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검증 면접' 영혼을 팔까, 미꾸라지 답변할까..

2015. 12. 24. 15: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취업면접서도 ‘사상검증’
취준생은 괴로워

jaewoogy@chol.com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 넘어 선진국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달 초 한 중견 건설사의 신입사원 최종면접을 보던 임아무개(25)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면접자 여럿이 들어간 최종면접장에서 한 심사위원이 옆 사람에게 던진 질문 때문이다. 그 면접자는 “노동조합이 있으면 경영에 간섭하고 비용이 발생한다”며 김 대표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임씨는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유명한 회사였는데, 그 지원자가 정치외교학을 전공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신입사원 채용에서 이른바 ‘사상 검증’ 면접이 적잖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직 5급 공무원 공채(행정고시)부터 아모레퍼시픽·우리은행·한국관광공사 등 공무원·민간·공기업 등을 막론하고 ‘민중총궐기 집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신문을 읽느냐’ ‘정부가 국정화 교과서를 왜 하려는 것 같은가,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같은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원자들의 정치 성향을 확인하려는 세태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일자리가 절박한 청년 구직자들은 혹시 받게 될지 모를 ‘사상 검증’에 대비해 다양한 고육책을 쏟아내고 있다.

‘빠져나가고 보자’형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지만
아직 책이 안나와 확답 어려워”

‘일단 붙고보자’형
“노조가 있으면 경영간섭” 옹호
“실업문제는 정부 아닌 개인탓”

전문가들 조언
“양쪽 균형감 있게 대답하고
어설프게 토론하려 하지 말아야”

취업준비생들의 가장 흔한 대응법은 ‘모 아니면 도’다. 임씨도 면접 스터디에서 ‘소신파’와 ‘회사파’를 모두 만났다. 그는 “자기 소신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회사가 원하는 쪽으로 맞추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취업이 급하다 보니, 기업 문화가 특히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데 응시할 때는 ‘회사파’를 선택한다”고 했다. 분위기가 이러니 소신파라 하더라도 ‘자기검열’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한 취업 준비 인터넷 카페엔 대기업 면접에서 ‘청년실업 문제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느냐’는 질문에 ‘정부’라고 대답해 고민하는 취업준비생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책임이) 취업준비생한테 있다 했는데 저만 그렇게 대답했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곤란한 질문은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는 ‘미꾸라지형’ 대응도 있다. 공대생인 김아무개(24)씨는 최근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치적인 견해에 대한 예상 질문을 뽑고 답변을 준비했다. 김씨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답변이 가장 난감했다”며 “개인적으로 국정화 방침에 반대하지만 아직 교과서가 나오지 않아서 확답하기 어렵다는 투로 ‘최대한 빠져나가는’ 답변을 준비했다. 마음 같아선 제발 나한텐 이런 질문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업 전문가들은 기계적으로 균형감 있게 대답하고 호불호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솔로몬형 해법’을 제시한다. 이름 밝히길 꺼린 ㄹ업체의 한 취업컨설턴트는 “구직자들한테 소신을 바꾸라고까지 조언하진 않지만 어설픈 얘기로 (면접관들과) 토론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토론에서 이기고 전체 싸움(합격)에서 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설령 합격하더라도 어떤 입장을 강하게 가진 사람이라고 계속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아무개(25)씨도 “(면접 대비) 스피치학원에서도 양쪽 의견을 말한 뒤 ‘굳이 하나를 꼽으시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다’라는 식으로 말하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라는 조언도 나왔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9일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 나와 면접자들한테 “사상 검증 질문을 받으면 일단 거짓말하라”고 권했다. 일단 합격한 뒤 조직에서 일하다가 비리를 보면 익명으로 고발하라며 그는 “나쁜 놈에게 거짓말하는 것에 대해서 도덕적인 열패감을 절대 느낄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이철희 “내년 총선, 샅바 싸움 능한 ‘여왕의 선거’ 될 것”
남양유업 밀어내기 ‘갑질’에 손도끼 챙겨 맞선 남자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키다리 아저씨’…1억2천만원 기부
“내가 신이냐”…세월호 구조실패,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화보] 노무현,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정치인들의 어린시절

공식 SNS [페이스북][트위터] | [인기화보][인기만화][핫이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