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이제부터 네가 한 말, 쓴 글을 다 안다

2015. 6. 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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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에는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감청을 비롯한 통신제한조치 집행을 위탁하거나 협조하게 하는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음성통화나 이메일은 물론 ‘카톡’과 SNS 게시글을 통한 통신내용까지 정부가 들여다 볼 수 있다.

곳곳에서 마스크가 늘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과 대처 실패 소식은 시민들의 말문을 막았다. 하지만 메르스 걱정 속에 묻혀 지나간, 진짜 말문을 가로막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소식이 있었다. 휴대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통신내용을 더 쉽게 감청할 수 있게 하자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마스크 뒤로 입만 가려봤자 소용없다. 음성통화나 이메일은 물론 ‘카톡’과 SNS 게시글을 통한 통신 내용까지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뿐 아니라 민간기업인 전기통신사업자들까지 당신의 메시지를 언제든 볼 수 있게 된다.

사업자에 감청협조설비 설치 의무화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을 포함한 12명의 국회의원들이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날은 메르스 확산 공포가 점차 고조되던 6월 1일이었다. 개정안에는 통신사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업체, SNS 등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감청을 비롯한 통신제한조치 집행을 위탁하거나 협조하게 하는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핵심은 이들 사업자에게 감청협조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들이 감청 등의 통신제한조치를 무리 없이 집행할 수 있게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감시위원회까지 설치된다.

감청을 하려면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이번 개정안은 기존의 ‘영장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행정부 내에 통신제한조치 전반을 관장하는 위원회를 둬 실제 집행과정을 담당할 사업자들의 감독권한이 이 위원회에 주어진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민간에 통신제한조치 집행을 맡기는 만큼 그에 따른 감독이 필요하다는 논리지만 정작 감청을 실시하는 정부기관을 엄격히 통제하는 방안은 쏙 빠져 있다.

정부기관이 그동안 도입해온 인터넷 감청장비를 감독하는 실정만 들여다봐도 현실은 드러난다. 검찰과 경찰을 비롯해 국방부, 관세청 등 정부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감청장비 현황을 파악하는 업무는 미래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송호창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미래부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6월 현재 감청장비 보유 현황을 입수한 결과 모두 367대의 감청장비가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인가받은 73대의 인터넷 감청장비는 관세청이 보유한 1대를 제외하면 미래부가 파악한 보유 현황에 올라 있지도 않았다.

2009년 이후로 미래부가 인가한 감청장비는 모두 흔히 패킷 감청이라고 부르는 인터넷 감청장비였다. 정부와 민간 전체의 감청장비 보유 현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미래부가 이 70여대의 감청장비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문 이유는 하나다. 미래부에 도입 신고 의무가 없는 국가정보원이 이들 감청장비를 보유·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비법 개정안을 낸 새누리당 등 일각에서 주장한 것과 달리 휴대전화와 인터넷, SNS에 대한 감청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감청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인터넷 감청장비 제조업체가 공개한 장비의 기능에 따르면 메시지의 종류에 관계없이 전달되는 거의 모든 정보의 내용이 수집 가능했다. 음성통화의 경우 유선전화와 인터넷전화 모두 메시지 내용을 수집·기록할 수 있고, 팩스·이메일·메신저 대화·인터넷 게시글 및 파일 전송 내역도 파악할 수 있었다. 보안을 위해 이용되는 HTTPS 방식의 암호화 통신 메시지 내용까지 알아내는 기능도 있었다. 특정 문구가 들어간 메시지의 내용을 따로 수집하는 기능도 갖춰져 있는 데다, 마음만 먹으면 특정 메시지는 전달할 수 없게 막는 것도 가능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통신사업자를 통해 실시된 통신제한조치 건수는 5846건에 달했다. 말 그대로 유선·이동전화 등 통신사업자를 통해 감청한 내용을 제공받은 건수만 여기에 포함된다. 5846건 가운데 5531건, 통신 비밀자료의 94.6%가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제공됐다. 여기에 현재로선 파악할 수 없지만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을 70여대의 인터넷 감청장비를 통한 감청내역까지 더하면 실제 이뤄진 감청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감청 탐지 서비스 업체 직원이 설치된 감청 설비가 있는지 탐지하고 있다. / 가드윈경호기획 제공

