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다리X, 기대기X' 대학이 군대인가요?

고아름 2015. 3. 13. 1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서울의 한 대학교 예술학부 '신입생이 지켜야 할 것'

'전화 통화할 때는 양해를 구하는 말투로'

'상체 꾸벅 후 0.1초 뒤 육성인사'

'짝다리X, 기대기X, 눕기X, 핸드폰X'

지난달 말 서울의 한 대학 예술학부 재학생들이 신입생들에게 알려준 내용입니다. 선배와 전화 통화하는 법, 인사하는 법 등이 상황별로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혼자 있거나 여럿이 함께 있을 경우, 혹은 학번이 다른 두 선배와 있을 경우 등 인사법이 모두 다릅니다. 신입생들은 인사법을 숙지해야 하며, 일주일에 세 차례 공연장과 연습실 등을 청소해야 한다는 지시도 받았다고 합니다.

▲서울의 한 여자대학 체육학과 신입생 행동규정

지난해 인터넷에서 논란이 됐던 한 대학 체육학과 신입생 행동규정입니다. '다,나,까 말투를 사용' '파마, 염색 금지' '화장, 틴트, 선크리 금지' '니트, 치마, 워싱있는 바지 금지' 등 군대만큼 엄격한 규정을 내세웠습니다. '학과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장학금에서 제외'같은 황당한 내용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내용을 신입생 중 한 명이 인터넷에 올리니, 과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선배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며 제보자를 찾으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 선배들의 '군기잡기'에 관한 신입생들의 하소연이 눈에 띕니다. 대부분 말투나 복장 규제와 인사를 공손히 할 것 등을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예전처럼 단체 기합이나 극단적인 폭력이 행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단체 생활이 많은 일부 예체능 계열 학과에서는 여전히 이런 규율들이 남아있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재학생들은 "단체 생활이 많은 과의 특성상 필요한 부분이다"라는 입장입니다. 선배와 후배 사이 예절을 지키자는 건데 인터넷에 퍼지면서 과장됐다는 의견도 있었고, "예전에는 더 심했다. 선배들한테 맞는 것도 다반사였다"며 다소 억울해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체 생활을 한다고 해서 개인의 복장이나 말투, 심지어 개인의 사생활까지 규제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그 규율이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신입생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 자유로운 소통과 토론을 통해 창의를 꽃 피워야 할 대학에서 이같은 군대식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이 존엄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배우고 또 가르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대학에 가보면 교수와 학생의 관계, 또 선배와 후배 관계에 봉건적인 위계질서가 지배하고 있단 말이에요. 심지어 직장에서도 서로 존댓말을 쓰고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데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 이렇게 불필요한 규율들이 남아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논란이 불거지는데도, 대학의 군기잡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입생 때는 문제의식을 느꼈던 학생들도 막상 선배가 되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후배들의 군기를 다지고 있습니다. 군기는 말 그대로 '군대의 기강'을 뜻합니다. 대학은 군대가 아닐 뿐더러, 사회에서 가장 자유로운 교류의 장이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학문적 교류와 소통 속에서만 선배를 향한 진정한 존중도 싹틀 수 있습니다. 이제 불필요한 '악습'은 과감히 끊어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 이 기사는 3월 13일 KBS 뉴스9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고아름기자 (areum@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