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 사기단과 보낸 넉 달

2015. 2. 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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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 노숙인 김평일과 깡통주택

합숙생활 속 감시당하며 명의 다 털린 뒤수억원대 빚쟁이 된 노숙인 김평일 이야기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 깡통주택 사기 일당들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수억원대의 빚을 대신 진 김평일(61)씨는 다시 본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한겨레>는 지난 11월1일치 토요판을 통해 '인천 깡통주택의 비극, 장애인 가장의 죽음'을 추적하며 최우선변제권과 인천 지역 배당이의 소송이 급증하는 현황을 국내에 처음 알렸다. 11월8일치에서는 취재 범위를 확대해 깡통주택으로 이득을 챙기는 부동산 복마전 세력과 그들의 사기 수법을 소개했다. 당시 인천지검의 권순철 형사2부장은 "<한겨레> 보도를 보고서 수사 착수를 검토 중"이라고 알려왔고, 검찰의 수사는 3개월간 이어져 지난 8일 71명을 입건하고 9명을 구속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한겨레>는 김평일씨와 함께 지난 11일 다시 인천을 찾았다. 김씨의 뒤에 있는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의 주택이 그가 2011년 8월부터 두달 동안 머문 곳이다. 그는 이곳에 오기 앞서 연수구 선학동의 주택에서 6월부터 두달간 거주하는 등 사기 일당이 마련한 거처에서 넉달 동안 생활했다.

▶ 깡통주택에는 피해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집을 팔아도 빚을 못 갚는 집주인,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세입자, 대출금을 미처 다 회수하지 못한 금융기관이 주로 피해를 입죠. 반면 깡통주택을 조직적으로 만들고 최우선변제권을 내세워 세입자를 등치는 부동산 복마전 세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공범인지 피해자인지 애매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깡통주택 사기 일당에게 4개월간 숙식을 제공받은 대신 명의를 빌려주고서 수억원의 빚을 진 노숙인 출신 김평일(61)씨입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의 르메이에르 종로빌딩 앞 네거리, 영하 13도의 강추위에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씨에도 녹색 신호등이 켜지면 어김없이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녹색등이 깜빡깜빡하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이 맞은편 인도에 다다랐을 즈음이면, 네거리에 인접한 인도 귀퉁이에서 누군가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빅이슈>라는 잡지를 팔고 있던 김평일(61)씨였다.

"길거리에서 장사하려면 말이라도 계속해야 해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그의 "안녕하세요"는 인사도 판촉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행인들의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고, '여기 괜찮은 잡지가 있다'며 파는 물건을 소개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처럼, 그는 그저 잡지를 손에 들고 드문드문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점점 눈발이 거세지자, 김씨는 좌판에 깔아놓은 잡지 위에 얇은 비닐을 씌웠다. 날씨 탓인지 그를 지나치는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본인 명의의 부동산이 여러개 생기다

김씨는 인천지역 깡통주택(시세보다 채무가 더 큰 주택) 사기행각을 수사했던 인천지방검찰청의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깡통주택을 악용하는 사기 수법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이후 김씨가 소유한 주택들이 잇따라 깡통이 되고, 금융회사와 세입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을 확인했다. 김씨를 소환해 조사한 검찰은 그의 범죄행위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기단의 치밀한 수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씨는 사기단이 제공한 잠자리에서 숙식하며 명의를 빌려준 사람 중의 하나였고, 사기단은 김씨와 같은 노숙인들을 회유해 서너달씩 합숙시키며 사기에 악용할 가짜 명의를 조직적으로 만들어냈다. 김씨는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2011년 6월에 일자리와 잠자리를 준다는 사람의 말을 믿고 따라갔다가, 인천에서 4개월을 보내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가 인천을 다녀온 이후 본인 명의의 부동산이 여러 개 생겼고, 집값보다 비싼 수억원대의 빚을 진 채무자가 됐다. 그가 사용해본 적도 없는 휴대전화, 태블릿피시도 여러 대 개통됐다. 그 4개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천지검이 지난 5일 발표한 수사결과를 살펴보면, 깡통주택을 악용한 사기행각에는 부동산 중개업자, 법무사뿐 아니라 신용정보회사와 금융회사의 직원마저도 가담했다. 검찰은 사기에 가담한 이들 중 71명을 입건하고 9명을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사기죄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검찰은 집행유예를 구형할 예정이다.

