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명문학력에 목매는 한국 사회의 허언증

CBS 박재홍의 뉴스쇼 2015. 6. 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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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고품격 뉴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CBS <박재홍의 뉴스쇼> '변상욱 기자수첩'에서는 사회 현상들의 이면과 서로 얽힌 매듭을 변상욱 대기자가 풀어낸다. [편집자 주]

◇ 리플리 증후군을 통해 본 미국 학력 위조와 사대주의

미국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 동시 입학했다던 학생의 인터뷰가 허위로 밝혀지면서 지난 주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해당 학생의 아버지가 언론을 통해 사과하고 어린 학생의 허언증 내지는 리플리 증후군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 이를 부정하면서 상습적인 거짓말을 이어가다 스스로도 거짓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심리현상)으로 여기고 이쯤에서 소동은 잦아들 듯하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런 허언증을 유발시킨 구조는 분명 뿌리 깊은 우리의 학벌주의와 미국을 향한 사대주의이다. 또 그것이 이미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배어 있는 것도 반성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범람과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과 '성공'이라는 두 우상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 미국에 가서 성공한다는 우상 偶像에 대하여

물론 이런 일은 미국에서도 벌어진다. 최근 미국 명문대학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입학처장이 28년간 자신의 학력을 위조해 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매릴리 존스라는 이 주인공은 28년 전 이력서에 뉴욕의 올바니 의대와 렌슬러 공대, 유니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어느 대학에서도 학사 학위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일로 인해 미국은 기업이나 기관 입사지원자들의 이력사항을 조사하는 기관 '검증 및 채용서비스' 회사들이 여럿 성업 중이다.

또 미국의 대학 체계를 우리 것에 단순 대입시켜 판단하는 학부모들의 단순함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명문 주립대가 있고 명문 사립대가 있다. 명문 사립대의 동부 명문이 아이비리그이고, 시카고 대학 같은 서부 명문들이 따로 있다. 교양학부 대학으로서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도 있고, 작은 단과대학 수준이지만 누가 뭐래도 미국 최고 수준이라 꼽는 하비머드 같은 대학들도 존재한다. 학부모, 학원은 물론 언론마저 상식에 속하는 미국 대학 풍토를 확인하지도 않고 미 대학 학벌에 성공신화만 부풀리는 태도는 바로 잡아야 한다.

미국 대학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위조학력 내지는 과대포장 사건은 최근에도 여럿이다. 가장 알려진 사건은 위조된 거짓 미국 대학 학위로 동국대 교수까지 지낸 신정아 씨 사건이다. 신 씨는 스스로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미국 캔자스 대학에서 학사, 경영학 석사, 다시 예일대 대학원 입학 등등의 숱한 거짓 학력을 뿌리고 다녔다. 이후 정치권의 실세와 얽힌 스캔들까지 벌어지면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사건은 "7막 7장 그리고 그 후,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라는 책으로 유명한 홍정욱 전 의원 사건도 있다. 흔히 미 하버드 대학 수석졸업이라고 알려져 그의 책은 엄청나게 팔렸고 그의 성공담은 미국 조기유학 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미국에는 대학 수석졸업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훗날 정정되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사진=플리커 제공)
미국 대학의 졸업은 등수가 아니라 등급만 부여되며, 1등급이 '숨마 쿰 라우데' (summa cum laude), 그 다음은 '마그나 쿰 라우데' (magna cum laude)로 나뉘어 우수 학생 그룹에게 주어진다. 홍 전 의원은 하버드 대학과 관련된 경력을 국회의원 선거공보물에 기재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간추리자면 논문은 최우수사회과학논문 상을 받았고 졸업성적은 최우등이 아닌 우등 졸업 마그나 쿰 라우데이며, 최우수졸업논문상인 토마스 훕스상 본상에서는 탈락해 '토마스 훕스 아너러블 멘션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최우수논문상 토마스 훕스상을 받은 것처럼 기록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 된 것이다. 대상이 아니고 장려상인데 대상 수상이라고 기록한 셈이다. 홍보담당자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적어도 정치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자기를 둘러싼 뻔한 허위과장은 거절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국민은 원하고 있다.

◇ 메르스엔 놀라도 지도자 허언증엔 무덤덤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사람이 학력이나 경력에서 거짓이 드러나거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할 경우 벌어지는 일은 때로 국가 전체에 여파를 미친다.

지난 주 (6월 11일) 인도 델리 주 법무장관은 학력 위조 혐의로 구속됐다. 지텐드라 싱 토마르라는 델리 주 법무장관은 동부 비하르 주 티카 만지 바갈푸르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고 주장했으나 가짜 졸업장이어서 문서위조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본인은 주 법무장관을 사임하겠다고 밝힌 상태. 그는 부패척결을 내세운 보통사람당 소속이어서 소속 당의 부패척결 구호가 무색해지고 있다.

역시 지난 주 (6월 12일)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중간에 위치한 작은 나라 몰도바의 키릴 가부리치 총리도 학력위조 문제로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언론이 가부리치 총리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대학 졸업장은 위조라고 보도하면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총리가 사직서를 내고 대통령이 수리하면 내각책임제이기에 전체 내각이 함께 사퇴하게 된다. 가부리치 총리는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정치쇄신을 부르짖어 왔는데 이에 반발하는 정치권 일부가 총리의 약점인 학력위조를 들고 나온 것. 온 국민이 부패척결을 원하고는 있지만 학력위조라는 결점을 눈 감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청문회에 오르는 총리 후보마다 여러 흠결과 의혹과 위조로 가득 찬 우리의 시대상은 참으로 위태롭다. 메르스에는 놀라도 이제는 총리, 장관 후보의 웬만한 흠결과 의혹에는 놀라지조차 않는 우리의 현실은 이 나라 전체가 허언증에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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