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죽는다고 나오니..결혼 앞두고 갈라선 '두 사람'
[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가족
둘 사이는 내 엄마와 형
중재하다 새우등 터진 나
▶ 결혼을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륜지대사라고 얘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미친 짓과 인륜지대사의 사이를 오가는 '결혼'이라는 일 때문에 가족 모두가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가족 모두가 결혼을 통해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는 것인데요.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가는 '인터뷰; 가족'.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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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료와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엄마가 형의 결혼을 반대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반대하는 이유가 독특하다. 결혼할 두 사람의 사주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같이 살면 한 사람이 일찍 죽는 운명이란다. 점집에서 사주를 잘못 봤겠거니 해서, 다른 여러 점집을 찾았으나 결과는 같았다. 성당에 다니는 엄마는 그 사주를 철석같이 믿고 아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런데 그냥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형과 형수가 결혼하면 사돈이 될 분들께 "사주가 나쁘니 결혼시키지 말자"고 말해버렸다. 이 일로 엄마와 형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올해로 형은 서른다섯살, 엄마는 예순네살이다. 두 사람은 지난 삼십여년 동안 많이도 다퉜고, 나는 늘 그렇듯 둘 사이의 중재를 맡았다. 그런데 이번 중재는 정말 힘들다.
엄마좋게 얘기해준 점집이 없어이렇게 나쁜 사주가 없대어떻게 결혼을 시킬 수 있니나엄마는 성당 다니며 사주 운운형수 집에 전화까지 걸다니이건 좀 너무하는 것 같아형사주 얘기 처음 꺼낸 건 내 잘못엄마가 그 집에 상처줄 권린 없어결혼자금도 받지 않을 거야
나
요즘 엄마 정말 이상해. 언제는 동생인 내가 먼저 결혼하고, 형은 나이 먹도록 결혼 생각을 안 한다고 잔소리를 했었잖아. 근데 이제 와서 왜 그렇게 반대를 하세요?
엄마
그랬지. 형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그랬어. 그런데 어쩌겠니. 이렇게 나쁜 사주가 없대. 좋게 얘기해준 점집이 하나도 없어.
나
엄마는 성당 다니잖아. 그런 분이 사주니 팔자니, 그런거 연연하면서 살면 어떡해. 그리고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게, 그걸 형수 집에 전화해서 얘기하면 어떡해. 그 집에서 "결혼시키면 한 사람은 금방 죽을 팔자"라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겠어.
엄마
어떻게 그 말을 안 하니. 그 집도 알아야 할 일이야.
나
형이랑 형수랑 이미 알고 있는 걸, 굳이 꼭 알려야겠어? 알리더라도 형수가 알려야지.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해준다고 저쪽 집에서 '아이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것 같아요?
엄마
몰라, 엄마는 해야 할 말을 한 것뿐이야. 너까지 나서서 잔소리할 거면 그만 얘기하자.
나
그냥 조용히 형에게 반대를 하셨어야죠. 가족끼리 고민해서 이 결혼은 하지 말자고 정리를 했으면, 형도 이렇게 난리를 치진 않았겠죠.
엄마
그래, 네 말처럼 했으면 좋았을 거야.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니? 형의 태도를 보렴. 형이 그렇게 불손하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이러진 않아. 상견례 전날에 엄마에게 날짜 미룬다고 통보하고, 그게 아들의 예의니?
형은 양가 상견례 하루 전날에 날짜를 미루고, 엄마에게 사주의 내용을 알렸다. 그땐 형도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형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본래 계획대로 결혼해 잘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지가 않았다. 결혼을 반대하기 시작했고, 형은 고민을 털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여기서 우리 가족의 치명적인 약점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뒷감당이 안 되는 상처 주는 말들을 실컷 주고받은 것이다. 대화를 할수록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덧난다. 둘 간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나
애초에 형이 원인 제공을 했어. 약속된 날짜 다 돼서 상견례 미루고, 사주 별로인 얘기를 엄마한테 왜 해? 그러면 엄마가 '아이고, 우리 큰아들 사주가 안 좋구나. 그래도 잘 살아야 한다'라고 할 줄 알았어?
형
그래, 내 잘못이다. 근데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해? 내가 상견례를 미루든, 사주팔자를 보든 타로카드 점을 보든 엄마가 그 집안에 상처를 줄 권리는 없어.
