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니가 가라, 중동" 청년들이 '중동'에 갈 수 없는 이유

홍진수 기자 입력 2015. 3. 30. 18:45 수정 2015. 3. 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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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동 진출'을 의제로 던졌다. 박 대통령은 "국내 내수시장은 이미 할 수 있는 많은 조치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시대에 외국과 경제교류와 경제외교를 활발하게 해서 투자를 유치하고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며 "중동의 정책과 우리의 창조경제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서로 연대가 잘 맞게 돼 있다. 이렇게 전개되는 것 자체가, 이런 현실이 바로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 인력의 중동 진출을 두고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지시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중동 발언'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유탄'을 맞았다. 김 대표가 지난 23일 서을 신림동 고시촌을 찾아오자, 일부 청년단체 회원들은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니, 니가 가라"라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오후 관악구 신림동에서 고시촌 방문에 반대하는 한국청년연대 회원들과 관악 고시촌 1인 청년들이 피켓 시위대를 지나 청년 1인 가구 관련 타운홀 미팅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이른바 '중동 붐'은 1970~80년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한 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동도 일자리를 만들어 놓고 한국청년을 기다리는 '기회의 땅'일까. 박 대통령이 '청년'이었던 그 시절과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여러 통계는 이야기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14년 전 세계 청년 실업률은 13.1%다. 지역별로 보면 중동 및 북아프리카가 29.5%로 가장 높다. 한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중동 청년들도 높은 실업률에 좌절해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말이다. 2011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었던 이른바 '아랍의 봄' 시위가 바로 이 청년들의 좌절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나마 사정이 좋아보이는 산유부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2011년부터 자국민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외국인의 고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주사우디아라비아 한국대사관이 지난달 11일 홈페이지 생활정보란에 올린 '취업정보'에는 아주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대사관은 "2014년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의 총 실업률은 5.6%이며, 사우디인 기준 실업률은 11.7%로 발표되고 있으나 매년 2~3%의 높은 인구증가율을 감안할 때 실제 실업률은 25~40%로 추정된다"며 "2012년 기준 40세 미만 인구가 73.9%로 청년 인구비율이 높아지면서 신규 일자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지속적인 실업률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현재 취업 연령층인 480만 명의 사우디 시민들 중 58만8000명이 넘는 사우디 인들이 실직 상태이다. 이에 사우디 정부는 자국민의무고용정책(Saudization) 실시 및 특정 분야의 외국인 고용제한정책 역시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 사우디아라비아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라고 취업전망이 밝을 리가 없다. 대사관은 "사우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저렴하고, 아랍어 사용이 가능하며, 문화적 차이가 거의 없어 현지 적응에 유리한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아랍국가들의 인력을 선호하고 있다"며 "아울러 현지법상 영주권이 없어 진출 교민 및 교민 기업의 수가 제한적이어서 한국 인력 수요의 직접적인 증가는 난망시 된다"고 밝혔다. 다만 "교수, 엔지니어, 의료인력과 같은 고급인력 분야에서 과거에 주로 서방출신의 고급인력을 채용해왔으나 점점 활용할 수 있는 인력 풀이 감소함에 따라 다른 중동 국가들과 같이 사우디 또한 지속적인 고급인력 구인난을 겪고 있다"며 "해당분야에서 우리 인력들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활용하면 다수의 분야에서 수요를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즉, 교수나 엔지니어, 의사같은 고급 인력만이 사우디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중동의 상황이 급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청년들의 중동취업은 박근혜 정부가 처음 내놓은 정책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중동은 '기회의 땅'으로 불렸다. 이 전 대통령은 원전수출과 자원외교 등을 위해 중동을 다녀온 2012년 "제2의 중동붐을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통계를 보면 '중동 취업'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4년 10월까지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 취업 연수 및 알선을 통해 취업한 사람은 총 2880명인데 이중 중동에 해당하는 UAE 취업자수는 80명에 불과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등은 나와있지도 않다. 일본이 501명으로 가장 많았고, 호주(471명), 싱가포르(298명), 캐나다 (274명), 미국(203명), 중국 (164명) 순이었다 UAE는 베트남(71명), 인도네시아(70명)과 함께 하위권에 속했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무작정 중동으로 가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중동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한국 외교부는 쿠웨이트와 바레인은 '여행유의국가', 레바논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여행자제국가', 시리아와 이라크는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UAE의 상황이 가장 좋지만 위에서 얘기한대로 성과는 미미하다.

외교부 홈페이지 갈무리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우리가 경제재도약을 염원하고, 경제활성화 노력을 하고 있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염원하는데 그것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메시지라고 정확하게 읽어야 된다"고 말했다. 또 "'현실은 하늘의 메시지다'하는 얘기를 혹시 들은 적이 있는가. 과거 70년대 오일쇼크로 경제를 어떻게 살릴건가, 주저앉을 건가라는 공황에 빠졌을 때 우리는 현실이 주는 메시지를 잘 읽었다"고도 말했다. 박 대통령이 '하늘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었는지는 몇년 후 다시 통계가 말해 줄 예정이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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