이 사건은 최우선변제권에 대한 '오해'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오해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일정 금액까지는 영세 세입자에게 최우선변제권을 보장해 집이 경매 등으로 처분되면 채권자 가운데 세입자가 가장 먼저 보증금을 돌려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미 부채와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을 웃도는 '깡통주택'에 입주한 경우엔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우선변제권이 말 그대로 최우선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이를 알지 못한 대다수의 세입자들은 그동안 배당이의(주택 등의 자산이 처분되면 그 배당을 둘러싼 분쟁) 소송에 전세보증금이 묶였고, 소송에서도 불리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지역에는 200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면서 깡통주택이 속출했다. 이런 주택을 악용해 세입자를 유인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렸으나 조직적으로 사기를 치는 일당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사기 일당이 김씨처럼 세상 물정 어두운 노숙인들의 명의를 빌려 각종 부동산 거래, 임대차 계약, 대출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벌인 사기 수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최우선변제권을 미끼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사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의 시가를 조작한 매매계약서나 시가확인서를 만들어 과도한 대출을 받은 것이다. 그 결과 인천에는 남구, 남동구, 연수구 일대에 주택들이 밀집한 곳에서 '방 3개 주택, 전세 2200만원'이나 '경매 임박한 주택, 급매입' 등의 전단지 부동산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여전히 자신이 얼마만큼 빚을 졌는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 명의의 부동산과 휴대전화가 얼마나 있는지를 모른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기 수법을 좀더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김씨와 함께 그가 4개월 동안 지냈던 곳을 찾아다니며 기억을 최대한 복원하고, 금융회사들을 방문해 그의 명의로 이뤄진 각종 대출과 부동산 거래를 검증하기로 했다.

10일 오전 김씨를 도와 서울 여의도의 한 신용정보회사를 방문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문의한 결과, '본인 명의로 이뤄진 금융거래'를 확인하려면 해당 금융회사나 신용정보회사를 찾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얻은 그의 '개인신용보고서'에는 각 금융회사로부터 발생한 연체내역이 기재돼 있었으나, 총 대출금액과 대출잔액 등이 나와 있진 않았다. 국민은행 등 금융회사에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담당 직원으로부터 "대출 계약이 이뤄졌던 지점을 직접 찾아가야만 대출거래약정서 등의 열람이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짧은 기간 김씨의 부채 규모를 단번에 확인하긴 힘들었다. 더욱이 김씨 혼자서는 더 힘들어 보였다.

"하필 배고플 때" 김부장 다가와"일자리 준다" 따라간 곳은인천 선학동의 단독주택비슷한 처지 노숙인들 있었고언제든 먹을 수 있어 좋았다가끔씩 서명을 하라고 했고술판을 벌이고 욕을 해댔다발길이 뜸해졌고 집을 나왔다아무도 쫓지 않았다효용가치가 끝났던 것이다

하필 너무 배고플 때, 그들이 접근했다

11일 인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그가 2011년 6월 사기단의 회유로 입주하게 된 인천의 한 주택이었다. 인천 연수구 선학동에 위치한 이 주택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있는 다가구주택으로 그가 입주했던 곳은 102호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일자리가 있는데 하겠냐'고 묻더군요. 이전에도 노숙인들에게 '먹을 걸 주겠다', '일자리를 주겠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땐 안 갔어요. 그런데 하필 너무 배가 고플 때 그런 말을 하니까 안 따라갈 재간이 없었죠. 그래서 따라간 곳이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한 다방이었어요. 나를 데리고 온 사람이 잠시 기다리면 다른 사람이 올 거라고 했죠. 한시간여 기다리니 키가 180 정도 되는 사람이 저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사람이 '영등포 김 부장'이라고 하더군요."

인천지검은 지난 5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깡통주택 비리의 큰손인 일명 '김 부장'을 끈질긴 수사와 잠복 끝에 검거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을 따라나선 김씨는 그의 차에 탔다. 김 부장이 데려간 곳은 인천 선학동 주택, 김씨의 앞에 있는 건물의 반지하인 102호였다.

"김 부장이란 사람이 조만간 일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여기에 당분간 머물라고 했습니다. 들어가보니 10평이 조금 넘는 작은 집이었고, 방 3개에 화장실이 있었어요. 이미 그 안에 저처럼 영문도 모른 채 온 사람들 세명이 있었죠."

