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 야구장이 780억 원?

2015. 7.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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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의 한 야구장.

잔디도 조명탑도 관중석도 없고, 바닥에는 고라니 발자국과 배설물이 흩어져있습니다.

덕아웃은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에, 그라운드는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버릴 정도.

이 야구장 건설에 들어간 예산은 무려 780억 원.

웬만한 프로야구 구장을 지을 수 있는 막대한 돈은 대체 어떻게 사용된 걸까?

한 지역 유지가 토지보상비로 2백여 억원을 받으면서 전임 시장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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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좋은 녹색 잔디와 대형전광판, 수용인원 2만7천 명의 널찍한 관중석을 갖춘 광주 챔피언스 필드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이 곳을 짓는 데 정부와 지자체, 기아구단은 모두 990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딱~ 와!")

지난 달 이승엽 선수의 400호 홈런이 터진 이곳 포항야구장은 320억 원을 들여 지었고, 롯데 자이언츠의 제2 홈구장으로 지난해 문을 연 울산야구장을 짓는데는 모두 450억 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산 옆으로 드러난 넓은 황무지에 부채꼴 모양 울타리가 쳐 있고 콘테이너가 드문드문 놓여 있는 이 곳, 천안야구장의 건설비용은 780억 원입니다.

[이지은] "아무 것도 없는 들판 같은 거? 밭 같아 보여요 그냥"

[김성진] "이게 완성이 된 거에요?" ("네.") "780억 원이요? 짓고 있는 건 줄 알았어요. 초등학교 놀이터도 이거 보단 잘 만들겠네요"

아직 공사장 같아 보이지만 재작년에 성대한 완공식까지 하고 정식 시설로 운영되고 있는 야구장입니다.

780억 원이면 웬만한 프로야구 구장을 지을 수도 있는 막대한 돈인데, 대체 이 돈은 어디로 간 걸까요?

2580은 이 값비싼 야구장 곳곳을 살펴봤습니다.

잔디가 깔려있지 않은 그라운드는 흙으로 바닥을 다져놓았습니다.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작은 돌이 섞여 있습니다.

[조종현 심판위원] "불규칙 바운드가 생겨요. 그게 빈번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야수들이 수비를 하다보면 튀어서 얼굴을 많이 맞으니까"

야구장 관리인들은 4륜 오토바이 뒤에 배수관 덮개를 매달고 다니면서 그라운드를 고릅니다.

제대로 된 롤링 장비를 살 돈이 없어 직접 만들었습니다.

[주성곤 팀장 / 천안시 시설관리공단] "침대 스프링 다음에 뭐 H빔 등등으로 밀어봤는데 효과가 없어서 하수구 뚜껑을 뽑아서 한 번 매달아서 끌고 가보니까 땅이 평탄하게 잘 되더라고요"

비가 조금만 와도 금세 진흙탕이 돼 버려 경기가 취소되기 일쑤라고 합니다.

[황승순] "중간 중간에 보면 물이 고여 있으니까 경기 하다 보면은 미끄러지고 그러니까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죠. 다치고 하니까"

야구장 그물을 걸어둔 기둥은 철제 기둥대신 도로에 세우는 콘크리트 전봇대입니다.

제대로 박혀있지도 않아서 점점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홈런과 파울을 구분하는 폴대는 1루와 3루 베이스 연장선상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손해관] "가장 기본적인 거니까요 야구장에. 내가 경기를 하는데 경기장의 규정이라든가 규격은 딱 항상 기본적으로 맞아야 되는 거죠"

깊이 1미터 정도 되는 배수로에는 덮개도 없습니다.

몸 풀 공간이 없어서 선수들은 이 주변에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홍자균] "바로 수로 10cm, 20cm 옆에서 저렇게 연습하는 거예요. 밖에서 연습하는 사람들이 공 줍다가 밑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가끔 일어났거든요.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조명이 없어 야간경기는 꿈도 못꾸고 곳곳에는 고라니 발자국과 배설물이 발견됩니다.

이런 야구장에 이미 620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고, 1백억 원 이상의 세금이 더 들어갑니다.

