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의 새로운 劍 '진술분석'.. '이태원 살인' 진실 밝힐까

박상기 기자 2015. 10.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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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이 범인" 증거 제출.. 리, 내달 4일 증언하기로] - 18년前 흘려들은 패터슨 진술 "리, 대변기 칸 門 열어 사람 있는지 확인후 찔러" - "자기가 한 일, 주어만 바꿔" "확인했다"는 표현은 패터슨의 주관적 해석 "사람 있는지 살폈다"는 말은 리의 살해의도 암시한 것

"검찰 측 증거 제출하겠습니다."

17년 만에 재개된 '이태원 살인사건' 두 번째 공판이 2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사건 진범으로 지목돼 지난달 국내로 송환된 아서 패터슨(36)의 살인 혐의를 규명하는 재판이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 측은 사건 현장을 복원한 세트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그간 공개한 적 없는 새로운 증거를 재판부에 냈다. 1997년 4월 3일 밤 10시쯤 서울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벌어진 대학생 조중필(당시 23세)씨 살해 장면과 관련한 패터슨과 그 친구 에드워드 리(당시 18세)의 진술을 과학적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다. 검찰이 뽑아든 히든카드다. 리도 내달 4일 증언하기로 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패터슨 아니면 리가 범인이다. 사건이 있던 날 조중필씨가 살해당한 화장실로 둘이 같이 들어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쟤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리가 무죄선고를 받은 1997~ 1998년 재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혈흔(血痕) 분석 결과였다. 소변을 보다 살해당한 조씨의 키는 176㎝. 리는 그보다 큰 180㎝(몸무게 105㎏), 패터슨은 172㎝(63㎏)였다. 리의 옷에는 아래서 뿜어낸 듯 흩뿌려진 핏자국이 선연했다. 국과수와 검찰은 이를 근거로 거구의 리가 내리누르듯 조씨를 제압했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했던 것이다.

리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검찰이 이번엔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증거들을 수집했다. 웅크려 소변 보는 자세에선 키 작은 패터슨도 위에서 누르듯 흉기를 휘두를 수 있고, 살인 흉기, 피묻은 옷가지를 버렸으며, 주변에 '내가 죽였다'고 말한 점 등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살해 당시'를 묘사한 패터슨과 리의 말에 주목했다. 1997년 첫 수사 때는 무심코 흘려버린 진술이다.

수사기관에 잡혀 온 패터슨은 "리가 (화장실 소변기 옆) 대변기 칸 문을 열어보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로 칼날이 나오게 잡고 피해자 목을 찔렀다"고 했다. 반면 리는 "패터슨이 대변기 칸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다시 나와서 갑자기 소변 보던 남자의 목을 찔렀다"고 했다. 둘의 진술은 비슷하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검찰은 리의 진술은 본 대로만 말한 것으로 판단했다. 꾸몄다고 의심할 만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패터슨 진술에는 '목격한 것' 이외의 부분이 있다.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이 바로 그런 부분이다. 패터슨은 그냥 리가 한 행동 그대로만을 옮긴 게 아니라, 자기의 주관적 해석(리가 대변기 칸 문을 연 것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을 더해, 리에게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찌른 것)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패터슨이 자기가 한 일을 주어(主語)를 바꿔 리가 했다고 진술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수사에 도입된 진술 분석 기법은 최근엔 성범죄 사건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는 데 주로 쓰인다. 지난 1일 피해자가 '성폭행당한 일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는데도, 처음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맞는다는 진술 분석 결과를 근거로 가해자에게 유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수사 기법 '진술분석'은…

"겪은 일 말하는 것과 꾸며낸 말은 차이 있어"

2007년 도입… 성범죄 신빙성 가릴때 활용

실제 겪은 일을 말하는 것과 꾸며낸 말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가설에 근거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참고인·목격자 등의 진술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1950년대 독일에서 개발했다. 진술이 엇갈려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 때 사용한다. 아동이나 장애인 진술의 진위를 판단할 때도 쓴다. 우리나라에는 2004년 학계에 처음 소개됐고, 대검찰청이 2007년 진술분석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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