김씨는 먼저 들어온 이들 세명과 넉달을 함께 보냈지만, 그들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김형, 조형이라고 불렀고, 밥 당번인 한 사람에겐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의 숙식을 해결해준 그 집의 관리를 맡은 이는 일명 '신 사장'이라 불리는 이와 그의 동료 네댓명이었다. 관리자들은 쌀과 반찬이 떨어지면 근처 상점에서 사다주었다. 식사는 단출한 편이었다고 한다. 밥과 김치, 가끔 기초적인 밑반찬이 나왔다. 그래도 배고프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먹을 수 있어 김씨는 만족했다. 그 집에 입주하고서 일주일이 지난 뒤 김 부장이 다시 그를 찾았다고 한다.

"일주일간 아무 얘기가 없다가, 김 부장이 집 밖으로 부르더군요. 나가보니 일자리 때문에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했죠. 그래서 별 의심 없이 줬습니다. 그날 저녁에 다시 돌려주더군요."

김씨에게 그 집에서의 일상을 시시콜콜 물었다. 그가 그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다른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였는지를 질문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와 보낸 사흘 동안 많은 경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냥, 그랬죠"였다.

그와 동네를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20여m 걸어 모퉁이를 돌자 슈퍼마켓이 하나 보였다. 그곳에서 종종 물건을 샀는지 물었다. "과자나 간식거리를 샀다"고 했다. 담배는 어디서 샀느냐고 하자, "담배도 이곳에서 샀다"고 대답했다.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건설 일용직이었다"고 짧게 답했다.

한적한 동네였다. 그와 다시 집 앞에 도착했다. 짧은 대답만큼이나 그의 기억은 어두워져 있었다. 신 사장과 동료들 앞에서 그는 좀처럼 눈을 쳐들지 말고 주눅이 들어 있어야 했다.

"그 사람들이 종종 집에서 목욕을 하고, 알몸으로 돌아다니곤 했는데, 온몸에 문신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주먹 쓰는 사람들 같았죠.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은 일본인이어서 한국말을 못했습니다. 일본인은 신 사장의 친구였어요."

관리자들과 노숙인들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 사람들이 평소에 존댓말을 했습니까, 반말을 했습니까?"

"평소에는 반말하진 않았는데, 간혹 그 사람들이 집안에서 술판을 벌일 때가 있었어요. 야구 보면서 술을 마시는데, 점점 취기가 오르니까 저희들에게 자꾸 욕을 했습니다. 저희들은 괜히 얻어맞을까봐, 방구석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죠."

독촉장 날아오는 사기단 합숙소

김씨가 머물던 집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전체 다세대주택의 주인은 83년생인 강아무개씨로 2007년부터 이 집을 소유해왔다. 당시 102호를 누군가 따로 임대했을 수도 있으나, 등기부등본이나 현지 부동산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복도에 서 있다가, 문득 우편함 표면에 까만색으로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름 옆에는 조아무개, 김아무개 등 예닐곱명의 이름이 101~103호 우편함 표면에 적혀 있었다. 또 101호 우편함에서 삐져나온 우편물은 공교롭게도 김평일씨에게 온 것이었다. 그가 단 두달을 머물고 3년8개월 전에 이곳을 떠났는데도, 그의 우편물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김씨와 함께 살펴보니 케이비신용정보에서 11월9일자에 온 '연체 안내장'이었고, '신용카드 채무금액이 12만8533원 연체 중으로 올해 1월14일까지 상환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102호에 거주했다. 101호는 그가 거주하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그곳에 그의 우편물이 도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가 대출받은 은행들로부터 조회한 결과, 그의 명의로 된 집이 총 네 채였고,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그의 주소는 모두 101호였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101, 102, 103호 모두 사기 일당이 노숙자 합숙소 시설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씨는 이 주택의 102호에서 두달 머물렀고 인천의 다른 곳으로 이사해 두달을 더 거주했다.

"인천에 와서 두달 정도 지난 뒤였어요. 갑자기 이삿짐을 싣는 차가 왔고, 신 사장이 우리에게 짐을 옮기라고 했죠. 짐을 차에 실은 다음엔 그가 이사가는 곳의 주소를 알려줬고, 우리 네명은 시내버스를 타고 이사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정확한 장소를 찾기 어려워 한참 동안 헤매다 도착했어요. 두 번째 집은 이전보다 조금 더 컸습니다."

