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마트 주차장 납치·전철역 폭행.. "여자로 살기 겁나요"

곽래건 기자 2015. 9. 2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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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女性이 위험하다] [1] 안전지대 없는 흉악범죄 강력범죄 피해 10년새 5배.. 女 7%만 '안전하다' 생각

'강력범은 늦은 밤 으슥한 곳에서 여성을 노린다'는 통념이 점점 틀린 말이 돼가고 있다. 여성이라면 이제 언제 어디서든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치안이 비교적 좋다는 부촌(富村)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7월 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백화점 주차장에선 이모(52)씨가 쇼핑을 하고 나온 60대 여성에게서 돈을 뺏으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도 '트렁크 살해범' 김일곤처럼 여성이 차에 타는 순간 달려들어 흉기로 위협했다.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 상당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강력범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납치나 유괴, 인신매매를 뜻하는 '약취유인' 범죄는 2013년 피해자 190명 중 100명이 20세 이하 여성이었다. 여성들이 "여자로 사는 게 무섭다"며 불안에 떠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성 대상 강력범죄는 '묻지마 테러' 양상도 띠고 있다. 올해 1월 경기도 부천에선 30대 남성이 "범죄를 저지르면 구치소에 들어가 일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길 가던 50대 여성을 찔러 죽였다. 지난 5월엔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20대 남성이 "취업에 실패해 화가 난다"며 20대 여성을 주먹으로 무차별 폭행했다. 범행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는 강력범들이 신체적 약자인 여성이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범행 장소도 택시, 공중화장실, 대학교 기숙사, 원룸, 주택가 골목길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2012년 충북 청주에선 택시 기사가 여성 4명을 연달아 납치해 성폭행했다. 범인은 특수강간 등 전과 4범이었다. 그가 운전한 건 이른바 '도급 택시'였다. 전국에 수만대가 돌아다닐 것으로 추정되는 도급 택시는 정식 택시회사 차량이지만 하루에 얼마씩 사납금만 내고 차를 빌리는 무자격 기사들이 모는 택시다. 직장인 원모(여·28)씨는 "조수석 대시보드에 운전자 증명서가 붙어 있지 않아 아찔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2013년 9월엔 30대 남성이 길 가던 20대 여성을 공중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고, 비슷한 시기 부산의 한 대학교 기숙사엔 20대 남성이 침입해 여대생을 성폭행했다. 지난 22일 새벽엔 경기도 수원에서 회사원 정모(29)씨가 20대 여성의 원룸에 침입해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부천의 원룸에서 자취하는 진모(여·29)씨는 "낮에도 문을 두드리고선 조용히 문앞에서 기다리는 남자들이 있다"며 "동네에 여자만 사는 자취방에 표시를 해놓는 치한이 있다는 소문도 돌아 불안하다"고 했다.

수사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암수(暗數)범죄는 훨씬 많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모(27)씨는 지난 5월 밤 편의점에서부터 낯선 남자가 따라왔다고 했다. 이씨가 빌라 방으로 들어가려는데도 이 남자는 "잠깐 밖에서 이야기하자"며 계속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다. 이 남자는 이씨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순간 노려보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씨는 "경찰에 신고할까 했지만 내가 어디 사는지 뻔히 아는데 신고했다가 나중에 해코지 당할까 두려워 그만뒀다"고 했다.

조모(여·32)씨도 대학원생이었던 5년 전 늦은 밤 귀갓길에 봉고차를 탄 남성 2명으로부터 납치를 당한 적이 있다. 뒤에서 갑자기 달려들어 손쓸 틈이 없었다. 범인들은 조씨를 차에 태워 근처 숙박업소로 강제로 데려갔다. 1명이 카운터에서 정상적으로 숙박비를 계산하는 사이 다른 1명은 뒷문으로 조씨를 몰래 방까지 데려갔다. 이들이 실수로 방문을 잠그지 않은 덕에 조씨는 밖으로 뛰쳐나가 업소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구조됐지만, 보복당할까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범죄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여성은 6.8%에 그쳤고, '불안하다'는 응답은 69.5%에 달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김모(여·27)씨는 "늦은 밤 집에 갈 땐 용변이 급해도 지하철역 공공화장실엔 절대 들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딸들이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 태권도장에 보내고 있다"며 "한국에서 여성이라면 누구든 흉악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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