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경제난 '이중고'인데 '대통령 인기' 강조한 청와대

안종주 2015. 6. 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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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국민 비하, 대통령 찬양'에 목매는 정치인들, 제 정신인가

[오마이뉴스 안종주 기자]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 재난 때는 정치인이나 지도자라면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평범한 진리다. 한데 이런 평범한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나 대통령의 입, 국무총리 대행직을 수행하는 정치인과 지도자가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직무 수행과 미래의 꿈을 꿀 자격이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메르스는 분명 국가재난이다. 단순한 위험(risk)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을 정부가 키웠다. 여기에 삼성서울병원이 도우미 구실을 톡톡히 했다. 메르스 확산에 삼성서울병원이 큰 기여를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책임이 크다. 방역 의지와 능력이 모자라는 곳에 정부가 전권을 주고 관리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김문수 전 지사, 세월호 악몽 벌써 잊었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2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대학교에서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먼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야기부터 해보자. 그는 지난 12일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기 위해 경남 창원에 있는 마산대학교에 갔다. 특강을 하면서 원자폭탄과 메르스를 비교했다.

"메르스가 '중동 낙타 독감'인데 이것 때문에 난리다. 그런데 원자폭탄은 아무도 겁을 안 내 희한하다. 미국 소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데모하고 난리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미국 소고기 먹고 광우병 걸리고 배탈 난 사람 손 들어보라. 없잖아. 대한민국 사람 웃기다"고 말했다. 감염병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국민을 비하한 것이다.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위험 또는 위기와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위험 간 직접 비교이다. 세월호 사망자 수와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 비교나 광우병 쇠고기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의 정도와 길 가다 벼락 맞아 죽을 위험 정도를 비교하는 것 말이다. 

위험(위기) 소통 교과서에는 이런 식의 비교는 대중의 위험 인지를 바꾸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분노만 더 부채질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도 이런 지적을 줄기차게 해도 마이동풍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김문수 전 지사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나자 진도로 내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자조하며 '밤'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당시 그 내용과 시기 때문에 호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어린 자식/바다에/뱃속에/갇혀 있는데/부모님들 울부짖는 밤/괴로운 밤/불신의 밤/비까지 내려/속수무책 밤/긴긴 밤/괴로운 밤" 자신의 심정을 이런 시로 달랠 수는 있겠지만 그 때 그런 내용으로 비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느냐는 것이다.

김문수 전 지사는 1년 만에 옐로카드를 두 장씩 받게 된 셈이다. 축구에서 옐로카드를 연속해서 두 장 받으면 즉각 퇴장이다. 하지만 정치는 축구가 아니다. 그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축구경기처럼 바로 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는 그에게 레드카드를 줄 수 있다.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판정을 내릴지 궁금하다.

대통령 비위 맞추는 대변인, 대통령 욕먹게 한 대변인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서 비난이나 비판을 받고 있는 최고책임자를 돋보이게 하려고 사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것도 위기(위험) 소통에서 금기사항이다. 이미지 개선이나 인기가 올라가는 플러스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나타난다.

그런데도 참모진은 늘 그런 유혹에 시달린다. 비위 맞추기식 발언은 국민을 열 받게 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이야기다.

민경욱 대변인은 14일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대문 상가를 방문한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박 대통령의 인기가 대단히 높다고 장황하게 강조하는 '사오정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지금이 과연 '대통령 인기 운운'할 때인가. 국민과 의료인 등이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이 시점에 말이다.

민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에서 "오늘 방문한 밀리오레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파이팅,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라고 밝혔다. 

그는 또 "시민들은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응원을 해 주었으며, 많은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기다렸다"면서 "시민들은 연신 휴대전화 셔터를 눌러대며 촬영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대통령을 보여주기 위해 안거나 목마를 태우기도 함. 사진 촬영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뻐하기도…"라고 덧붙였다. 

이어 "건물을 나오는 길에 도로 맞은편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고, 일부는 환호와 함께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를 본 대통령이 차에 바로 타지 않고, 길을 건너 기다리던 시민들과 반갑게 악수했다. 길을 건너면서 2층 카페에 있던 젊은 여성들이 손을 흔들자 잠깐 발길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셨다"라고 전했다.

'김정은 찬양' 북한 방송과 뭐가 다르지? 

어느 나라 어느 때고 간에 국가 최고지도자가 가는 곳에서 으레 벌어지는 광경을 두고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진 듯 서면브리핑에 이를 넣는 나라는 아마 북한과 우리나라밖에 없는 듯하다. 북한방송을 보면 '경애하는 김정은 지도자 동지께서 친히 손을 잡아주시자 군인들과 인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는 식의 아나운서 멘트가 종종 나온다. 

그런 방송을 보고 우리는 북한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해오지 않았던가. 민 대변인의 브리핑을 본 언론인들과 이를 전해들은 국민 대다수는 북한방송과 민 대변인의 브리핑이 무엇이 다른가라고 되물을 게 틀림없다. 주군의 심기를 편하게 하려고 한 브리핑이 보기에 따라서는 아첨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청와대 대변인이 있는 한 국민의 심기는 불편할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 농부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메르스가 잡히지 않아 관광업계와 음식점, 자영업자 등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의 입'이라는 대변인은 대통령 인기 운운 타령을 하고 있으니 그의 입부터 소독해야겠다는 만평이 조만간 나올 법도 하다. 

위기 상황에 환하게 웃는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 

 최경환 국무총리 권한대행(왼쪽)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메르스 확산과 관련한 '당부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또 한 사람이 더 있다.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이다. 그는 메르스 확산 초기에 외국 출장을 갔다가 박근혜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 비판에 직면하자 일정을 하루 앞당겨 지난 6일 귀국했다. 최 총리대행은 이날 오후 메르스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가면서 황우여 사회부총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가 악수를 나누었다. 그 모습이 방송카메라에 잡혀 여러 차례 방영됐다.

이를 본 순간 "아! 이 분이 위기 상황 때 어떤 식의 소통이 필요한지 모르는구나'는 생각을 했다. 위기 상황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은 금물이다. 초상집에 가서 상주에게 웃으며 문상을 하지는 않는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음식을 넘길 수 없을 정도의 비통에 잠긴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교육부 장관이 라면을 먹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엄청난 곤욕을 치르지 않았던가. 최 총리 권한대행은 얼굴 표정도 매우 중요한 소통 방법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 재난 때에는 함부로 행동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자중자애해야 한다.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지도자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든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생각은 올바른 것이어야 하며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지도자 자격이 있다. 국민의 녹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곳곳에 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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