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죽음에 얽힌 몇 가지 질문들

주진우 기자 2015. 6. 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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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시신은 반듯이 누워 있었다. 신발을 벗은 채. 시신 옆에는 양말로 묶은 봇짐이 있었다. '꿈같은 사랑'이라는 글귀가 쓰인 천 가방에는 스쿠알렌 병과 육포, 콩 10알, 유통기한이 지난 머스터드소스와 2003년산 보해골드 빈 소주병, 2011년 이전에 생산된 순천생막걸리 병 등이 발견됐다. 순천 경찰은 '시신 부패가 심해 신원 확인이 안 되니, 변사자 수배하고 신원 확인이 안 되면 행려병자로 처리하겠다'라고 보고했다. 특징으로는 '겨울 점퍼, 금니 10개, 반듯하게 누워 있음' 등을 기록했다. 순천경찰서 우형호 서장은 '담당 형사가 노숙자로 판단했다. 경찰이 유병언과의 연관성을 몰랐으니 검찰은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은 전 국민이 '유병언 잡기 놀이'에 빠져 있을 때였다. 사실 세월호 참사의 법적 책임을 전적으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묻기는 어려웠다. 정부는 유병언을 제물 삼아 세월호 참사에서 구원받으려고 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이 영장에서 유병언에게 묻는 혐의는 횡령과 배임이다. 유병언을 잡는다 해도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 밝혀지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제공 안성 금수원에 차려진 유병언 전 회장의 장례식장. 구원파 내에서 유 전 회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세월호 책임론은 자꾸만 구원파에게 굴러가고 있었다. 검찰은 사상 최고 현상금 5억원을 유병언 목에 걸었다. 이전까지는 1999년 탈주범 신창원, 2003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걸린 5000만원이 최대였다. 유병언 검거 작전에 투입된 검사는 15명, 특별수사팀 수사관은 110명,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145만명에 이르렀다. 해경 2100여 명과 함정 60여 척도 유씨의 밀항에 대비했다. 경찰은 20여만 곳을 수색했고, 통신 추적한 전화번호만도 1000개가 넘었다. 유 전 회장 검거를 위한 임시 반상회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임시 통장회의가 열렸다. 임시 반상회가 열린 곳만 24만 군데. 전국적인 임시 반상회가 열린 것은 1996년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 사건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배자 검거를 위한 반상회가 열린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국내 거의 모든 역술가와 점쟁이들도 나섰다. 검거 작전을 지휘했던 검찰 고위 관계자는 '유병언이 숨은 곳을 알고 있다는 역술가, 점쟁이들의 전화가 하루 수십 통씩 걸려왔다. 이들의 80% 이상은 유병언이 안성 금수원 주변에 숨었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검찰, 유병언 사망 알고 있었나?

'단군 이래 최대 검거작전'은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7월21일, 경찰은 6월12일 순천 매실밭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 전 회장이라고 발표한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국과수로부터 이 내용을 21일 오후 7시30분에 전달받았다'라고 말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21일 오후 6시가 넘어 퇴근 무렵에 경찰로부터 관련 내용을 통보받았다'라고 말했다. 7월22일 순천에 급파된 감식요원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오른쪽 집게손가락 지문이 유 회장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40일 동안 못했던 일이었다(유 회장의 지문을 확인한 과학수사 요원들은 지난해 과학수사 대상을 수상했다). 국과수 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병언이 100%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유병언은 죽었는가'라는 질문은 '국가는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 의혹' 등과 더불어 세월호의 최대 미스터리가 되었다.

유병언은 죽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병언은 죽었다. 유 전 회장의 시신에서 채취한 지문은 주민등록상에 기록된 지문과 일치한다. 시신의 DNA도 유 전 회장과 일치한다. 유 전 회장 왼쪽 손가락 일부 마디가 절단된 상태도 일치했다. 유 전 회장은 병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의 치과 주치의 김 아무개씨가 직접 치아를 확인한 결과 유 전 회장임을 확인했다. 유 전 회장의 죽음에는 유 전 회장의 가족도 토를 달지 않는다. 구원파 내에도 이견이 없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25일 서중석 국과수 원장이 유병언 전 회장의 사인 감정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42~43쪽 상자 기사 참조). 특히 검찰과 경찰이 40일 동안 유 전 회장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총괄한 혐의로 구속된 이재옥 박사(ㅇ의과대학 교수)는 '6월12일 밤 검찰에서 매실밭 사체에 관해 내게 물었다. 검찰 수뇌부, 혹은 권력의 상층부에서는 7월21일 이전에 유 회장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꿈에도 몰랐다는 경찰과 검찰의 설명과 달리, 검찰에서 매실밭 시신이 유 전 회장일 가능성에 대해 이미 살펴봤다는 얘기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5월25일 유 전 회장을 간발의 차이로 놓친 별장에서 불과 2㎞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시신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게 더 의심스럽다. 별장에서 스쿠알렌과 육포가 나왔다는 것은 언론에도 보도된 내용이었다. 시신의 짐에서도 스쿠알렌과 육포가 나왔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텔레비전마다 구원파를 속속 해부하고 있어서 스쿠알렌이 구원파의 대표 상품이라는 것은 전 국민이 아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스쿠알렌을 먹는 노숙자는 없다'라고 말했다.

