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판 금수저·은수저?..로펌·대기업행 '고관대작 자녀' 명단 돈다

2015. 6. 2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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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로스쿨 도입 7년

③ 혼돈의 법조인 시장

△△△ 전 국정원장 아들: 서울대 로스쿨-김앤장.

○○○ 법원장 딸: 서울대 로스쿨-법무법인 태평양.

◇◇◇ 국회의원 아들: 충남대 로스쿨-판사 임용.

2년여 전부터 법조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로스쿨 '고관대작 자녀 명단'의 일부 대목이다. 이 명단은 법조계·정계·경제계·학계 유력 인사 자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거쳐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 법무법인(로펌), 대기업에 채용된 현황을 담은 것이다. 초판은 시간이 갈수록 '업데이트'되어 지금은 등장인물이 100명을 훌쩍 넘는다. 최초 작성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력 인사 자녀가 부모의 '배경'에 힘입어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 로펌에 취업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리스트다.

사법시험은 제아무리 '배경'이 좋아도 실력이 없으면 통과하기 어려운 반면, 로스쿨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아 유력자들 자녀가 손쉽게 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다. 게다가 로스쿨 출신은 사법시험과 달리 변호사시험 점수나 등수가 공개되지 않는다. 여기에 연줄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 현실에서 로펌과 법원·검찰이 로스쿨 출신의 채용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대물림 법조인' 부쩍 늘어나법원장에 국회의원, 기업대표…'배경 화려한' 집안 자녀들 즐비채용 방식 불투명 탓 논란 키워'로펌·대기업 채용된 유력인사 자녀' 명단 나돌기도

■ 집안 배경이 자리 결정?

'고관대작 자녀 명단'에는 유력 법조인 상당수가 올라 있다. 고위 법관을 지낸 ㅁ씨의 딸은 고려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법원 재판연구원(로클러크)으로 일하다 최근 판사로 임용됐고, 그의 아들도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해 로펌업계 1위인 김앤장에 들어갔다. 한 여당 정치인의 아들은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대형 로펌을 거쳐 검사가 돼 있다.

현직 법원장 ㄱ씨의 아들은 로스쿨 1년차에 5대 로펌 중 한 곳에 입사가 확정됐다. 전직 고등법원장 ㅂ씨의 아들은 지방대 로스쿨을 나와 지역인재 할당제로 대형 로펌에 입사했다. 검사장 출신 ㅁ씨의 딸은 연세대 로스쿨 졸업 뒤 아버지의 후배가 법무담당 임원으로 있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법조계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그 명단에 있는 100여명을 전부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상당 부분 맞는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대형 로펌이 로스쿨에 재학 중인 유력 인사 자녀를 '입도선매'했다가 당사자가 정작 변호사시험에 낙방하는 바람에 입사가 불발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전직 경찰 총수의 딸은 대형 로펌에 가기로 '예약'돼 있었지만 지난해 변호사시험에서 떨어졌고, 올해는 국립대 총장 딸이 같은 로펌에 채용되기로 한 상태에서 변호사시험에서 탈락해 결국 없던 일이 됐다는 내용이다.

드문 일이지만, 고려대·경희대 등 유명 사립대 로스쿨 교수의 자녀가 같은 로스쿨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어 전공·스승·부모가 같다는 뜻으로 '로(Law·법)사부일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같은 학교에 입학한 딸과 함께 손해배상 관련 판례를 분석한 논문을 공동 발표하기도 했다.

■ 왜 로스쿨 출신에만 의구심·불만?

법조인 대물림 현상은 2000년대 들어 강화되고 있다. 서울대 이재협·이준웅·황현정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 논문을 보면, 2009~2011년 로스쿨 입학생(1~3기) 가운데 부모가 법조인인 사람은 3.6%다. 사법연수원 34기(2002년 사법시험 합격) 이전 법조인 가운데 부모가 법조인인 경우(1.6%)에 견주어 갑절 이상 높다. 하지만 로스쿨 1~3기와 같은 시기에 사법시험을 거쳐 연수원에 다닌 법조인(연수원 40~43기) 가운데 이런 사람의 비율은 4.7%로, 로스쿨 출신보다 오히려 높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계층 이동이 줄면서 고소득 전문직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계층과 직업을 대물림하는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대물림 법조인'에 대한 불만과 의구심이 로스쿨에 집중되는 까닭은 사시와 뚜렷이 대조되는 '잣대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사법시험에서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해 유력 인사 자녀가 법조인이 되더라도 쉽게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문턱의 높이'가 공개되지 않는 로스쿨 출신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대고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유력자 자녀가 일단 로스쿨에 입학한 뒤 사법시험보다 합격 가능성이 높은 변호사시험만 통과하면 집안 배경 등 무형의 자본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할 여지가 더 크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런 불만과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로스쿨 도입과 더불어 해마다 법조인이 2000명가량씩 배출되며 변호사들의 취업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집안 배경이 좋은 이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고검장 출신의 한 중소 로펌 대표는 "취업 부탁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양복 안주머니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추천서를 다섯통 이상씩 가지고 있다. 얼마 전에도 친한 친구가 (자녀 취업을) 부탁했는데, 들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 그냥 가지고만 있다"고 했다.