그는 이사한 곳의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했지만 기억에 의존해 찾아나섰다. 중앙공원 인근을 돌던 중에 그가 한 주택 앞에 멈춰섰다. 두달 동안 살았던 집을 발견한 것이다. 이 집에 머물 당시 그는 부동산 매매의 가능성이 높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된다.

"김 부장이 저를 어느 사무실로 두 번 데려갔습니다. 그때 제게 서류들을 주면서 이름만 적으라고 해서 썼습니다."

"무어라고 하며 이름을 쓰라고 하던가요?"

"그냥 필요하다고…."

김씨의 대답을 듣고 그의 행동이 납득이 안 가기도 했지만 엄청난 빚을 떠안은 그의 미래가 걱정됐다.

"별 말 없이 필요하다고만 했다고요?"

"예."

"그런데 서명을 했어요?"

"예."

"지금 그때 서명한 일로 수억원의 빚을 지고 있잖아요. 서명할 때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단 생각을 못해봤어요?"

"그땐 몰랐죠."

"서명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위예요.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

"이젠 안 하죠."

다음 행선지는 그가 서명을 했던 사무실이었다. 이곳을 찾는 데도 김씨의 기억에 의존했다. 한 시간여를 헤매다 인천지하철 예술회관역 인근의 한 건물을 발견했다. 김씨는 건물의 외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은 건물 1, 2층엔 아웃도어 옷가게, 3~5층엔 미술학원이 입주해 있지만, 2011년 당시만 해도 신축 건물이어서 대부분 비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김 부장을 따라 이 건물의 2층에 올라갔고, 그곳엔 칸막이를 세워놓고 대여섯명이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처럼 서명하러 온 이들도 여섯명 정도 보였는데, 그들도 세상 물정 어두운 노숙인처럼 보였다고 김씨가 말했다. 김씨가 두달씩 거주한 두 주택과 서명을 한 사무실의 주소로 등기부등본을 열람했다. 이곳은 사기 일당이 매입했거나 임대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하지만 등기부등본을 볼 때 세 장소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은 없었다.

국수장사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가난을 쉬이 떼지 못했다인신매매단 잡혀 새우잡이배 탔고서울역 노숙자로 되돌아갔다가깡통주택 사기단에 걸린 것이다사기 일당은 뒤에 숨어 이용했다대출금액만 3억7700만원휴대전화, 신용카드 연체까지자신도 모르게 오른 '빚더미 인생'벗어나기 위해 잡지를 판다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까

김씨가 넉달간 머무른 장소를 찾은 다음엔 부채를 검증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행선지는 국민은행 인천 숭의동 지점이었다. 이곳에서 김씨는 2011년 11월7일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담보는 김씨 소유의 인천 남동구 구월동 쪽의 빌라였다. 당시 은행에 제출한 '빌라 매매 계약서'를 살펴보면, 전용면적 36.72㎡의 주택을 매입한 가격이 9500만원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빌라 매매계약서'와 '대출거래약정서'에 사용된 김씨의 도장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쪽은 "대출거래약정서를 본인이 직접 썼다는 것이 중요하다. 매매계약서와 다른 도장을 사용한 것은 절차적으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택의 매매가가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국민은행은 이 집을 담보로 5000만원의 대출을 집행했지만, 2013년 3월 경매로 새 주인을 찾은 이 집에 농협이 집행한 담보대출액은 3500만원에 불과했다. 주택담보대출의 한도액은 대개 주택가격과 비례한다. 담보대출 금액이 적은 것은 그만큼 낮은 가격으로 매매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부동산 매매가가 조작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 집은 전용면적이 10평보다 조금 넓지만, 매매가격이 95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네이버 부동산에서 이 지역에 올라온 매물을 검색하면, 20~30평(66~99㎡)이 넘는 빌라 중에서도 1억원대 가격을 찾기 힘들다. 30㎡ 안팎의 매물은 대부분 5000만원 안팎이다. 주변 시세만으로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보면, 김씨에게 주택을 파는 사람(매도인)은 2011년에만 세 차례의 압류·가압류에 걸리는 등 빚독촉에 시달렸다. 부동산 사기 일당이 '압류에 걸린 집, 급 매입합니다'라는 전단지 광고를 붙이는 이유가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부동산 매매계약서의 매매가격을 조작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 주택은 중개업자 없이 매도인과 매수인 당사자 간에 직접 거래됐다. 당사자 간에 합의만 한다면, 실거래가와 다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이 주택의 가격이 조작됐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남아 있다. 국민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해당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검토한 결과, 내부 시세자료와 외부 평가법인의 조사 등 적절한 절차를 거쳐 진행된 대출"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집행한 대출은 6개월 만에 이자 연체에 직면했고, 경매 수순을 밟아야 했다.

