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다음에 다음에..난 지금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 가족
‘잔혹동시’ 모녀의 대화
▶ ‘잔혹 동시’ 논란을 기억하시는지요? 초등학교 5학년생인 이순영양이 지난 3월 출간한 시집 <솔로강아지>에서 ‘학원 가기 싫은 날’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해당 시는 어머니에 대한 시적 표현이 잔인하다는 비판을 받고 전량 폐기됐습니다. 아이들이 지은 시를 읽고 함께 행복해하던 이 평범한 가족은 잔혹 동시 논란을 겪으며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가까웠던 엄마와 딸은 논란 이후 오히려 멀어졌다고 합니다. 엄마인 김바다 시인이 딸 순영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가정의 달 5월, <솔로강아지> 시집이 잔혹 동시 파문에 휩싸이면서 우리 가족은 상상해본 적도 없던 많은 일들을 겪었다. 문제작이 된 ‘학원 가기 싫은 날’과 순영이는 문학적 비평의 잣대가 아닌 마녀사냥 식의 여론몰이에 휘말려 분서갱유를 당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아이의 동시집을 자신들의 눈앞에서 불태우라고 출판사에 몰려가 아우성을 쳤고 순영이에게 사탄의 영이 씌었다는 블로그 글까지 올라왔다. 출판사는 계속되는 항의와 협박에 시달리다 곧바로 백기를 들고 시집을 회수 폐기했다.
순영이와 오빠는 어릴 적부터 여러 권의 동시집과 동화책을 출간했고 그 책들은 따뜻한 감동을 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나는 엄마로서, 시인으로서 아이들의 글을 사랑했다. 스쳐 지나가는 이 반짝임들을 앨범처럼 모아두고 한번씩 보물처럼 꺼내보며 늙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훗날, 남편과 내가 아이들 곁에 없을 때 아이들이 이 보물들을 보며 웃음 짓고 가족의 정을 추억해주기를 바랐다.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사촌누나 앞에서 동시를 써서 발표하고 박수를 받고 웃음꽃을 피우며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은 또 얼마나 즐거웠던가.
한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오해의 상당 부분이 풀렸고 위로와 격려의 말씀도 많이 들었다. <솔로강아지>의 작품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이루어지고 <잔혹동시를 둘러싼 천 개의 시선, 코리아타운>이라는 학술서도 출간되었다. 늦가을이면 문제작을 뺀 개정판도 나오고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북콘서트와 같은 좋은 일들이 예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딸과 엄마의 관계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논란 이후 성형 수술 사진의 비포, 애프터처럼 눈에 띄는 변화가 순영이와 엄마인 내게 일어났다. 우리는 요즘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주 부딪히고 심지어 돌아서서 후회하게 될 말들도 서로에게 내뱉을 때가 많다. 정원의 꽃나무를 가꾸듯 가족의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내 취미 알아? 모름 엄마도 아냐”
“걸스데이 노래 부르고 춤추기”
“땡! 덕질.”
“덕질?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나랑 오빠랑 차별하지 마”
“그렇게 느끼면 고치도록 노력할게”
“같이 자겠단 약속도 안 지키잖아”
“그 점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 순영아, 인터뷰를 하려는데 엄마에게 궁금한 거 없어? 내게 질문 좀 해봐. 아무 거나.
순영 안 궁금해. 꼭 질문을 해야 한다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과 똑같은 거야. 엄마는 재복이 오빠가 좋아, 내가 더 좋아?
나 오빠는 오빠고 너는 너잖아. 백합과 장미가 서로 다르게 아름다운 거지. 누가 누구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순 없는 거야. 우리가 <솔로강아지> 논란 전에는 사이가 좋았던 것 같은데….
순영 그랬나? 그렇다고 치고, 일단.
나 엄마 생각엔 우리가 일이 다 해결되고 나서 삐걱거리게 된 것 같아. 다시 좋아지고 싶어.
순영 삐걱삐걱? 로봇이세요? 널 사랑한다고 말해버릴까 싶어. 이렇게 매일 가슴 아파, 아파, 아파. 그런데 왜 이래. 니 앞에만 서면 작아져 버려. 아무것도 아닌 애기 같아. 애기 같아.
나 잠깐, 그게 무슨 노래야?
순영 ‘여자 대통령’.
나 그 노래 좋아해?
순영 옛날에 1위로 좋아했는데 지금은 ‘보고 싶어’라는 노래가 내게 1위야. 걸스데이 거.
나 걸스데이? 언젠가 네가 걸스데이 이야길 하면 우리가 친해질 거라고 했지. 왜?
순영 내가 좋아하는 거잖아.
나 그럼 그동안 엄마가 순영이가 좋아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이야길 안 나누었다는 거야?
순영 응.
나 이제 네가 엄마에게 물어봐.
순영 딸의 취미는? 설마 이것도 모르면 친엄마가 아니겠지. 진짜 모르는 것 아냐?
나 아니, 잠깐. 너의 취미는… 힌트 좀 줄래?
순영 걸스데이. 그게 힌트야. 여기서 모르면 진짜 엄마가 아니야.
나 엄마 되기 참 쉽네.
순영 응. 되게 쉽지. 십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음… 십, 구, 팔, 칠….
나 알았다! 걸스데이 노래 부르고 춤추기야.