유력인사 자녀, 로스쿨→판검사·로펌행…'현대판 음서제' 논란

법조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변론 능력보다 사건 유치 능력, 즉 '영업력'의 중요성도 커졌다. 평소 사건을 맡기는 빈도가 높은 대기업 쪽에서 취업 청탁을 하면 로펌으로서는 무시하기 어렵다.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관계 고위직들의 청탁도 마찬가지다. 법조계에서는 "(취업 청탁이 워낙 많아) 대형 로펌에 부탁하려면 국회의원도 초·재선 정도로는 어렵고, 3선 이상 중진급이거나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도는 돼야 말발이 먹힌다"는 말까지 돌 정도다.

이렇다 보니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저 친구는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데 상위권 로펌에 들어간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식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로펌의 변호사시장 비중이 높아져 개업 변호사 1만60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단독개업을 하지 않고 로펌에서 일하는 상황이어서 이런 불만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일부 사법시험 출신 새내기 변호사들도 로펌이 '신분 차별'을 한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대기업 등에서도 '정실 채용'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혹과 불만을 사는 쪽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관대작 자녀 명단'에는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과 국장 출신 인사 자녀가 로스쿨을 거쳐 감사원에 취업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최근 이 대목이 논란이 되자, 이병률 감사원 대변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면접위원 절반이 외부인이고, 이들에게 지원자의 출신 배경이나 가족은 알려주지 않는다. 특혜 채용도 아니고 단순히 입사한 것을 가지고 문제 삼는 건 억울하다. 고위직 자녀는 로스쿨 가면 안 되고, 감사원 고위직 출신 자녀는 감사원 지원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그는 "예전 사법시험 출신들은 5급(사무관)으로 들어왔지만, 요즘 로스쿨 출신들은 6급으로 임용된다"고 덧붙였다.

리스트에 오른 다수는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위권 로스쿨 출신들이다. '빽'만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로펌 등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있다.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 안돼추천서·출신대학 등으로 평가집안 배경 좋으면 로펌 입사 가능성채용단계 불투명성이 의혹 키워'성적 공개해 지표 활용' 주장 커져"로펌이 다양성 키워야" 제안도

■ "실력대로 평가받는 시스템 돼야"

'세습'과 관련한 의구심과 분란을 잉태한 큰 원인은 '로스쿨 입학-변호사시험-채용'으로 이어지는 각 단계마다 빠지지 않는 '불투명성'에 있다. 특히 변호사시험 성적 비공개가 논란을 부르는 '주범'이다.

기존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시스템에서는 법원, 검찰, 로펌이 모두 사법시험과 연수원 등수를 거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신규 인력을 뽑았다. '몇 등까지는 법원, 몇 등까지는 검찰' 식으로 등수에 따라 가는 직역이 뚜렷이 갈렸다. 로펌들도 마찬가지로 '몇 등 안에 들어야 어디를 갈 수 있다'는 식으로 '투명한' 채용이 이뤄지는 편이었다. 동기생들끼리는 누가 몇 등을 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로스쿨을 도입할 때도 정부는 애초 변호사시험 성적을 당사자들에게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었다. 하지만 성적이 공개되면 성적에만 혈안이 돼 다양한 분야의 전문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 교육의 취지가 퇴색할 것이라는 로스쿨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비공개로 바꿨다. 결국 응시자의 객관적 실력을 검증할 기준이 없게 된 로펌 등은 학벌이나 추천자료 등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개인별 성적으로 줄을 세우지 않는 대신 로스쿨 간 서열을 따지고 이를 고착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9월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는 내용의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안 검토 의견서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형태의 신사법시험을 운영하는 일본은 성적과 등수를 서면으로 통지한다. 모든 로스쿨에 공통된 객관적 평가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성적 비공개가 애초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객관적 평가를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으므로 성적을 공개해 채용 과정에서 객관적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로스쿨 도입으로 판검사 임용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에는 학생운동 경력이 있어도 사법시험 성적만 되면 판검사로 임용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법원·검찰이 2~3배수를 추린 뒤 정성평가를 통해 정치적 성향을 걸러낼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논문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시론'에서 "로펌이 내부 구성원의 다원성을 확보하고 차별적 요인을 해소하는 것은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이라며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기업 채용에서 다문화가정 출신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대학 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을 하는 것처럼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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