나
그래, 그건 엄마가 잘못했지. 근데 형은 엄마가 왜 그랬는지 고민을 별로 안 해봤구나. 형이 엄마에게 잘 대했으면, 엄마가 그 집에 그런 말을 했을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봐. 자식이 엄마에게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지.
형
그거야 서로 싸우다 보니까 한 얘기지.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할 생각은 없었어.
나
그러니까 엄마를 어르고 달래서 평화롭게 모실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일일이 잘잘못 따져가면서 몰아세우면 엄마가 '내가 잘못했구나. 우리 아들 말대로 했어야 하는데'라고 하실 것 같아?
형
이성적으로는 네 말이 다 맞아. 나도 그걸 아는데, 엄마랑 대화를 하다 보면 그렇게 잘 안돼. 나도 엄마랑 싸울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구질구질해지는지, 너는 모를 거야.
형과 엄마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형은 어릴 적부터 기대를 많이 받는 아들이었다. 부모님은 둘째인 나보다 형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기대가 큰 만큼 원하는 것도 많았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나도 스스로 잘못했다고 여길 때가 종종 있는 것처럼, 그때 엄마도 형에게 그 기대에서 비롯된 잘못된 행동들을 했다. 가령 반찬 투정을 하는 형을 때려가며 먹인다든가, 시험을 망쳤다고 게임기를 망치로 부순다든지 하는 행동들. 형에겐 상처로 남았을 일들이지만, 나와 엄마에겐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그걸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들추는 형의 행동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와 엄마가 단 한번이라도 형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
그래. 나는 잘 모르지. 그렇지만 이미 오래전의 일이잖아. 형도 이제 나이를 꽤 먹었다고.
형
그래, 내가 이 나이를 먹고서도, 중·고등학생 때 얘기를 꺼내며 '엄마가 그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모난 사람이 됐어요'라고 말하고 돌아서면, 내 기분이 얼마나 처참한지 너는 정말 모를 거야. 나도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
나
그래, 그 기분이야 나는 모르지. 물론 그때 엄마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 그렇지만 엄마가 형에게 그리 강압적으로 무언가를 시키고, 상처를 주지 않은 시간도 꽤 오래됐어. 이번 일을 잘 푸는 게 중요하지, 다시 과거의 일을 들추며 싸우면 정말 해결이 안 되잖아.
형
몰라, 지금 엄마한테 결혼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어.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정리되지 않겠냐.
나
그놈의 시간. 형 말대로 그 시간이 다 정리해줬다면, 형은 왜 아직까지 엄마한테 그러는 건데.
형
그렇게 말꼬리 잡지 말고, 네가 좀 도와줘. 나도 엄마 없이 결혼식을 하는 게 편하진 않아.
나
내가 엄마에게 잘 얘기를 해보긴 할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형이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야 해.
형
그래, 알겠어. 하여튼 고맙다.
도움을 주면 둘 사이가 좋아지고,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문제는 상처로 남고, 그 상처는 다음번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들쑤셔진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
나
엄마, 형이랑 통화했는데 엄마한테 결혼식 오시지 말라고 한 것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데 엄마가 마음 좀 푸시면 좋겠어요.
엄마
걔는 그 얘기를 나한테 직접 전화해서 말하지 왜 네가 얘기하게끔 하니?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구나.
나
당장 엄마 마음이 누그러지기 어렵겠지만, 저는 그냥 형이 선택한 걸 가급적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그렇게 평생 아빠를 이해하려고 애쓰셨으면서 형에게는 별로 안 그러시는 듯해요.
엄마
형에게도 그러고 있단다. 그리고 너는 엄마가 아빠한테 하듯이 내 자식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니? 그게 보기 좋니?
나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 말씀드렸어요. 정리 좀 하고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게요.
통화가 끝나자 슬픔이 밀려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외로움이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기생하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 가족이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다 하는 이유는 참지 못해서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서로 그 선을 넘기 시작했고, 그게 습관처럼 남은 것이다. 그 습관이 늘 상처를 덧나게 한다. 한동안 나는 그런 모습이 싫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방관자처럼,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자라고 있었고, 그래도 내가 이 가족의 어엿한 일원이라는 책임감이 방관자적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과연 엄마의 마음이 풀어진 채, 형이 결혼식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시간은 별로 없는데 마음만 급해진다.
동생이기보다 둘째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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