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은 글로벌 호구?

천관율·전혜원 기자 입력 2015. 6. 17. 12:21 수정 2015. 6. 1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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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이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박근혜 대통령은 중동 순방을 다녀온 후인 3월19일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런 말을 한다. 고질적인 청년실업 문제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자는 얘기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된 청년노동 수출국이다. 그것도 최저시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법 노동시장으로 한 해 3만명 안팎을 밀어낸다. 이 기묘한 청년노동 수출산업은 몇 가지 요소가 맞물리며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청년노동 수출산업의 공식 명칭은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이고, 독보적인 수입국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다. 한 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출국하는 4만명 중 3만명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간다(<표 1>과 아래 상자 기사 참조).

정의당 청년위원회는 5월8일부터 17일까지 전·현직 워홀러(워킹홀리데이 경험자) 100명을 발굴해 면접 조사했다. 6월8일 발표를 앞두고 <시사IN>이 조사 결과를 먼저 받아보았다. 이 조사에서는 100명 중 61명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다녀왔다. 이 가운데 72.1%인 44명이 최저시급 위반,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워홀러 61명 중 한국 교민 업소에서 일한 사람은 35명, 현지인 업소에서 일한 사람은 31명이다(양쪽 모두 경험한 사람이 5명 있다). 그런데 교민 업소에서는 35명 중 28명이 최저시급 미만을 받고 일했다(80%). 현지인 업소에서는 31명 중 8명이 최저시급 미만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25.8%). 현지인 업소의 법 위반 수준도 간단치 않지만, 교민 업소는 최저시급 제도 자체가 무시되는 실정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한 노동자는 해당 국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은 마치 노동법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비싼 '사람 값'? 사람 취급 못 받는 외국인

전체 응답자 100명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 외의 국가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사람은 39명이다. 이 중 최저시급 위반을 겪었다고 답한 사람은 단 두 명이다. 각각 프랑스와 독일에서 겪었다. 비율로 보면 5.1%다(<표 2> 참조).

조사를 총괄한 강현욱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부위원장은 '대한민국 청년이 이제는 '글로벌 열정페이'까지 강요받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라던 박근혜 정부는 현지 실태조사, 교육의 제도화, 전문 노동 상담채널 운영 등을 할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진아씨(당시 25세)는 오스트레일리아 워홀러였다. 몇 달 일하면 영어도 늘고 모은 돈으로 여행도 다닐 수 있다는 광고에 끌렸다. '워킹홀리데이 제도는 놀고픈 마음이 반, 취업 불안이 반인 나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 같았다.' 서른 살이 된 정씨는 당시 기록해뒀던 일기를 모아 책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를 썼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간 그녀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의 글로벌 우정도, 남반구의 이국적인 풍경도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외국인들이 떠받치는 거대한 불법 저임금 노동시장이었다. 노동력이 부족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사람 값'이 비싸기로 손에 꼽히는 나라다. 2015년 최저시급은 16.87오스트레일리아 달러(약 1만4500원. 6월4일 현재 1오스트레일리아 달러는 약 860원이다. 이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를 '달러'로 표기한다). 한국의 2.5배가 넘는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워홀러 중에 많은 수가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한다. 그녀가 겪은 한국인 워홀러의 '시세'는 10달러 안팎이었다.

한국인 워홀러를 최저시급 아래로 부리는 고용주 대부분은 현지인이 아니라 한국인 교민이었다. 최저시급 위반도, 임금 체불도, '디포짓(Deposit:보증금)'이라며 임금을 묶어두는 관행도, 부당 해고도, 성희롱도 한국인 사업장에서 훨씬 자주 겪거나 목격했다.

그녀의 첫 면접은 교민이 운영하는 주스 가게였다. 두 명을 뽑는 공고에 60명이 몰렸다. 첫 직장은 교민이 운영하는 중식당이었는데, 시급이 9달러였지만 '물도 마실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었다'. 물은 판매용이라며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혼자 카운터를 봐야 해서 근무시간 내내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사업장을 여럿 겪고 나서야 그녀는 그게 왜 장점인지 깨달았다. 샌드위치 가게에서는 시급 9달러를 받았는데, 그나마 첫 두 주는 수습 기간이라며 5달러를 주었다. 최저시급의 3분의 1 정도다. 역시 불법이다.