대규모 개인 신상정보 유출 우려

법원의 영장이 필요한 통신제한조치에 비해 영장 없이도 가능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은 전화번호 기준으로 지난 한 해에만 1028만건을 넘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정부가 전기통신사업자들로부터 제공받은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1억2800만건이나 됐다. 정보수집을 이유로 역시 영장 없이 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할 수 있는 통신자료 제공건수는 지난해 1296만여건으로 역대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전체 국민 4명당 1명의 통신자료를 정부가 마구잡이로 수집하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대규모 정보유출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는 통신사업자가 보유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 등에 제공될 때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등이 각각 분리돼 제공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유출사태가 벌어져도 위험도는 낮아진다. 하지만 통신 내용에 더해 개인 이용자의 신상정보가 한데 묶여 유출될 경우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로 인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프라이버시권이란 소극적 의미의 사생활 비밀의 보호가 아니라 디지털 분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보호법익으로 인정받아 구체적·직접적인 디지털 기본권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과정에서 조합원 김모씨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통신기록과 위치정보까지 경찰에 수집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헌법소원에 나선 바 있다. “어디에 숨었는지 알아낸답시고 당시 저와 가족들 휴대폰 위치추적은 물론이고 가족들이 인터넷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는지도 다 들여다봤다니까요.” 김씨는 비록 당시에는 감청은 이뤄지지 않아 자신의 행적과 무관한 가족들의 일상적 통화·메시지 내용까지 수집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감청이 보편화되면 수사 대상자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까지 정보침해 위협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이 정보를 수집했다는 걸 안 아들이 ‘스마트폰 GPS 기능은 끄고 다닌다’고 한 얘기를 듣고는 이런 나라에서 살게 한다는 게 미칠 것같이 괴롭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현행 통비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통신제한조치 건수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파악되지 않는 감청건수까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개정안에서 설치하기로 한 감시위원회의 경우 긴급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법원의 허가 없이 실시되는 통신제한조치에 대해서는 파악·감독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6시간까지는 법원의 영장 없이도 가능한 ‘긴급통신제한조치’나 대통령의 사후 승인만 받으면 되는 해외 통신에 대한 감청에 대해서는 향후로도 엄격한 통제가 이뤄질 근거 자체가 없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에서 통신비밀을 수집하는 범위를 SNS로까지 확대한 것은 정보수사기관의 감청을 지원하는 새누리당의 일관된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번 19대 국화에서는 이미 2013년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수사기관의 감청을 보다 쉽게 허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이번 개정안에서 감청의 범위와 민간 사업자의 의무까지 포함시키는 ‘업데이트판’ 개정안이 나온 것이다.

해외 SNS서비스로 이탈 사태 가능성특히 여기에는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감청 불응사태 때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감청의 법적·기술적 정의를 두고 현행 통비법에 의문을 제기한 내용이 반영돼 있다. 당시 다음카카오 측은 “통비법상 감청은 송신 또는 수신 중인 전기통신 행위가 대상이므로 송·수신이 완료돼 보관 중인 내용을 청취하거나 읽는 행위는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12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카톡 내용을 모아서 제공하는 것은 ‘실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감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감청 영장에 응할 수 없다는 논리로 대응했던 것이다.

통신사업자의 사업장에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면 이런 논란을 비켜갈 수 있다. 그러나 법안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카톡’을 포함해 실시간 의사소통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는 국내 SNS 서비스업체 대부분이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이용자들이 ‘텔레그램’ 등 해외 기반 SNS 서비스로 또다시 이탈하는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박민식 의원은 일반시민 10명 중 6명은 휴대전화 감청이 ‘범죄자 검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합법적인 감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민식 의원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5월 16·17일 양일에 걸쳐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법원이 허가하면 통신업체가 휴대전화 감청에 협조해야 한다는 응답은 60.1%로, 협조가 불필요하다는 의견 27.2%보다 높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여론조사에서 휴대전화 감청을 실제 실시하는 것에 대한 물음에는 반대한다는 응답이 42.4%로, 찬성 41.1%에 비해 근소하게 높았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실제 실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는 결과가 나온 것은, 설문 응답을 종합해보면 결국 불법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며 “범죄가 나날이 지능화되고 수법 또한 고도화되면서 이제 대다수 국민들도 휴대전화 감청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여당의 ‘감청 확대’ 개정안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정반대 입장의 개정안을 내며 맞서고 있다. 현행대로는 영장 없이도 제공받을 수 있는 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도 보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제공받도록 해 정부기관의 개인정보 오·남용을 차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송호창 새정치연합 의원은 메시지와 대화 내용에 대한 감청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한편, 통신사실 확인자료에 포괄적으로 담겨 있는 개인의 위치정보까지 별도로 관리해 유출될 경우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전해철 의원도 내사단계에서는 감청을 제한하는 등 정보·수사기관에서 관행적으로 남발되어 온 통신제한조치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도 통비법의 개정 방향은 정부기관의 개인정보 접근을 보다 엄격하게 통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성기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주의가 굉장히 미흡한데, 통신자료 요청제도를 영장주의의 예외로 설정할 이유가 없다”면서 “감청은 통신비밀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은밀성과 계속성, 침해 대상의 광범위성이라는 특징이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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