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메르스는 중동식 독감, 손 씻으면 된다"더니..대통령 방문한 정부청사는 '철통 방역'

배문규·조형국 기자 입력 2015. 6. 17. 15:47 수정 2015. 6. 17. 16: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정부청사에서 철저한 ‘방역 의전’이 이뤄진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독감’으로 지칭하며 과도한 공포증을 비판해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메르스라는게 중동식 독감이라 할 수 있다”면서 “메르스 같은 것은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세종시 보건복지부 중앙 중동호흡기증후군 관리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지난 5일부터 메르스 대응 행보에 나선 박 대통령이 핵심 대응기관인 관리대책본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메르스 관련 정보를 신속하고도 투명하게 공개해 모든 국민에게 알려 드림으로써 정부 방역대책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서 “메르스 종식까지 굳건한 사명감으로 흔들림 없이 대응해 달라”고 말했다.

의전 당국은 이날 오전부터 부산했다. 보건복지부 청사에는 흰색 방호복을 입은 방역요원 7명이 청사 곳곳에 자몽추출물로 만든 천연 소독약을 뿌리고 다녔다. 오후 1시15분쯤 대책본부가 있는 5층에서도 소독약통을 둘러멘 방역요원 2명이 장관실과 회의실을 돌며 소독했다. 청소노동자 3명도 40여개 문손잡이·바닥·엘리베이터 버튼과 문을 일일이 소독약을 뿌리며 닦아냈다.

17일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에서 방역요원들이 메르스 예방을 위해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 조형국 기자

이날 방역에 참여한 관계자는 “VIP(대통령)가 오신다고 해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 손잡이는 며칠 전부터 하루 3~4차례씩 수시로 닦고 있다. 천연 소독약이라 안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6일 메르스 확산으로 휴업했다가 수업을 재개한 학교들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부분 폐쇄된 삼성서울병원과 800여m 떨어진 강남구 대모초등학교에서 “메르스는 ‘중동식 독감’이라 할 수 있다”면서 “매년 연례행사같이 독감이 퍼지는데 이번이 우리로서는 처음 겪는 것이라 혼란스러웠다”고 밝혔다. 이어 “손씻기라든가 몇 가지 건강습관만 잘 실천하면 메르스 같은 것은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인근 대모초등학교를 방문해 메르스 예방교육을 참관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박 대통령 학교 방문은 ‘일상 복귀’를 강조했던 전날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전날 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일상생활과 기업의 경영활동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불안심리 차단을 강조했다.(▶박 대통령, 연일 ‘일상 복귀’ 강조 행보)

청와대는 이전에도 ‘메르스 철통 예방’에 나서 논란이 됐다. 청와대는 지난 4일 한·세네갈 정상회담 때 본관 출입구에 열영상감지기를 설치해놓고 출입자들의 체온검사를 실시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부는 메르스 전파경로가 ‘의료기관 내 감염’이라며 “필요 이상 동요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니 자신들 안전에는 신경을 쓰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한시적 운용이었다”고 해명했다.(▶국민엔 동요 말라더니…청와대 ‘메르스 철통 예방’)

정부 부처도 박 대통령의 ‘메르스 불안’ 극복 의지에 맞춘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문화체육부는 지난 15일 발표한 ‘메르스 관련 관광업계 지원 및 대응 방안’에서 메르스에 감염되면 보상금 명목으로 3000달러를 지급하고, 사망시엔 최대 1억원을 보상하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발표 전날인 14일에는 마스크 없이 동대문 패션 상점가를 찾았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모험관광을 모집하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와 청와대의 ‘일상 복귀 메시지’에 대해 사망자 증가 등 메르스로 인한 혼란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태 초기 정부가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환자 발생 병원 등 기본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아 집단적 불안감을 낳았다. 시민 두려움의 주요인이 정부인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 설문조사에서도 메르스 관련 정보가 신속·투명하게 공개되는지 묻자 응답자의 88.6%가 ‘잘 안되고 있다’ ‘미흡하다’ 등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부의 메르스 대책에 대해서도 68.8%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초기대처 실패를 사과하지도 않은 대통령이 먼저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책임회피이자 비과학적 ‘정신승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설]박 대통령, 일상 복귀론 펼 때 아니다)

<배문규·조형국 기자 sobbel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