[유명종] "진짜 비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죠, 저희가 봤을 때도. 이런 큰 비용을 들여서 천안시에서 실행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구장 상태를 와서 게임을 하다보니까 너무 안 좋아요"

천안에 이웃한 아산시의 한 야구장에 가봤습니다.

내야에는 인조잔디가 깔려있고 철제 기둥에 그물이 설치돼 있습니다.

배수시설도 돼 있어 웬만큼 비가 와도 야구를 할 수 있습니다.

간이 관중석과 전광판, 잘 정비된 주차장, 그리고 안전펜스까지 설치된 이곳의 건설비는 얼마나 들었을까?

[한기준 회장 / 아산시 야구협회] "총 사업비가 24억 5천만 원 들어갔습니다. 설계비, 용역비 이런 거 기타 등등 빠지면 실질적으로 여기에 순수하게 이 야구장을 위해서 들어간 비용은 약 18억 원 정도"

야구장을 짓는 데 들어갔다는 수백억 원의 혈세, 그 돈이 쓰이는 과정에 문제는 없었던 걸까요.

천안시가 야구장 건설계획을 처음 추진했던 2004년 당시부터 차근차근 따져보겠습니다.

천안야구장 사업은 2002년 당선된 성무용 전 천안시장의 공약으로 시작됐습니다.

국비 지원을 받아 1200억 원을 투입해 프로야구를 할 수 있는 1만 3천석 규모 대형 야구장을 짓기로 하고, 2004년 11월 지금의 야구장 부지를 체육시설 용지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검토한 중앙 정부는 재정 지원을 두차례에 걸쳐 거부했습니다.

[전 천안시 체육과장] "중앙 정부에서 뭐라고 했냐면 천안이 대도시도 아니고 또 프로구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천 몇 백억 원씩이나 들여서 지금 야구장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국비 지원이 최종 무산되자 천안시는 2009년 중소규모의 야구장을 짓는 걸로 계획을 축소했습니다.

예산도 1200억 원에서 780억 원으로 줄이면서 전액을 시가 부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사들이는 땅의 면적은 13만㎡ 그대로 유지했고, 전체 예산 780억 원 가운데 무려 630억 원을 토지보상비로 책정했습니다.

[전 천안시 체육과장] "여건이 되면 그때 가서 돔 야구장을 지읍시다. 그러려면 땅은 우선 구입을 해놔야되니까 그렇게 하시죠. 이거는 땅을 샀다고 해서 땅이 도망가는 게 아니잖아"

[성무용 전 천안시장] "일단 땅만 사 놓으면 가만 놀릴 순 없잖아요. 그 땅을 제대로 된 13,000석 정도 규모의 야구장은 아니지만은 간이야구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당시 천안시는 땅을 살 형편도 아니었는데 재원조달 계획을 부풀려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던 사실이 2013년 감사원에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정병인 사무국장 / 천안아산 경실련] "과연 야구를 위한 사업이었는지 아니면 야구를 빌미로 한 개발 사업이었는지, 토지 개발 사업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요"

땅을 사들이는 과정은 어땠을까.

야구장이 들어서기로 했던 천안시 삼룡동 일대는 원래 논밭이었던 자연녹지였습니다.

그런데 2008년 12월 천안시가 야구장 터의 남쪽과 북쪽 일대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2종 주거지역으로 변경하면서, 덩달아 가운데 낀 야구장 부지 땅값이 폭등합니다.

[천안지역 감정평가사] "기대감이 반영돼서 바로 주거지역하고 붙어있는 자연녹지는 훨씬 가격이 많이 나가죠"

2010년 천안시가 3.3제곱미터 당 120만원에 사들인 야구장 부지 내 땅은 불과 4년전 3.3제곱미터 당 55만 원에 거래된 곳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땅값이 오를 조건을 만들어준 뒤 일부러 비싸게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병인 사무국장 / 천안아산 경실련] "야구장의 토지매매를 앞두고 있다면 주변의 인허가를 조절하거나 제한하거나 시기를 조정을 해서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특정한 목적, 특정한 배경이 뒤에 깔려 있을 위험성이 있다"

천안시는 2010년 6월 감정평가를 실시해 540억 원에 야구장 땅 전체를 사기로 결정했는데 이 감정평가 결과도 논란입니다.