대학생 박중언씨는 현재 '워홀 프렌즈'로 활동하고 있다. 워홀 프렌즈는 외교부 산하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이하 인포센터)가 주관하는 서포터 그룹이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경험자들이 후배 지원자에게 정보와 교육을 제공한다. 그래서 이 워홀 프렌즈 지원자나 구성원들은 거의 대부분 워킹홀리데이를 성공적으로 보낸 이들이다. 박씨도 그랬다.

그런 그에게도 악몽 같은 순간은 있었다. 시드니에서 청소 일을 할 때다. 그는 처음부터 5주만 일하겠다고 알리고 들어갔다. 4주째 일이 끝나고 다음 주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점주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계약 위반이라고 그를 다그쳤다. 박씨는 결국 5주를 꽉 채워 일하고도 청소업체로부터 1주일치 임금만 받고 나머지를 떼였다. 1600달러나 되는 거금이었다. 그런데 왜 박씨는 단지 퇴사 일자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4주치나 임금을 떼였을까. '디포짓 2주, 노티스 2주. 워홀판에서 통용되는 관례다. 2주치 임금은 보증금으로 떼어놓고(디포짓), 그만둘 때에는 2주 전에 알리도록 한다(노티스).'

업주는 박씨가 '노티스'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기간에 해당하는 2주치 임금을 주지 않았고, 미리 잡아둔 '디포짓'도 지급하지 않았다. 불법이 몇 건인지 세기도 힘든 수준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업주는 '이곳 교민사회가 좁다'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소문이 퍼져서 일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박씨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생각하는 예비 워홀러들이 실행 전에 꼭 인포센터를 찾아서 정확한 정보를 받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금체불은 작은 사안…별도 파악 안 해'

오스트레일리아 워홀러들이 유난히 불법 노동시장에 되풀이해 노출된다는 사실은 다년간 경험자들의 증언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다. 그런데도 왜 이런 기묘한 수출산업이 유지될 수 있을까? '수출'의 첫 단계부터 '수입'의 마지막 단계까지 빈틈없는 컨베이어벨트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번 몸을 실으면 이 나라의 불법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논스톱 서비스가 제공된다.

수출 라인의 첫 공정부터 보자. 5월29일 충북 청주대학교. 인포센터가 여는 설명회 자리다.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설명회를 하면 보통 80여 명이 참석한다. 이날은 평균보다 저조한 40여 명이 설명회를 들었다. 인포센터가 틀어준 동영상 첫머리에 '오스트레일리아 워홀러 사망사고'가 자세히 소개되었다. 범죄와 안전사고는 외교부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문제다. 설명회 내내 안전 문제에 대한 강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곳의 불법 노동시장에 대한 설명은 그리 상세하지 않았다.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는 사업장(최저시급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에서는 일하지 말라고 권고하기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교민 사업장에서 고용계약서를 구경하기 힘들다는 현실은 소개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재외 국민의 살인·강도·강간과 같은 '고강도 위험'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통계가 집계되고 외교부 조직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 노동시장 진입이라는 '저강도 위험'은 관리 의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저강도 위험은 더 만성적이고 구조적이고 예측 가능하지만, 데이터로 잡히지도 조직 평가 기준으로 쓰이지도 않는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워홀러 피해 사례 자료가 있는지 외교부에 문의했다. 외교부는 '임금 체불과 같은 작은 사안에 대해서는 별도로 파악하고 있지 않음'이라고 답했다.

외교부가 운영하는 인포센터는 워킹홀리데이 희망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다. 대부분은 경험자인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직접 정보를 구해서 가는 편이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면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광고하는 유학원 사이트가 주르르 뜬다. 유학원은 이 기묘한 수출산업의 '운송 담당'이다. 어학원 수업과 현지 취업 알선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데, 취업 알선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리를 잡은 교민 브로커가 파트너로 들어간다.

상품 판매가 목적인 유학원은 현지 정보를 현실보다 더 장밋빛으로 광고하는 경향이 있다. <시사IN>이 상담을 받아본 한 유학원은 '필리핀에서 8주 어학연수를 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하면 1~2주 안으로 바로 출근할 수 있게 해드릴 수 있다. 시간당 20달러는 거의 보장이 되고, 25달러를 받는 분들도 있다. 최저시급 이상은 다들 받는다. 일자리는 우리 쪽과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라고 설명했다. 영어가 능통한 워홀러만이 진입 시도가 가능한 공식 노동시장을 기준으로 설명하면서도 '아예 개런티(보장)를 해드립니다'라고 했다.

