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벅찬데.. 上告법원 표류?
대법원이 추진해 온 상고법원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법원조직법 등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6개 법안을 심의하는 국회 법사위 법안1소위는 20일 이 법안들을 제외한 30여 개 법안만 심의했다. 이한성 소위원장은 "이번 회기 중에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혀 언제 논의될지도 불투명하다.
본지 취재 결과 소위 위원 8명 가운데 '상고법원 찬성' 혹은 '조건부 찬성' 의견은 법안 대표 발의자인 홍일표 의원 등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연간 4만건에 육박하는 사건 폭주(暴注)에 시달리는 대법원 재판 개혁은 상당 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10층. 고영한(60) 대법관이 책상에 앉자마자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고무 골무를 끼었다. 항상 손 닿는 곳에 두는 골무는 사건 서류에 파묻혀 사는 판사들의 필수품이다.
책상뿐 아니라 간이 테이블, 응접용 탁자 위엔 사건 기록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높은 것은 키 높이만큼 됐다. 1000건 정도 된다. 대법원 창고에는 아직 누구도 들춰 본 일 없는 사건 기록 1만2000건이 보관돼 있다.
"주말에는 늦잠도 잡니다."
대법관의 일상은 사건 기록과의 전쟁이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모자란다. 점심 식사는 대부분 동료 대법관들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재판연구관들과 먹는 일이 잦다. 퇴근할 때 보던 기록을 서류 가방에 넣어 싸들고 집으로 가 읽는다. '대법관 보따리'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고 대법관이 대법관을 한 지 3년이 좀 넘었다. 눈에 녹내장이 왔다. 고 대법관은 "다들 고질병 두어 개씩은 달고 산다"고 했다. 대법관이 되면 임명장을 받는 날만 기쁘고, 그 뒤론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는 게 과거부터 대법원에 도는 우스개다.
2014년 한 해 대법원에 들어온 상고 사건은 3만7652건이었다. 올해는 4만건이 넘는다. 대법관 1명이 연간 3330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몇 달 전 방한(訪韓)한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이 우리 대법원에 물은 첫 질문이 "어떻게 대법관 한 사람이 1년에 3000건 재판을 하느냐"였다. 질문을 받은 양승태 대법원장은 "정말 어디다 말하기도 창피스럽다"고 사석에서 털어놨다.
대법원 사건 폭주는 필연적으로 사건 처리 지연으로 이어진다. 교통 위반 딱지 사건부터 50만원, 100만원짜리 벌금형 사건까지 대법관 책상 위로 몰려들다 보니 간단한 사건도 최소 3개월은 걸린다. 민사사건 가운데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사건도 평균 처리 기간이 4개월이나 된다. 심리도 못 받는데, 그걸 알 때까지 4개월간 마음을 졸여야 한다는 얘기다. 2년 넘게 처리되지 않는 미제 사건도 해마다 늘어난다. 2005년 342건에서 작년 672건으로 배가 됐다. 길게는 8년 만에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사건 당사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건 적체는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로도 이어진다. 돈이 걸린 재판이 늦어지면 이자(지연손해금)가 붙기 때문이다. 대구 공군비행장 인근에 사는 주민 67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경우, 1심이 국가에 배상하라고 한 돈은 8억2000만원이었다. 대법원은 3년 1개월 만에 "원심 판결을 확정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어줘야 할 돈이 5억이나 불어났다. 해고된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가계(家計) 경제가 무너진 이후라는 것이다.
대법원 상고심 개혁이 이번에 물 건너갈 경우 사실상 향후 몇 년간은 현행 제도로 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 때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지만 국회가 방치해 지금에 이르렀다. 재판 제도의 변경은 의원들에겐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지만, 일반 국민에겐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문제다. 상고법원 신설은 찬반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상고심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게 법조계 등의 지적이다.
☞상고법원
대법원이 전담하던 3심 사건 가운데 간단한 사건을 담당하는 최종심 법원. 연간 4만건의 상고 사건 중 판례 변경이 필요하거나 선거법 위반, 무기징역 이상 선고된 사건 등 1000~2000건가량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을 상고법원이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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