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 최대 행사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성명..어버이연합 난입

정대연 기자 2015. 10. 30. 14: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 최대 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린 서울 관악구 서울대 문화관 앞에서 역사 학회 28개가 공동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학회는 30일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 1부를 마친 오전 11시50분쯤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엄중히 요구하며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통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 조치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하고 매카시즘 공세를 강화할수록 역사학계와 국민은 역사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깨달아 가고 있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다양성 대 획일성, 역사적 진실 대 권력적 탐욕 간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양호환 전국역사학대회장(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이 3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 행사장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요구 및 제작 불참 촉구 성명을 읽고 있다. 위쪽으로 정부의 국정교과서 정책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역사학계가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면서 국정제는 수시로 바뀌는 정권에 의해 역사 해석과 역사교육이 독점돼 역사교육 자체가 끊임없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과 충돌하는 비민주적 제도로 민주화와 함께 극복됐던 구시대의 산물이며, 주체적·비판적 사고력과 종합적 판단력을 가진 창의적 민주시민의 교육에 부적합하고 세계 보편적 기준이나 추세에도 뒤떨어진 제도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역사학계를 모독하는 행태를 중단할 것과, 모든 역사학자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할 것도 촉구했다.

전국역사학대회는 매년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지역사, 분야사를 망라한 20개의 학회로 구성된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가 개최한다. 협의회에서는 지난해 제57회 대회에서 소속 학회 중 16개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엄숙히 촉구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일부 의견을 달리하는 학회를 제외한 협의회 소속 학회와 다른 역사학 관련 학회 등 28개가 함께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협의회 측은 “28개 학회가 공동성명에 참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이번 성명은 역사학계의 대다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 행사장에서 손피켓을 들고 참석자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은 이날 오전 서울대 정문에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회 1부가 끝난 직후 ‘역사교육 망친 자들이 올바른 교과서를 반대해?’ ‘교육망친 주범, 좌편향교수들 학부모가 용서않는다!’는 내용의 손피켓을 들고 대회장 안으로 난입했다. 또 역사학계의 공동성명 발표를 방해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낸 역사학자들이 “반역자” “지적 장애인”이라며 “나라 망치는 일을 하고 국가 반역자를 가장 많이 길러낸 서울대를 폐교하고 재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엽제전우회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30일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린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역사왜곡 좌편향 교수 규탄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래는 역사 학회 28개의 공동성명서 전문.

▲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엄중히 요구하며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더욱 큰 메아리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대다수 역사학 전공 교수들과 교사들은 국정화가 강행될 경우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며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역사 연구자들과 교사들이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펼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국정화를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파상적 이념 공세로 역사학계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하고 매카시즘 공세를 강화할수록 역사학계와 국민은 역사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다양성 대 획일성, 역사적 진실 대 권력적 탐욕 간의 대결임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제는 첫째, 수시로 바뀌는 정권에 의해 역사 해석과 역사교육이 독점돼 역사교육 자체가 끊임없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과 충돌하는 비민주적 제도로 민주화와 함께 극복됐던 구시대의 산물입니다. 셋째, 주체적·비판적 사고력과 종합적 판단력을 가진 창의적 민주시민의 교육에 부적합하고, 세계 보편적 기준이나 추세에도 뒤떨어진 제도입니다. 더욱이 민주주의적인 공론화 과정없이 강행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역사교육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추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세계인으로서의 인류애를 지닌 시민을 키워냅니다. 다양한 역사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오직 하나의 역사, 하나의 역사 해석만을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로는 민주적인 시민은 물론 세계화·다문화 시대를 짊어질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미래 세대를 키워내기 어렵습니다.

역사학계는 사관(史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하면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대항해 직필(直筆)을 실천하고자 했던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하고 후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학자적 양심과 소신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를 반대해왔습니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는 2014년에 이미 정부의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올해는 제58회 역사학대회를 맞아 역사학 관련 학회들과 함께 그간 역사학계가 곳곳에서 줄기차게 표명했던 단호한 의지를 모아 다시 한 번 학계 전체의 확고한 의사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1. 정부, 여당은 역사학계를 모독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1.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할 것을 촉구한다.

2015년 10월30일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학회 및 역사학 관련 학회 일동

성명서 참여 학회(가나다 순)

경제사학회

도시사학회

만주학회

백제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와교육학회

역사학회

웅진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중부고고학회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냉전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목간학회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호남사학회(총 28개)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