 시대에 미군이 한국 부녀자를 성폭행했다는 얘기가 그리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가. 경기 동두천 술집 20대 여종업원이 주한미군에게 무참히 능욕, 살해당한 ‘윤금이 사건’이 1992년에 벌어진 일이다. 1991년에는 미군 병사가 10살도 안 된 아이 3명에게 몹쓸 짓을 했고, 10년 뒤인 2011년에는 다른 미군 병사가 동두천 고시원에 몰래 들어가 10대 여학생을 엽기적인 방식으로 욕보였다. 1950~60년대에 벌어진 미군 범죄는 확인된 사건만 열거하더라도 밤을 새야 할 것이다.

기사에 쓰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색시를 요구했다”고 강씨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저 ‘색시’라는 말이 할머니의 표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터넷 기사에 댓글로 달린 유사 사례들 중에는 미군들이 실제로 여자를 “색시”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그들에게 색시는 젊거나 어린 여자를 뜻했을 것이다. 그 댓글을 표기법만 바로잡아 옮긴다.

“6.25 막바지 때 미군 놈들이 민가마다 나타나 발음도 어눌하게 ‘색시, 색시’ 했던 기억이 난다. 이놈들이 총 들고 ‘색시, 색시’ 하면 우리 누이는 무조건 숨었지. 이웃집 누나는 야산으로 잡혀갈 때 미군들이 던진 초콜릿을 집에다 던져놓고 갔지. 그리고 해거름 때 머리를 산발을 하고 옷고름은 풀어 헤치고 넋을 잃은 모습으로 나타났지. 나는 그때부터 빨갱이나 미군 놈들이나 똑같은 새끼들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이밖에도 욱이라는 아이의 어머니가 미군에게 성폭행당한 뒤 남편에게 버림받고 혼자 아이를 키웠다는 얘기, 울산에서 미군들이 여자를 하도 괴롭혀 그들을 상대하는 매춘부를 세우고 나니 조용해졌다는 얘기, 이런 불편한 진술들이 댓글로 남아 있다.

오바마가 무릎 꿇어도 되돌린 순 없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듯 나는 미국이나 미군에 대한 근원적 반감이 없다. 각각의 사례를 놓고 판단할 뿐이다. 어디에나 나쁜 놈이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나는 미국이 우방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눈먼 친미주의자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일본도 우방이다.

미안하게도 나는 나를 겨냥하는 말들에 개의치 않는다. 미친 사람과 술 취한 사람만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헛소리를 일일이 상대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나 때문에 세간에 노출된 강씨 할머니의 명예 때문이다.

그 긴 사연 중에서 미군 얘기만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은 다음 이야기, 할머니가 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했는지는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한 여자의 인생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명예부터 걱정하고 있다. 이런 식의 인식은 이 나라 구석구석에 널렸다. 그 시절 친일과 일본군 위안부 동원도 결국은 저런 인식 안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이제 특정할 수도 없는 가해자는 집단의 이름으로 욕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그에게 유린당하고 파탄 난 각각의 인생은 타임머신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무슨 수로도 구제할 수 없다. 그 나라 대통령이 무릎 꿇고 사과한다고, 수백억을 갖다 준다고 그들의 인생이 복구되는가. 강씨 할머니는 삶을 부지한 경우지만 그 삶은 누가 허용한 게 아니라 할머니 스스로 지켜낸 것이다. 평생을 무서운 세상에 살면서도 악 소리 한번 안 내고 견뎌온 이 여성이 이제 와서 냄새나는 구설에 오르내릴 이유가 없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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