ⓒKBS 화면 갈무리 단기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 많아 현지인 업주들도 임금을 후려치는 경향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토마토 포장 공장에서 워홀러들이 일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오스트레일리아행 비행기를 탄 워홀러 중 상당수가 공식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교민 사업장에 먼저 자리를 잡는다. 언어가 취약하고 초기 정착금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모험보다 당장 확보 가능한 돈을 택하게 된다. 그래서 워홀러 사이에서도 학력과 자산이 부족할수록 불법 노동시장으로 미끄러져가는 현상이 관찰된다. 정진아씨는 '현지에서 들었던 잊히지 않는 말이, '언니는 왜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다가 이런 데 왔어요?'였다'라고 말했다.

연 3만명씩 오스트레일리아로 쏟아지는 워홀러는 현지 교민 처지에서 보면 '안전한 저임금 노동력'이다. 대부분은 오스트레일리아에 1년 이내로 머물렀다가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러면 현지 노동법을 근거로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박세연씨(가명)는 지난해 남편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워홀러 생활을 했다. 부부는 교민이 운영하는 청소 대행업체에서 일했는데, 실질적으로는 회사가 아니라 매니저와 계약을 맺고 일했다. 대형마트나 공장 등 청소 일을 맡기는 업체는 현지 노동법에 맞는 임금을 준다. 이 돈이 대행사와 매니저 등 몇 단계를 거치면 박씨 부부에게는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임금이 떨어진다. 이 다단계 구조를 교민들이 틀어쥐고 있다. 돈은 '사업권'을 확보한 교민이 벌고 노동은 몇 달마다 물갈이되는 워홀러가 하는 구조다.

박씨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노동분쟁을 상담하는 현지 기관인 '페어워크'를 통해 불법 노동을 고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페어워크가 한국어 통역을 제공은 한다. 그런데 전화해서 통역을 요청하면 10분씩 대기하다가 연결이 안 되고 10분 대기하다 끊기고…. 이걸 몇 번을 하다 보니 결국 상담도 못하고 귀국했다. 그만큼 한국인 노동분쟁이 많구나 싶었다.'

대학생 김창래씨는 브리즈번의 닭고기 체인점 'NANDO-S'에서 일했다. 급여명세서에는 23달러가 찍혀 나왔지만 실제 시급은 15달러였다. 그런데 이 가게는 이른바 '오지잡(Ausie Job)'으로 불리는 현지인 가게였다. 단기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 워낙 많다 보니 현지인 업주들도 임금 후려치기에 물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조성혁 제공 워킹홀리데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높은 최저시급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비공식 노동시장이 된다. 위는 한 농장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양털 깎기 작업 중인 워홀러.

차이는 있다. 현지인 업주는 그곳의 분쟁조정 절차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창래씨는 페어워크 신고를 통해 2000달러쯤 되는 체불임금을 받아냈다. '아무래도 워홀러는 1년쯤 머무르다 귀국을 하기 때문에 법적 절차가 길어지면 감당하기 힘들다. 교민 업주들은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더 강경하게 나가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창래씨도 귀국 후에 워홀 프렌즈 멤버로 활동 중이다. 그는 설명회 때마다 노동 문제를 강조한다.

교민들 사이에서는 최저시급을 안 지키는 것이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고 워홀러 출신들은 입을 모았다. '호주나라'는 교민과 유학생, 워홀러 등 오스트레일리아 현지의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형 커뮤니티다. 이곳 게시판에서는 최저시급을 둘러싼 워홀러와 교민 업주의 다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교민 업주의 주장을 잘 대변해 추천을 받은 한 게시글의 몇몇 대목을 가져오면 이렇다.

'워홀들, 정말 여러분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정한 합당한 시급에 맞는 인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워홀러가 이 나라 사람보다 낮은 시급을 받아야 되냐 하면,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짧고, 영어가 현지인 상대로 100%가 아니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경력도 없습니다.'

'현지인 밑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고 싶지만 이러저러한 요건에 밀려서 한낱 꿈에 불과하겠죠. 워홀들은 7달러면 어떻고 10달러면 어떠냐며 열심히 '한인 잡'을 구합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인간인지라 더 욕심이 나겠죠. 그러니 사장 앞에서는 찍소리 않지만, 뒤에서는 이렇게 오스트레일리아 커뮤니티에서 한인 악덕 사장 욕하며 뒤통수칠 생각만 하고 뒷담화나 즐기겠죠.'

'당신들이 자꾸 한인 악덕 업주들을 욕하는데 그래도 그들은 당신들이 밥 먹고 살 수 있게 당신들 밥그릇에 밥을 넣어주는 사람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당신들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데 말이죠.'

