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의 톡'으로 돌아간 카카오톡

2015. 10. 20. 17: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검찰 감청요구 다시 허용… ‘영장집행 불응’ 선언 1년 만에 백기

“장관님, ‘가카의톡(각하의 톡)’이란 말을 아십니까.”

지난해 10월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장에서 한 야당 의원이 최양희 장관에게 던진 질문이다. 당시는 검찰의 카카오톡 감청문제로 불거진 박근혜 정부의 ‘사이버 사찰’ 논란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시기였다. 카카오톡을 운영하던 카카오(당시 다음카카오)는 사용자들 몰래 검찰에 감청자료를 제공해 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권력기관이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의 개인 대화내용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있었던 점을 빗대 카카오톡을 ‘가카의톡’이라 표현한 것이다.

카카오의 감청 협조 사실이 알려지자 사용자들은 반발했다. 정부가 감청을 아예 할 수 없도록 카카오톡을 버리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해외 메신저로 옮겨가는 사용자들도 속속 등장했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 사태다.

2010년 3월 첫 서비스를 시작해 국민 메신저에 등극하기까지 승승장구해온 카카오에 사이버 망명은 회사 존립을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모바일 메신저 시장은 대체재가 얼마든지 있다. 서비스 간 사용환경이나 품질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네이버의 ‘라인’만 해도 해외시장 성과를 발판삼아 호시탐탐 카카오톡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등과 같은 다른 글로벌 메신저들도 사용자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아무리 카카오톡이라 해도 다른 메신저로 사용자 이탈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다수의 가입자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카카오에 가입자 이탈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벼랑 끝에 몰린 카카오가 선택한 길은 검찰의 감청 협조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당시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이석우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가입자들의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검찰의 감청영장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번 결정이 실정법 위반으로 문제가 된다면 대표이사인 제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 대해 “감청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회사대표 소환·세무조사 등 시달려

기업이 검찰에 공개적으로 수사 협조 거부를 천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카카오의 ‘초강수’는 통했다. 기자회견 자체를 놓고도 실정법 위반 문제 등 숱한 논란이 일었지만 가입자 이탈을 막고 사용자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 성공했다.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에 정면으로 맞선 카카오의 용기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이 대표도 처벌 받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당초 카카오톡에 대한 감청 집행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고, 감청 집행에 대한 비판여론이 형성되면서 검찰도 쉽게 카카오를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후 사이버 사찰 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카카오톡 감청 문제도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이 “카카오와 통신제한조치(감청영장) 재개 방식에 대해 실무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카카오도 “국가안보와 사회 안녕을 위협하는 간첩, 살인범, 유괴범 등 중범죄자 수사에 차질을 빚는다는 비판을 감안해 감청자료를 제공키로 했다”고 확인했다. 1년 만에 카카오톡 감청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카카오는 “단체대화방(단톡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처리해서 자료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며 사용자의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카카오가 마련한 보호장치가 별 도움이 못 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양측의 합의내용을 보면 익명으로 처리된 자료라도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을 제시하면 감청을 허용하도록 돼 있다. 수사기관이 공문 한 장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익명 처리로 자료를 제공한다 해도 해당 사용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오길영 신경대 교수는 “익명처리된 정보의 추가 제공을 위해서는 별도의 영장이 필요하도록 해야 카카오톡 감청이 남발되는 일을 막을 수 있지만, 검찰 공문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카카오톡에 대한 감청은 1년 전 감청 협조 거부를 선언하던 시기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카카오가 사용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말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동정론’도 있다. 카카오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지만, 규모로만 보자면 연간 매출이 1조원이 안 되는 ‘작은 기업’이다. 연간 매출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재벌기업들도 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다. 카카오가 단 1년이라도 검찰의 감청 요구를 거부하고 버틴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라는 얘기다.

감청 거부 이후 카카오가 유독 시련을 많이 겪었던 점이 이를 일정 부분 입증한다. 이석우 대표는 지난해 12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대전지방경찰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청소년들도 많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에서 음란물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부터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돼 카카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권 차원의 ‘보복’이라는 게 입증된 바는 없지만 “카카오가 괘씸죄에 걸린 탓”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총수 김범수 의장 불법도박 연루설도

카카오의 감청 불응 선언이 일정 부분 사회 발전에 기여한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카카오 감청 사태를 계기로 네이버 등 주요 인터넷기업은 ‘투명성 보고서’를 작성해 분기별로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자료 현황 등을 공개하고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사이버 감청 문제를 더 넓은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실효성 있는 방지책을 만들거나 관련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지 못한 책임은 카카오가 아닌 사용자 본인들에게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감청 협조를 재개한 것도 문제지만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 더 문제다. 카카오는 ‘국가안보와 사회 안녕’을 재개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에도 국가안보와 사회 안녕을 위협하는 사건을 수사할 방법은 많았다. 지난 1년간 카카오가 감청 협조를 거부해 국가안보와 사회 안녕에 크게 문제가 생긴 사례도 없다.

가입자를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서 선택한 것이 감청 협조 거부였다. 이를 뛰어넘으면서까지 협조에 나서게끔 만든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거론되는 배경으로는 ‘정권 리스크’의 해소다. 회사 대표 소환, 세무조사 등에 이어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포털사이트 규제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카카오의 주력사업 중 하나가 ‘다음’을 중심으로 한 포털사업이다. 정부 규제의 강도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감청영장 문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청 협조 재계를 계기로 정권과의 관계회복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두 번째 배경으로는 카카오의 총수인 김범수 의장을 둘러싼 의혹들이 거론된다. 일부 언론과 재계에서는 2~3년 전부터 김 의장이 과거 미국에서 재직하던 시절 불법적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당시부터 관련 자료 등을 수집해 주머니 안에서 ‘만지작’거리던 검찰이 최근 들어 이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올해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됐다.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한 여당 의원은 “국내 유수의 최고경영자가 불법도박 혐의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며 증인으로 출석한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최고경영자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황상 김 의장을 지칭하는 게 명확했다.

기업에 있어 총수와 관련된 사안만큼 중요한 건 없다. 벤처로 시작한 신생기업인 카카오는 특히 김 의장에 대한 의존도가 큰 기업이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 있지만 주요 사안은 여전히 김 의장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다음과 합병한 후 아직 조직정비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태다. 연말까지 카카오 고급택시 서비스 등 중요한 신규 서비스 출시도 앞두고 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검찰이 본격적으로 김 의장에 대한 수사에 나서자 카카오가 결국 감청 협조를 재개키로 ‘백기투항’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카카오는 그러나 “김 의장과 관련된 소문은 모두 근거 없는 것”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감청 협조를 재개하기로 해 모든 카카오톡 이용자들의 정보인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용자들의 정보인권을 뒤로 하고 정보·수사기관과 어떤 은밀한 소통을 해왔는지 등 카카오톡이 입장을 선회한 배경을 3900만 이용자들 앞에 보다 자세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

주간경향 공식 SNS 계정 [페이스북] [트위터]

모바일 주간경향[모바일웹][경향 뉴스진]

-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