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미치지 않는 선까지만? 이미 넘고 있다"

장슬기 기자 2015. 11. 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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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라마 ‘송곳’ 구고신의 실제 모델,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은 원래 이 작품의 이름을 ‘오거나이저’로 정하려 했다. 수많은 ‘오거나이저(organizer, 노조를 조직하는 사람)’를 녹여 만든 캐릭터가 송곳의 주인공 구고신이라는 점에서 구고신의 현실 인물이 더욱 궁금해진다. 지난 4일 최 작가가 구고신을 그리며 자주 찾았다는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찾았다.  

고문의 옛말, 고신. 송곳에는 구고신의 고문 후유증을 나타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하다가 머리가 땅을 향하자 구고신은 잠시 공황상태에 빠진다. 지난 1981년 공안기관에 붙잡혀 사흘 밤낮을 거꾸로 매달려 ‘비녀꽂기’, ‘통닭구이’를 당했던 하 교수를 연상케 한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던 중 1981년 5월 공안당국이 하 교수의 후배 한명을 학림사건과 연관 짓기 위해 끌고가 고문했고, 그 후배는 하 교수의 이름을 언급했다. 하 교수도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받았다.  하 교수는 인하대 74학번으로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자신은 낭만적으로 운동을 했던 학번인 반면 70년대 후반 학번들은 열심히 공부해 사상적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라 자신들이 제대로 선배대접을 받기 어려웠다.

당시 하 교수 역시 고문을 견디다 후배 이름을 불었고, 공범이 된 하 교수와 그의 후배가 만났다. 하 교수는 “후배가 얼마나 매를 맞았던지 손목이 멍이 들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됐더라”고 말했다. 후배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내 이름을 얘기했냐?”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며칠 고문 받다 보니 ‘하종강 선배는 지금쯤 징역가는 게 인생의 보탬이 될지 몰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 교수는 “날 고문 받게 했던 그 후배가 사실 사상적으로 선배였다. 그가 보기엔 내가 시시한 선배였고, 학생운동하다 노동운동으로 넘어갈 때 쯤 감옥 한 번 다녀오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고문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의 후배는 고문 후유증으로 송곳에 나온 구고신처럼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10여 년 전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그 후배를 만났을 때다. 후배가 하 교수에게 물었다. “형은 그 일(노동운동)을 20년 넘도록 계속 하고 있는 이유가 뭐요?” 하 교수는 폼 나게 대답했다. “난 아직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거든, 철학을 바꾸지 않았거든” 후배가 슬쩍 웃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답했다.

 
 
▲ '송곳' 구고신의 실제 얼굴 모델인 송영수 씨
 

“그런 것들 때문이라면 난 운동을 벌써 포기했을 거요. 이 일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어. 조직 다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운동 그만둔다고 다 말해놓고. 몇 번이나 그랬지만 못 그만뒀어. 그런데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자꾸 형 생각이 나는 거야. 그때 나 때문에 고문당했던 사람들, 나 때문에 징역 산 사람들, 내가 만난 노동자들.”

'송곳'에서 구고신은 노동상담소를 운영한다. 하 교수는 “나도 조직운동을 안 해본 건 아니고 조직은 꼭 필요하지만 내가 감당하긴 어려웠다.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노선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도 성실하게 싸워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노동상담을 내 영역으로 정했더니 ‘쉬운 길 간다’며 못마땅하게 보던 후배들도 많았다”고 했다.“당시 후배의 목이 메었다”고 말하는 하 교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시시한 선배와 자타공인 이론가 후배는 그렇게 고문으로 엮여 구고신이 됐다. 그 후배는 부산에서 환경미화원, 마을버스 기사, 사회복지사, 용역회사 파견 노동자 등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모아 최초로 ‘지역일반노조’를 만들었던 송영수씨다. '송곳' 구고신의 실제 얼굴 모델이다.  

홀로 노동상담(교육)의 길을 걸어 온 30여년의 시간은 박사학위는 물론 공인노무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를 더 돋보이게 한다. 그는 ‘쉬운 길’을 가장 오래 걸어온 사람이다. 그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하나를 들려줬다.