순천 매실밭에서 변사체가 발견된 6월12일. 이 검사실 김 수사관이 이재옥 박사를 불렀다. 이 박사는 '별장 근처에서 사체가 발견됐는데 '꿈같은 사랑' 가방과 스쿠알렌 병, 소주병 등이 나왔다며 회장님의 소지품이 맞느냐고 김 수사관이 물었다. '회장님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술병을 들고 다닐 리가 없다'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검찰의 한 인사가 '이제 다 끝났다. 유 회장이 돌아가신 게 검찰에도 낫고, 구원파에도 낫지 않냐'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의아했다'라고 말했다.

정황은 또 있다. 6월9일 인천지검의 한 부장검사가 이 박사를 불러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회장이 곧 잡힐 것 같다. 잡히게 되어 있다. 금수원에 들어가야겠다.' 이 박사가 '회장님이 금수원에 없는 줄 알면서 왜 가느냐'라고 묻자, 부장검사는 '여론 조성상 가야겠다. 찾을 게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6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금 유병언 검거를 위해 검경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서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6월11일 검찰은 경기·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대 63개 중대 등 6000여 명을 동원해 금수원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다. 압수수색에서 경찰은 유 회장의 칫솔과 비누, 수건 등 DNA를 검출할 수 있는 용품을 모두 가져갔다고 한다.

6월13일, 유병언 회장의 친형 유병일씨가 검찰에 긴급 체포된다. 체포된 유병일씨에게 검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입 안에서 DNA를 채취한 것이었다. 13일 검찰은 이재옥 박사를 불러 조서를 새로 작성했다. 그런데 그전 조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 박사는 '그전까지는 회장님 도피 이야기만 물었다. 그런데 도피 이야기는 없었고 거의 풀어주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신엄마' 신명희씨가 자수했다.

5월3일 유 전 회장 일행은 전남 순천으로 도피했다. 검찰 수사팀은 유 전 회장이 순천에 숨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월 중순부터는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추 아무개씨를 밀착 마크하고 있었다. 다만 추씨를 미행한 사람들이 검찰인지 경찰인지 확실치 않다. 유 전 회장의 운전기사 양회정씨는 '5월20일쯤 추씨와 연락이 끊어졌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휴대전화도 도청되고, 차량도 미행당했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가위바위보로 정한 '유병언 잡기' 순서

5월25일 새벽 3시, 검찰 수사관들이 운전기사 양씨가 있는 순천 야망연수원에 들이닥친다. 양회정씨의 말이다. '검정색 스타렉스에서 세 사람이 플래시를 갖고 내렸다. 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유병언·유대균 여기 있다' '세콤을 해제하자'고 하다가, '열쇠를 어떻게 하지' 하더니 그냥 갔다.' 수사팀이 검거에 나서지는 않았다. 양씨는 유 전 회장과 5분가량 떨어진 곳에서 지냈다. 대신 같은 날 오후 4시, 검찰 수사관들은 유 전 회장이 머물고 있던 별장을 덮쳤다. 수사팀이 유 전 회장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구원파의 핵심 관계자는 '회장님은 타살당했다. 정부가 회장님 혹은 회장님 시신을 확보한 후에 세월호 비난 여론을 구원파로 돌리기 위해 '시체 장사'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도피 총책이라고 떠들어댄 '김엄마'는 회장님의 밥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검찰이 구원파를 가지고 쇼를 했다.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라고 말했다.

유 전 회장의 죽음을 알고도 숨겼다는 의혹에 순천경찰서 한 고위 관계자는 '순천 경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보 공유가 잘 되지 않아 검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인천지검 고위 관계자는 '6월12일 변사체 신원 확인은 경찰이 지나친 일이었지만, 검사가 사인을 규명하고 가족을 찾아주자는 취지로 부검 지휘를 했다. 특별수사팀 직원들은 퇴근도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유병언을 쫓았다'라고 말했다. 대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전 국민을 상대로 쇼를 했을 리는 없다. 다만 현장 경험 없고 무능한 검사들이 공적 다툼을 하느라 정보 공유가 잘 되지 않았다. 은신처를 급습했다가 가위바위보로 유병언을 잡는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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