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썼지만 .. 휴지조각 된 '150억 상속' 유언장

박민제 입력 2015. 5. 6. 01:58 수정 2015. 5. 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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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매 중 3명에게만 나눠주려한 재력가아파트 호수까지 넣어 '물려준다' 적곤이름·날짜·날인 후 자택 주소 따로 안 써대법 "유언장 요건 못 갖춰" 무효 판결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유언은 어떻게 해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수백억원대 자산가 사망 후 한 장의 유언장을 놓고 벌어진 자녀들 간의 법정 다툼이 3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효’로 결론 났다. 유언장 내용에 주소가 포함돼 있지만 별도로 적지 않은 탓에 모든 상속재산은 유언 내용과 관계없이 법정상속분에 따라 균등 분배되게 됐다.

 재력가 A씨는 2008년 5월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했다. ‘서울 소재 ○○아파트 XXX호는 차녀 B에게 물려준다. 은행에 예치돼 있는 총 150억원의 금융자산 중 50억원은 장학재단에 기부한다. 기부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자산은 B 등 세 명의 딸에게 균등 분배한다’는 내용이었다. 장남 C씨 등 나머지 세 명의 자녀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 A씨는 이 유언장에 날짜와 성명을 적은 다음 도장을 찍었다.

 그로부터 3년 후 A씨가 숨진 뒤 유언장이 공개됐다. C씨 등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자녀들은 “자필 유언장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B씨 등을 상대로 유언 무효 소송을 냈다. 민법상 유언장이 효력을 갖추기 위해선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주소·성명을 모두 직접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이 중 주소가 빠졌다는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유언장이 유효하다고 봤다. A씨의 주소가 따로 적혀 있지 않지만 작성 당시 주거지인 ‘서울 소재 ○○아파트 XXX호’가 유언의 목적물로 적혀 있다는 점이 근거였다. 주소를 적는 이유는 작성자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위한 것인데 해당 주소가 기재돼 있으므로 목적을 달성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3부는 지난해 원심을 뒤집었다. 유언장에 주소가 있다고 해도 기재된 위치와 내용을 감안하면 A씨가 자신의 주소를 적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언 무효로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언장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와 일치하더라도 무효”라며 “직접 쓴 주소가 존재하지 않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A씨의 자녀들은 상속재산을 똑같이 나눠가지게 됐다.

 이번 사건처럼 자필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하는 법원의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자필로 유언 내용과 이름, 날짜, 주소를 모두 쓰고 도장까지 찍어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주소를 기재할 때도 번지수를 포함한 세부 주소까지 모두 적어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말 배모씨가 아들 윤모씨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고 작성한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소를 적으면서 ‘암사동에서’라고만 적었기 때문이다. 하급심에서 동 이름만 적었어도 주소로 볼 수 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자필 유언장의 주소는 생활의 근거지인 만큼 다른 장소와 구별되게 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선일 대법원 공보관은 “유언은 법정상속분을 넘어서는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기준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언장에 쓴 내용을 고칠 때도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자필로 수정하고 날인을 해야 효력이 인정된다. 판사 출신인 이상원 변호사는 “세상을 떠난 뒤 자녀들 사이의 재산 싸움을 막으려고 작성한 유언장이 반대로 자녀들 간의 분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며 “요건을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작성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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