“노동재해(산업재해라는 표현이 노동자가 노동과정에서 당하는 재해라는 뜻을 분명히 담지 못한다며 이렇게 표현한다)에 관심 있는 의료인 150명의 모임이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던 중 한 손에 검은 장갑을 낀 청년이 나와 ‘장갑을 벗어도 되냐’고 말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잘려 없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순간적인 사고를 당해 부상입어 이렇게 절단되면 산재처리가 된다. 그런데 오랜 세월 노동해서 직업병 걸리는 것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훌륭한 간호사·의사선생님, 앞으로 공장에서 일하다 폐병 걸리고 수은 중독돼 병원을 찾는 노동자가 있거든 친절하게 대해 달라’였다. 그 친구는 자신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송곳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종강 교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이런 노동자들의 얘기가 송곳에 녹아있다. 하 교수는  최규석 작가에 대해 “노동운동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태도를 취하는데 약자를 도와야한다는 것은 사실 보수의 정서다. 운동의 발화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구사할 만큼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 교수는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노동운동가들은 성격은 거칠고, 눈 부릅뜬 채 강경한 어조로 회의하는 식의 격앙된 단일캐릭터”라며 “그런데 실제 이런 사람은 거의 없고, 파업을 준비하는 노동자들도 진지하고 조용하게 말한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홈에버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영화 ‘카트’에 보면 식당에서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고 작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 교수는 “노동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그 장면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지 떠올린다. 삼겹살 집 구석에 대여섯 명 노동자 불러놓고 ‘노조가 왜 필요한지’ 한 두 시간씩 열심히 설득하는 걸 여러 번, 주눅 든 시선으로 건배하며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가입원서를 받는다. 영화는 짧으니까 ‘카트’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송곳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송곳에는 노동운동을 하자고 설득하고 조합원들이 노조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루는 최 작가가 하 교수에게 이런 걸 물었다고 한다. “구고신이 해고당한 사람들을 설득할 때 6개월만 싸워보자고 말하는 장면을 넣으려고 하는데 이런 설득이 가능하냐” 하 교수는 종종 해고자를 설득할 때 “6개월만 당신 인생 없다고 하고 싸워보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입을 피해도 크지 않다. 변호사 선임하지 않으니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경험은 인생의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꼭 입을 피해가 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 교수는 “소송은 한번 시작하면 몇 년 동안 이어지는데 운동조직은 흩어지기도 하고 동지가 없어지기도 한다”며 “아무도 없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소송에 의지하게 되고 졌을 때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곳의 명대사 “지는 건 안 무서워요. 졌을 때 혼자 있는 게 무섭지. 그냥 옆에 있어요. 그거면 돼요”가 연상된다.    

 
 
▲ jtbc 드라마 ‘송곳’
 

하 교수에 따르면 최규석 작가는 완벽주의자다. 청소노동자 장면 몇 컷을 위해 직접 새벽에 청소차에 올라 경험한 뒤 청소차를 씻는 공간은 있지만 사람 씻을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경찰과 노조의 대치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경찰을 섭외해 술 한잔하며 현장의 얘기를 듣는다. 하 교수는 “'송곳'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현실에서 노동운동가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이라고 말했다.

노동개혁 “노동자들이 미칠지도 모른다”

송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경영진이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하 교수는 노동개혁의 쟁점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일단 장기근속자의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한 임금으로 청년을 더 고용해 청년 실업을 해소한다는 주장이 있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 기간 연장 문제, 마지막은 일반해고 도입이다.”

일단 임금피크제로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 하 교수는 “경력이 많은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의 호환성이 없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한다고 해서 청년실업이 해결될 수 없고, 이는 OECD 등 수많은 곳에서 입증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국내총생산 중 노동소득의 비중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게 큰 문제”다.

한국은 국민총소득 대비 기업소득의 비중은 약 25%로 OECD 가입국 중 1위다(2009년~2012년). 즉 노동자나 자영업자가 가진 돈에 비해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돈이 세계적으로 많은 편이고 특히 2000년 이후 기업소득 비중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하 교수는 “기업이 가진 돈을 노동자 쪽으로 옮겨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연장과 일반해고 도입은 노동환경의 하향평준화다. 송곳에서 구고신은 비정규직이 왜 월급을 더 받아야 하는지 쉽게 설명한다. 우산공장과 부채공장이 있을 때 우기 땐 전자, 건기 땐 후자의 노동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면 두 곳을 오가는 노동자들이 생긴다. 이게 노동유연화이며, 이들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덕분에 기업은 필요한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고 수익도 늘어난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을 배우거나 고용불안을 감내하며 기업에 돈을 벌어다주지만 비정규직의 월급은 더 낮다.

송곳에서 구고신은 “더 번 돈은 중간에서 깃발 들고 ‘오라 가라’ 한 놈들, 파견이나 사내하청이니 하도급이니 하는 간판 달고 이 회사 저 회사 사람 뿌리는 알선업자들이 더 먹는다”며 “이게 소작이랑 지주 중간에서 착취하던 마름이랑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하 교수가 지적하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한국은 비정규직 업종에 제한이 없다. 모든 업종에 비정규직이 가능하니 사장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을 늘릴 유인이 생기고, 파견용역도 현재 32개 직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두 직종을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에 따르면 이 두 업종에 속하는 세세분류업무는 400개가 넘는다. 현재 파견 허용 업종 32개를 400여 개로 확대하는 것이다.

