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매춘" 표현 등 학문의 자유 한계 넘어

박주희 2016. 1. 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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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책 내용 직접 인용하며 인격권 침해 부문 조목조목 열거

“일본군과 동지적인 관계 서술, 과장을 넘어 사실을 왜곡한 것”

20일 열릴 형사재판 영향 줄 듯, 표현의 자유 논란 다시 격화 전망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강일출(왼쪽부터) 박옥선 이옥선 할머니가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동부지방법원 앞에서 재판에 승소한 뒤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제국의 위안부 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원이 13일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학문의 자유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판단에서다. 출판금지가처분 소송에 이어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패소함에 따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었다는 박 교수 측 논리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원 판단에 대한 학계 반론도 만만치 않고 특히 검찰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데 대해선 비판 여론이 많아 논란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가라유키상(매춘을 목적으로 해외로 나간 일본 여성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 등 10개 표현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는 일반 독자에게 피해자들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돼 경제적 대가를 받고 매춘업에 종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라며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등 22개 의견 표명이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위안부 여성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과장을 넘어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역사적 인물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들의 인격권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보호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특수성’을 인정했다.

반면 책에는 위안부 여성들이 자발적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에 대한 애국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충분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박 교수는 저작 과정에서 참고한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5권을 통해 일본군의 강제연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위안부 생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부분만을 발췌해 일반화하거나 단정했다”고 오류를 지적했다. 결국 ‘제국의 위안부’는 타인에 대한 명예 침해의 정도가 심해 학문의 자유 한계를 일탈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최종 결론이다.

이번 선고 결과가 20일 첫 공판이 열리는 박 교수의 형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형사재판은 민사재판보다 엄격한 범죄의 증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가 이 사건에 대해 인격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인정한 셈”이라며 “명예훼손죄 자체가 인격권 침해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형사재판에서 박 교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날 선고 결과에도 표현의 자유 논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나병철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박 교수의 책 내용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부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본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 박옥선(92) 강일출(88) 할머니는 판결 결과가 나오자 재판부를 향해 거듭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선고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 할머니는 “법원에서 판결은 잘 했지만 앞으로 또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고, 이 할머니 역시 “명예와 권리를 꼭 회복시켜야 (했다)”고 말하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mailto: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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