2010년 천안시가 사들인 야구장 부지의 3.3㎡ 당 평균 가격은 130만 원.

2종 주거지역으로 지정된 야구장 북쪽지구의 2012년 실거래가격은 100만 원대 초반으로 야구장 부지가 더 비쌉니다.

[주일원 의원 / 천안시의회] "감정평가 해서 물론 준 거죠. 그런데 토지매입비가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런 금액을 지출하면서까지 이렇게 억지로 추진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지만 천안시에서는 오히려 땅값을 적게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안시 토지보상담당 공무원] "민원인들이 자꾸 금액이 작다고 여러 사람이 왔었어요. 감정사가 감정을 한 거 가지고 우리가 따라야하지 본인들이 금액 적다고 한다고 거기에 말려들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우리는 최대한 적게 줬다는 뜻이죠 시에서는?") "담당자로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당시 땅값을 매긴 감정평가사들도 합리적 근거에 따라 정확히 감정했다는 입장입니다.

[윤용민 / 천안야구장 감정평가사] "야구장 부지는 1번 국도 도로변에 있는 땅이에요. 그래서 1번 국도변의 사례들을 많이 찾았죠. 그 가격을 근거로 해서 합리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국토부는 이 야구장 땅값의 과다감정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감정원에 타당성 조사를 맡겼습니다.

2580 취재결과 한국감정원은 이 땅값산정이 '부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린 걸로 확인됐습니다.

천안야구장 부지를 감정한 평가사들이 땅 가격을 잘못 계산했다는 의견을 낸 겁니다.

국토부는 지난 24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감정평가 부적정결과에 따른 행정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야구장 건설이 이뤄진 이유는 뭘까.

지역사회에서는 특정인에게 집중된 토지 보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체 토지보상금 540억 원 가운데 210억 원이 한 일가에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주일원 의원 / 천안시의회] "원OO 씨라고 계신데 그분이 약 200억을 넘게 가져갔어요, 그 일가가. 전임 시장하고 아주 오랜 세월 막역한 사이로 지역에서 다 알고 있고요"

천안에서 하수관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원 모씨는 성무용 전 천안시장이 고문으로 있던 충남북부상공회의소에서 부회장 등 임원을 지냈습니다.

원씨의 업체는 성무용 전 시장 재임시절 천안시의 굵직한 하수관 공사에서 자재의 약 60%를 납품해왔습니다.

[주일원 의원 / 천안시의회] "특정인이 전임 시장과의 어떤 그런 친분관계, 또 천안시에 독점적으로 자재를 납품해오고 이런 것이 다 우연이었느냐. 과연 우연이겠느냐. 이런 차원에서 전 분명히 특전인에 대한 토지매입 특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원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야구장이 문제가 되면서 아직 땅 보상비도 다 받지 못했고, 땅이 10년 넘게 체육시설 용지로 묶이면서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주장합니다.

[원OO] "가만히 있다가 땅 뺏겨서 거기다가 내버려두면 더 개발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땅을 돈도 아직 덜 받았는데 야구장 들어오면 좋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원씨는 야구장 부지 남쪽에 소유한 약6만 여 ㎡의 땅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조합원을 모집중입니다.

[원OO] "아파트 그거 하시는 분들이 와서 가격을 어느 정도 쳐줘서 아파트 사업을 하자고 그러니까 하는 것이죠. 2종 주거지역이 됐으니까"

성무용 전 천안시장은 원씨를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특혜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성무용 전 천안시장] "제가 천안에서 정치 30년 했어요. 그럼 천안 분들 웬만한 분들 제가 알잖아요. 우리가 부지 선정을 하다보니까 그 사람 땅이 된 거지 그 사람 위해서 거기 한 거 아니거든요"

시민단체들은 천안야구장 문제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입니다.

부실한 야구장 시설에서 시작된 천안야구장 논란.

시민들의 수백억 혈세는 잘 쓰였는지 그 과정에 의혹은 없는지

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조사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자(c) MBC (www.im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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