 
 
▲ 지난 2010년 4월 MBC 총파업때 여의도 방송센터 로비에서 언론노조MBC본부 조합원들을 상대로 강연중인 하종강 교수. 사진=이치열 기자
 

일반해고 도입은 곧 노조탄압으로 이어진다. 하 교수는 “MBC는 기자, PD 등 직종을 폐지해 ‘사원’으로 만들고 노조간부들은 비보도국으로 보냈다”며 “노동개혁은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조간부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해달라는 기업의 민원을 정부가 나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운동은 더 위축되지 않을까? 하 교수는 “노동자·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더 나빠질 것도 없고, 위기가 아닌 때도 없었다”며 “경영자들이 농담처럼 ‘노동자들이 미치지 않은 선까지만’이라고 하지만 이번 노동개혁이 추진되면 노동자들이 미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대한 공격이 밀려들어오지만 입이라도 뻥끗하기 위해서는 노조밖에 대안이 없다.

이어 하 교수는 “지금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의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모르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며 “현재 한국에서 민주노조를 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밖에 없다. 지금은 최규석 작가의 표현대로 ‘비판보다는 모범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생각이 달라도 모아볼 때”라며 오는 14일 있을 ‘10만 민중총궐기’를 응원했다.     

하 교수는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이라고 쉽게 비난하기도 하는데 '송곳'이 대표적으로 정규직이 희생한 경우”라며 “일터로 가지 못한 12명은 모두 정규직”이라고 말했다. '송곳'의 배경이 된 이랜드 노조 투쟁은 지난 2007년 6월 해고통보 이후 511일 간 정규직·비정규직 연합 노조가 투쟁해 지도부 12명이 복직하지 않는 조건으로 174명이 복직하게 된 경우다.

이런 승리들이 희망이다. 하 교수는 “지금이 어려운 시기라 느껴지지 않겠지만 조금씩 바꾸고 있다”며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 당시 경기도에서는 ‘민주시민’이라는 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교과서를 만들 수 있게 돼 이 방(하 교수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모여 교과서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배우 팀 로빈스의 말을 인용했다. “진정한 변화는 워싱턴의 칵테일파티나 백악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풀뿌리운동이다.” 그는 “자기가 속한 곳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주시민’ 과목이 점점 많이 채택되고, 교육과정에도 반영되고, 다른 나라처럼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하는 날을 꿈꿨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사진=이치열 기자
 

짧은 인터뷰 중간에도 하 교수에게 노동 강연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일정을 조정하느라 수첩을 뒤적거리며 하 교수가 진을 뺐다. 요즘도 거의 매일 강연을 하는 하 교수는 “제겐 한 두 시간 일정이지만 1년에 한번 하는 행사에 절 초대한 분들도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서는 데가 바뀌지 않아 풍경 역시 달라지지 않았나보다. 하 교수 역시 그의 후배가 그랬듯 여전히 노동자 곁에 서 있다.

 

송곳의 배경 이랜드 파업 500일은 무엇?

송곳 주인공 이수인 실제 모델 김경욱 노조위원장의 안타까운 희생

웹툰 송곳은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을 취재하던 최규석 작가가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나면서 얼개가 잡혔고 주인공 이수인은 김경욱을 모델로 그려졌다. 김경욱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5년 간 군복무를 하다 전역한 뒤 1998년 까르푸 정규직 매니저로 입사했다. “다들 그렇듯 승진 빨리 해서 점장도 하고, 본사 진출도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2002년 새로 부임한 프랑스인 중동점장은 송곳에서처럼 ‘직원들을 다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당시 농산과장이던 김경욱은 고민 끝에 2003년 1월3일 노조에 가입했고, 같은해 6월부터 전체 직원 6000명 중 1%인 60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들어갔다. 임금인상도 됐고, 해고를 지시했던 지점장은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됐다.

까르푸는 이랜드그룹에 인수돼 홈에버가 됐다. 파업의 빈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경욱은 비정규직도 노조에 가입하도록 했다. 2004년 주5일제를 이뤄냈고, 2005년에는 비정규직 노조가입을 회사와도 합의해 2006년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물러나도 되겠다’ 싶었을 무렵 단협을 어긴 외주화가 시작됐다.

조합원 600명은 2007년 6월30일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다. 다음날인 7월1일은 비정규직법 시행 날이었다. ‘1박 2일 점거’로 시작됐지만 조합원들은 21일을 버티다 공권력에 의해 끌려나왔다. 김경욱은 7월10일 연행돼 구속된 뒤 10월22일 풀려났다. 이후 137일 천막농성 등 511일을 싸워 정규직이었던 지도부 12명을 제외한 174명이 일터로 돌아갔다.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해고돼 받은 퇴직금 7000만원을 투쟁비로 내놓으며 김경욱 위원장이 구속된 이후 노조를 이끌다 구속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 등 지도부의 몫도 컸다. 하종강 교수에 따르면 협상 막판 한 달은 노조지도부가 174명 복직에 대해 회사와 합의했지만 ‘지도부를 버릴 수 없다’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기간이었다.  

노동계에서는 이랜드노조 지도부의 결단을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평가했고, 김경욱 위원장은 “안타까운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JTBC ‘송곳’은 노조가 성장하는 모습과 2003년 까르푸 투쟁 승리의 과정을 12화에 담아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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