'이렇게 분위기 조장해서 정말로 워홀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규정한 시급을 줘야 하는 날이 온다면 한인 잡에도 현지인들이 어마어마하게 이력서 넣을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인 워홀 당신들이 설 자리는 아예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연합뉴스 5월1일 시드니에서 열린 '꿈꾸는 워홀러 캠프'에서 경찰이 비상시 대처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위 글들은 최저시급이 법적 하한선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교민 사회 특유의 박제된 권위주의를 드러내며, 고용계약 관계와 가부장적 시혜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다가, 기묘하게 뒤틀린 인종주의까지 여러 면모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워홀러들이 증언하는 교민 업주들의 사고방식이 대체로 이렇다.

2009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다녀왔던 정의당 당직자 정해윤씨(34)는 '우리야 뭐 소모품 세대니까요. 여기(한국) 있으나 거기 가나 갑질을 당하는 건 마찬가지고…'라고 말했다. 이 기묘한 수출산업은 만성적 공급 과잉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고용주 절대우위의 불법 노동시장을 만들어냈다.

정부·유학원·브로커·현지 교민이 한통속?

한쪽 끝에 만성적 구직난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청년 밀어내기'가 있다면, 반대쪽 끝에는 노동력 부족 국가의 강력한 '수입 정책'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어권 국가로는 이례적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 쿼터가 무제한이다. 영어 능력도 사실상 요구하지 않는다. 몇 가지 객관식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다양한 국가에서 단기 저임금 노동자들을 수입하는 오스트레일리아는 높은 최저시급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비공식 노동시장을 사실상 키워낸다. 많은 한국인 워홀러들은 교민 업주로부터 '중국이나 동남아 쪽은 시급이 6~7달러밖에 안 된다더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러 나라의 이주노동자 블록은 서로를 보며 '저들보다는 낫다'고 위안을 삼는다. 현지 관리자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아예 국적·인종 차이를 적극 이용해 노동 규율을 잡기도 한다. 정진아씨는 귀국 직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토마토 농장에서 일했다. 이 농장에는 한국인 워홀러 그룹과 네팔의 밀입국 노동자 그룹이 있었다. 농장 관리인 에즈마(오스트레일리아인)는 성과에 따른 것이라며 한쪽 그룹에만 일하기 편하고 소출이 좋은 밭을 배치하는 식으로 두 외국인 노동자 그룹을 경쟁시켰다. 외국인 노동자끼리의 적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현지인 농장주는 이익을 챙겼다.

일련의 저임금 노동력 공급은 현지의 서비스 가격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한국 교민이 주로 종사하는 청소업, 요식업 등의 서비스 가격을 낮게 묶어둘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민은 더 적은 돈으로도 높은 구매력을 누리게 된다. 공식 노동시장에서는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하면서 비공식 저임금 노동시장을 사실상 방조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도 익숙히 보아온 방식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한국 청년이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의 한 축을 맡는다. <시사IN>은 한국인 워홀러가 현지에서 겪는 불법 노동시장의 현황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대응책을 묻는 질문지를 5월29일 주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에 보냈다. 대사관은 6월5일 현재까지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해마다 3만명에 달하는 이 기묘한 수출산업의 고리가 완성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만성적 일자리 부족, 습관적인 해외 활동 요구, 영어강박증 등을 동원해 청년 세대를 밖으로 밀어낸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비공식 노동시장의 문호를 개방해 본국 출신 업주들이 이 단기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서비스 가격을 낮게 유지한다. 거대한 수요와 공급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정부·유학원·브로커·현지 교민으로 촘촘히 이어지는 컨베이어벨트다.

워킹홀리데이란?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관광취업비자'다. 이 비자를 받으면 현지에서 관광 경비 조달을 위해 합법적으로 임시 취업을 할 수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젊은이들도 일을 해가며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제도다. 만 30세까지로 연령 제한이 있다. 한국은 1995년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워킹홀리데이 협정 체결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이 제도를 운영했다. 현재 20개국과 협정을 맺었다.

특 례 성격이 있어서 모집 인원 쿼터 제한이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다만 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덴마크·칠레는 인원 제한이 없다. 이 중에서도 교류 역사가 오래되어 관련 정보가 많고, 비자 발급이 특히 간편하며, 영어를 쓰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지원자들이 대거 몰린다. 2013년에는 전체 워홀러 4만6757명 중 3만3284명이 오스트레일리아행을 택했다(71.2%).

천관율·전혜원 기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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