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저개발국의 부패 문제를 가진 세계 1등 경제국"

정진수 기자 2015. 4. 1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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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PERC '외국 기업인이 본 한국' 설문 들여다보니

"한국사회는 유명인과 권력자, 고위층이 원하는 대로 너무 많은 것을 허용해준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하는 한 외국 기업인이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의 '2015 아시아·태평양 국가 부패 인식' 설문조사에서 내놓은 뼈아픈 일침이다. PERC의 아시아·태평양 국가 16개국에 대한 부패지수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한 싱가포르에 대해 "부패에 잘 대응하고 있으며, 실제 부정부패가 적발될 경우에도 확실한 응징이 있다"는 다른 기업인의 평가와 대조된다.

PERC 부패지수 보고서는 사실상 인재(人災)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국민들의 염원은 높아졌지만 경남기업의 '뇌물 리스트'나 포스코 건설 비자금 사건에서 보듯 부패를 관행으로 치부하는 우리 정치권과 기업의 인식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피아법'은 이상, 경남기업 비리가 현실…비관적 시선

PERC 보고서의 우리나라에 대한 지적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과 관피아법(공직자윤리법) 개정 등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현실에서도 그 변화가 반영될지는 미지수라는 외국 기업인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피아법과 김영란법은 '이상'일 뿐, '성완종 리스트'가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현실이라는 의미다.

한국의 부패지수 6.28은 지난해 7.05에 비해서는 소폭 개선된 것이다. 2010년 이후 5년 연속 악화되다 올해 꺾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 대상 16개국 중 12개국의 지수가 개선돼 전체 평균이 0.3가량 낮아진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8위 대만보다 1.28이 높은 반면 10∼11위인 태국, 중국과는 0.6∼0.7 차이에 불과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부패 척결을 위해 강화한 관피아법이 무색하다.

PERC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정치권력과 기업인과의 정경유착을 부패 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로 들었다. PERC는 2013∼2014년 보고서에서도 재벌총수에 대한 특별사면, 한국 수력원자력공사 납품비리, 브로커 검사 파문 등을 거론하며 고위관료와 정치인, 기업의 '검은 커넥션'을 지적한 바 있다.

◆"저개발국의 부패 문제를 가진 세계 1등 경제국"

이번 설문조사에서 외국 기업인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많은 분야에서 3∼5로 비교적 양호한 점수를 준 반면 나머지 절반은 7∼8 사이의 최하 '부패국' 수준의 평가를 해 극명하게 갈렸다.

부패 개선에 점수를 준 쪽은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김영란법과 관피아법 등의 법안이 국민적 지지를 얻어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을 높게 샀다.

한 외국기업인은 "대중들의 인내심이 바닥났고 부패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의 의지가 더욱 커졌다"고 밝혔고, 또 다른 응답자는 "한국인들이 이제 드디어 '원래 이랬어'라는 관행이 불법적이고 멈춰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부고발이 늘어난 것도 이를 보여준다"고 희망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부패지수에 낮은 점수를 준 쪽은 더딘 현실 변화를 지적했다.

한 응답자는 "한국은 저개발국의 부패 문제를 가진 세계 1등 경제국"이라고 꼬집었다. 한 기업인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으나 '특별한 상황'에 대한 너무 많은 예외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불법 자금과 뒤섞이는 정치후원금과 정치인에 대한 뇌물이 너무 만연해 바꾸기가 어렵다"고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로버트 브로드풋 PERC 대표는 "지금까지 기업인들을 조사하면 의견이 대부분 일치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린 것은 매우 흥미롭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단순히 기대감에서 나오는 반면 부정적인 평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현실에 더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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