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첫 국정교과서 집필자 "난 어용학자로 만들어졌다"

2015. 10. 1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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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새마을운동과 유신내용 포함 거부하자
누군가 내 교과서 원고에 멋대로 넣어
식민사관 극복 열망에 집필 나섰지만
유신교과서 낙인찍히며 어용학자 돼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 첫 국정교과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집필진의 반대를 꺾고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을 멋대로 집어넣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중도보수 성향의 역사학자인 한영우(77) 서울대 명예교수는 17일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한 기존의 검인정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한 교과서 개편(3차 교육과정) 작업이 이뤄지던 와중에 유신체제가 선포됐다”며 “교과서 국정화가 발표된 이후 당시 문교부가 집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당시 근현대사 단원을 집필한 윤병석(85) 인하대 명예교수도 “새마을운동과 유신에 관한 (긍정적인) 내용을 포함하라는 문교부의 요구를 거부하자, 누군가 내 교과서 원고에 관련 내용을 써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3차 교육과정 때 만들어진 첫번째 국정화 국사교과서(1974년판)는 유신체제 미화 등의 이유로 ‘유신교과서’란 낙인이 찍혀 있다. 두 사람의 증언은 국정교과서 내용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 사람은 당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집필진(3명)이었으며, 집필진 중 나머지 한명인 김철준 전 서울대 교수는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1970년 시작된 교과서 개편 작업은 애초 유신체제 미화나 국정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한 교수는 “(애초 교과서 개편 방향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답습한 기존 교과서를 대신하고, 4·19 혁명 이후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기존 검인정제 교과서는 우리 민족을 중국에 사대만 하고 발전도 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하는 등 식민사관을 답습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4·19 혁명 이후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연구 성과를 축적해온 국사학계와 ‘민족 주체성’을 강조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1970년부터 교과서 개편 작업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당시 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연구진과 집필진으로 참여했지만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고, 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로 3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에는 기존 교과서에서 등한시된 조선 왕조의 대외 주체성과 민본주의, 토지개혁 등 시대 변화에 따른 발전상이 강조됐다. 또 동학농민운동과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사학자, 일제 치하 독립운동 등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연구 성과가 반영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과서 개편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1972년 10월 선포된 유신체제는 교과서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정부는 학계의 반대에도 이듬해 6월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다. 1973년 8월 시작된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문교부는 새마을운동과 유신체제에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당시 근현대사 단원을 집필한 윤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현재진행형인 사안을 쓸 수는 없었다. 현대사 부문 집필 자체를 거부했으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관련 내용을 써서 내 원고에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평화적 통일을 조속히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는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이로부터 사회의 비능률적,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고 전근대적 생활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 민주주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10월 유신 미화 내용은 이렇게 집필자인 윤 교수의 동의도 없이 1974년판 국사교과서에 포함돼 학교 현장에 배포됐다.

한 교수는 “우리 아이들에게 식민사관을 극복한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자는 열망으로 국정교과서 집필에 나섰지만, 유신체제 이후 교과서는 유신교과서로 낙인찍히고 집필진은 어용학자가 되고 말았다”며 “(당시) 학문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단일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은 다양한 학설을 인정하는 민주국가에서 하나만 뽑아서 정설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합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이쪽저쪽에서 비판을 받는 교과서가 될 것이고, 교과서의 권위 자체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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