순영 땡! 덕질.
나 덕질이 뭔데? 그것이 무슨 전문용어야.
순영 팬질. 팬질과 덕질이 같은 거야. 모르면 그냥 관둬. 괜찮아, 엄마. 모르는 게 나쁜 건 아냐.
나 위로해줘서 고맙긴 한데 이것 못 맞히면 엄마가 아니라며.
순영 응. ㅎㅎ.
나 그러면 결론을 내려보자. 우리가 지금까지 인터뷰를 했어. 서로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린 이제 친해진 거야?
순영 아니.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어.
나 네가 원하는 대답이 뭔데?
순영 차별하지 마. 오빠랑.
나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래도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고치도록 노력할게. 난 걸스데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네 질문을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차별을 안 하는 거지?
순영 오빠가 실수를 할 때는 부드럽게 대하고 내가 실수를 하면 엄마가 왈왈댄다구.
나 (왈왈?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지) 내가 그랬나? 그것만 고치면 돼?
순영 아니, 엄마는 오빠랑 나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 하지만 오랫동안 밤에도 오빠만 재워주고 오빠랑 같이 자고, 오빠가 예전에 남산에 있는 학교 다닐 때 운동회 날이 겹치면 오빠 운동회만 아빠까지 데려가 버리고. 맛있는 것도 내가 먼저 달라고 했을 때도 오빠에게 먼저 주었지. 예전엔 80점 이상만 받으면 된다고 하고는 이번에 수학을 90점을 받아왔는데도 칭찬도 안 해주고, 더 열심히 하라고만 하고.
나 그래, 네 말이 맞아. 오빠가 섬세한 에이(A)형이고 너는 씩씩한 비(B)형이었기에 엄마는 늘 네 염려는 해본 적이 없지. 오빠가 13개월 때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후로 엄마는 오빠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물론 지금은 오빠가 쑥 커버려서 엄마가 더 이상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너보다 오빠를 먼저 더 많이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네. 외갓집에서 잠시 너를 키워주었는데 네가 아기 때도 얼마나 밝고 씩씩하고 순한 지… 난 네 걱정을 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 숙제도 준비물도 혼자 다 알아서 했지.
순영 오빠가 크면 나랑 같이 자겠다고 약속해놓고 이제 오빠가 육학년이 되었는데 엄마는 아직도 나랑 같이 자지 않잖아. 다리를 붙잡고 애원해도 맨날 피곤하다고 ‘다음에, 다음에’라고 하고.
나 순영아, 그 점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네가 밤 1시까지 자지 않잖아. 엄마도 피곤해. 그 전엔 실컷 놀다가 엄마가 피곤해서 쉬고 자려고 하면 네 방으로 오라고 막 불러대지. 모두 자야 하는데. 엄마도 이제 너희들이 좀 컸으니 밤에 엄마 시간을 가지고 싶어. 그리고 이제는 오빠랑도 안 자잖아. 그러니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순영 엄마는 항상 ‘다음에 너랑 같이 잘게’라고 하고 늘 ‘다음에’라고만 해. 난 지금 사랑이 필요하다구.
나 그렇구나. 미안해. 그 점에서 달라지도록 하겠음. 다음은 또 뭐였지? 요즘 성적에 대해 엄마가 강조했다는 거? <솔로강아지> 이후 너에 대해 내가 생각이 많아졌어. 너를 응원해준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훌륭하게 자라주었으면 했고….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했나봐. 그건 엄마도 너도 피곤해지는 건데. 우린 우리 식대로 살자.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자유롭게.
순영 그래. 그럼 예전처럼 80점 이상이면 칭찬해주는 거지?
나 이제 한 학년 올라가니 90점으로 하는 게 어때?
순영 그래, 알았어. 최대한 노력해볼게, 마마야.
나 엄마는 너희들을 키울 때 불필요한 질투나 경쟁심을 심지 않으려고 너희들에게 공부해라 한 적도 없었고. 네 말대로 공부하라는 말을 최근에 많이 했었지. 엄마가 잘한 점도 알아주면 고맙겠는데.
순영 나도 알아. 하지만 그걸 떠올릴 수 없는 다른 일들이 많았잖아. 그리고 나도 이 말을 하고 싶어. 엄마, 사랑해.
나 네가 키워달라고 집으로 가져왔던 온갖 동물들, 엄마가 정성껏 돌봤잖아. 남이 버린 햄스터들, 이구아나, 소라게, 장수풍뎅이들. 그리고 개도 키우고 있잖아. 우리 좋은 일만 기억하자. 짧은 인생에.
순영 그래. 그럼 끝내자. 우리 처음의 행복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자.
재복 순영아, 빨리 게임하자.
나 아니, 순영이 너도 재복이도 게임 못해. 둘 다 차.별.없.이. 똑같이 못하게 해 주마.
재복, 순영 안~돼. 안~돼.
순영 나중에 <걸스데이의 어느 멋진 날> 같이 보자구.
그랬다. 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가까스로 화해했다. 아이랑 소통한다는 것은 어른의 입장에서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것이 아니다. 딸이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엄마가 딸에게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작고 순수하고 예쁜 거였다. <걸스데이의 어느 멋진 날>을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엄마가 부족해도 끊임없이 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것.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순영이 엄마 김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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