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이사장이 왜 살벌한 막말을 했냐면요

2015. 4. 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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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허승 기자입니다. 스포츠부 소속으로 몇번 인사를 드렸는데 지난 3월부터 사회부 24시팀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느 살벌한 이사장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학교법인 중앙대학교의 박용성(75) 이사장이 21일 이사진 및 총장 등 중앙대 보직교수들과 주고받은 전자우편에서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져, 중앙대 이사장직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요. 막말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지 반나절 만이었습니다.

박 전 이사장이 한 막말을 보면 가관입니다. 중앙대의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 일명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을 "조두(새대가리)"나, "Bidet(비데)위"라고 부르는 것은 장난스럽게 봐줄 수도 있습니다. 박 전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보낸 전자우편에서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는 방법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섬뜩할 정도입니다. 학사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향해서도 막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박 전 이사장은 16일 이사진 및 보직교수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며 "요점 위주로 임팩트 있게 전달하면 99%가 알아들을 것이다. 그러고도 반대하는 학생이 있으면 무시하라. 사무 착오로 학습 능력이 없는 아이가 입학한 케이스"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이사장의 막말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건과 연결지어 '제2의 땅콩사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슈퍼 갑질'을 해온 재벌들의 행태가 빚은 사태라는 거지요. 대학교는 운영 주체인 법인과 교육 주체인 교직원과 학생 등 세 주체가 상호 협의하며 운영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박용성 전 이사장은 어떻게 중앙대에서 '슈퍼 갑'이 돼 학교의 또다른 주체인 교수와 학생에게 그런 막말을 서슴없이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박용성 전 이사장이 중앙대에 들어온 건 2008년 5월입니다. 두산그룹이 당시 중앙대 이사장인 김희수씨의 수림장학재단에 1200억원의 기부금을 출연하면서 사실상 학교를 인수한 거죠. 그는 곧 이사장 자리에 올랐고 두산그룹 출신 인사와 그의 측근 인사들로 이사회가 채워졌습니다. 인사권을 틀어쥔 탓에 차차 박 전 이사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학사행정 등 학내 사무를 총괄하는 것은 총장이어야 함에도 박 전 이사장은 전자우편을 통해 현수막 제작, 학보사 기사의 편집 업무, 학내 커뮤니티 게시글에 관한 사항까지 일일이 지시했습니다. 이용구 총장은 이런 이사장의 행태에 항의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사장님께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번 본부팀이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등의 낯부끄러운 말을 한 게 이번에 공개된 전자우편에서 드러났습니다.

비판과 견제가 사라진 중앙대에서 박 전 이사장은 기업식 경영을 중앙대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려 했습니다. 당시 그의 취임 일성은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것이었죠. 박 전 이사장은 전자우편을 통해서도 "사회적 수요가 너무 떨어진 학과를 폐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학문을 보니, 비인기학과 교수들은 인건비만 축내는 구조조정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그 과정에서 학교의 또다른 주체인 교수와 학생들과의 충돌이 발생했고, 박 전 이사장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노조"이거나 "학습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전 이사장은 보직교수들에게 전자우편에서 "그들을 악질 노조로 생각하고 대응해야지, 아직도 동료로 생각하고 대응하고 있다"고 다그치기도 했지요. 중앙대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무사를 통해 대응 방안을 짜고, 학내외 여론이 나빠지자 홍보 컨설턴트를 고용해 여론 대응에도 나섰습니다. 과거 대학에서 볼 수 없던 '기업식 경영'의 모습이었죠.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의 비리와 중앙대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중앙대 법인이 학내 편의시설 수익 203억여원을 불법회계 처리한 의혹과 학교 건물 공사를 두산건설이 독점 수주하면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의혹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용성 전 이사장이 이번 전자우편 공개를 통해 학내 사안들을 직접 지시하고 개입해왔다는 것이 알려진 만큼 검찰 수사를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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