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택시 타지 마, 화장도 안돼" 공포의 대학 캠퍼스

2015. 3.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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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단국대 한 학부 학생들, 신입생에 '행동 규정' 강요

"학교에선 항상 긴장, 선배들 피해 화장실서 눈물"

단국대 일부 학생들이 신입생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행동 규정'을 만들어 이행을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행동 규정에는 선·후배 간 인사법과 대화법, 신입생 복장, 흡연 예절 등이 포함돼 있다. 캠퍼스에 만연한 문화적 폭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겨레>가 입수한 단국대 한 학부의 '신입생 행동 규정'을 보면, △화장 금지 △복장 규제 △'~다나까체' 의무적 사용 △선배에게 극존칭 사용 △택시·오토바이 이용 금지 △개인 차량도 학회장 허락 때만 이용 가능 등이 나열돼 있다. 또 선배가 피우자고 해야 흡연이 가능하고, 혼자 흡연하다 선배가 오면 뒤로 숨기고 피워도 되는지 물어봐야 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이런 행동 규정이 입학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전달되면서 신입생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 단국대 신입생 ㄱ씨는 학교 정문에 들어설 때부터 입술이 바짝 마른다고 했다. 교내에서 선배와 마주할 때부터 정해진 인사법에 따라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ㄱ씨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단국대학교 000학과 000전공 15학번 000입니다!"라고 일종의 '관등성명'식으로 인사한다.

개강 날이었던 지난 2일에도 ㄱ씨와 동기들은 선배와 함께 쓰는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방)'에서 지적을 받았다. 신입생 중 누군가 정해진 인사법에 맞춰 인사를 하지 않거나 말끝을 흐리고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은 것에 연대책임을 물은 셈이다. 한 선배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에는 "선배를 멀리서 봤는데 눈도 안 마주치더라, 너희가 봤으면 먼저 인사하기로 하지 않았냐? 왜 그렇게 안 한다는 말이 나오지? 웃으면서 인사하지 말라고 했고, 긴장한 모습 보이라고 했는데 다 잊어버렸냐? 다시 말 나오면 그때는 책임 안 진다. 두 번 얘기하게 하지 마"라고 적혀 있었다.

긴장한 신입생들이 별다른 답이 없자 메시지를 보낸 선배는 "대답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왜 대답들이 없냐?"고 썼다. 그러자 수십 명의 신입생들이 줄줄이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라고 답 메시지를 보냈다. ㄱ씨는 "학기 초에 선·후배 간에 군기 잡기 문화가 당연하다는 분위기"라며 "이런 문화는 사라지고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선배들도 있지만 동조하는 선배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입생 ㄴ씨는 선배를 만날 때 쓰는 군대식 말투 '~다나까체' 때문에 늘 긴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말을 끝낼 때 '~요'로 끝내지 말고 '~다나까'로 끝내라는 얘기다. ㄴ씨는 "딱딱하고 경직된 말투를 쓰려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만 실수를 하게 된다"며 "선배들에게 극존칭을 하고 '다나까체'를 쓰거나 압존법(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는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을 써야 해서 떨리고 말하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떠나면 자유로울 것 같던 복장에도 몇 가지 규제 항목이 있다. 여학생은 진한 색조화장을 할 수 없다. 치마나 치마 레깅스, 청바지 차림과 구두 착용도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남학생들은 모자를 쓸 수 없다. 후드 티셔츠를 입더라도 달린 모자를 쓰면 안 된다. 시력이 좋지 않을 때 쓰는 렌즈 중에서 서클렌즈도 착용할 수 없다. 특정 장소에선 귀고리나 반지 등 액세서리 착용도 금지다. ㄷ씨는 "수업이 있는 날에는 아무래도 복장을 신경 쓰게 된다"며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안 좋게 보는 선배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츄리닝 같은 옷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학교 신입생인 ㄹ씨는 등교할 때 안전상의 이유로 오토바이나 택시를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그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곳이어야 할 대학에서 왜 이런 규칙이 존재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 없고 명확하게 답해주는 사람도 없다"며 "일부 선배들은 '이런 규정을 왜 지켜야 하는지 신입생이 더 잘 알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ㅂ씨는 선배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은밀한 문화 때문에 학과 행사에 참석하는 게 꺼려진다. 하지만 학과 모임에 빠지면 동기들이 연대책임을 지고 혼날 수도 있어 걱정이다. 그는 "학기 초에 과제도 많은데 의무적으로 학과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분위기"라며 "신입생들은 학과 행사에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ㅅ씨는 선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실수를 할까봐 주의를 기울인다. 메시지를 이용할 때도 정해진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ㅅ씨는 "문자 메시지로 인사법에 맞춰 인사를 한 다음 선배의 의견을 묻고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ㅅ씨는 "학교에 가면 긴장 상태다 보니 선배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며 "화장실 다음으로 편한 곳이 그나마 강의실이라 수업에서 만난 교수님에게 선·후배 간의 군기 문화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단국대의 해당 학부 학생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이런 문화가 더 심했는데 제가 학부 학생회장이 된 이번 학기부터는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개인에 따라 (행동 규정에 대해) 느끼는 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국대의 해당 학부 학과장 교수도 "과거에는 선·후배 간에 그런 규칙을 정하는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런 문화가 사라진 지 이미 6~7년이 지났다"며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금시초문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내 교수진이 타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고 이런 문화에 민감하고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에 길들여진 대학 사회 이대로 좋은가' 기획 연재 보기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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