김씨 명의로 동양생명에서 받은 대출은 총 두 건으로 금액은 2억4200만원에 달한다. 담보는 김씨 명의의 주택 두 채이고, 대출 시기는 2011년 11월28일이었다. 동양생명에서 받은 대출에는 유독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김씨가 대출거래약정서에 적은 필적과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 '분양계약서'에 적은 주소, 성명 등의 필적이 달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동양생명 쪽은 "분양계약서는 매도인·매수인 당사자 간에 서로 확인하고 이뤄진 계약이라 나름의 효력이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대출거래약정서를 본인이 썼는지 여부다. 약정서 안의 필적만 동일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동양생명에 제출한 분양계약서도 시세를 부풀렸을 가능성도 있다. 동양생명에서 열람한 '대출거래약정서'와 '분양계약서'를 보면, 김씨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 오피스텔의 303호를 2억800만원에 매수했고, 1억1900만원을 대출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2013년 4월에 경매로 이 주택을 매입한 새 집주인이 받은 담보대출 액수는 72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김씨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본인 명의의 부동산, 대출거래 이외에도 휴대전화, 신용카드 거래도 상당수였다. 그와 함께 서울 광화문 케이티 본사에 가서 조회한 결과, 그의 명의로 2011년 10월 개통됐다가 1년 만에 해지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한대씩 있었고, 기기분납금과 요금 연체료가 총 133만원에 달했다.

또한 현재 그가 거주하는 고시원에 배달되는 지로영수증 내역을 살펴보면, 그가 가입한 통신사는 엘지유플러스와 에스케이텔레콤 등 모든 통신사를 망라하고 있었다. 신용카드사로는 삼성카드와 케이비국민카드, 하나에스케이카드사가 그에게 연체료를 청구하고 있다. 김씨는 "실제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는 하나도 없고, 휴대전화는 빅이슈 사무실에서 대여해준 선불폰"이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시중은행과 보험사에서 대출한 금액은 총 3억7700만원이다. 또한 신용정보회사에서 발급받은 '개인신용보고서'를 보면, '하이캐피탈대부주식회사'라는 대부업체에서도 298만원이 연체돼 있다. 김씨의 명의를 사용한 사기 일당이 은행권 대출과 휴대전화 개통, 신용카드 발급 등을 한 이후 대부업체의 개인 신용대출마저 이용한 것이다.

김씨는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결과적으로 사기 일당의 범행에 도움을 주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그는 사기 일당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협박을 당했던 것일까.

"나가면 다시 배고픈 노숙인 신세라서 그렇지, 언제든 나갈 순 있었어요. 오히려 우리에게 약속한 일자리도 주지 않고, 점점 식량이 떨어져가는 등 신경을 쓰지 않아 스스로 나왔습니다."

협박을 받아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그가 살아온 과정에서 단서를 얻어보려 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어릴 때 서울로 이사왔어요. 부모님이 종로구 사직공원 인근 금천교시장에서 국수장사를 했죠. 칠남매의 넷째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때 중퇴했고, 20대부터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죠. 그러다 삼십대부터 서울역 앞에서 노숙을 하게 됐는데, 그때 인신매매단에게 잡혀 서른한살인 1984년부터 4년간 전남 신안에서 새우잡이배를 탔습니다. 말도 못하게 고생한 시절이었죠. 도망칠 수도 없었어요. 배에서 내리면 점방(자그마한 물건을 파는 가게)에 저희를 맡기는데, 뱃사람들이 진 빚이 있어 점방에서도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했죠. 그러다가 뱃사람들이 점방에 빚을 지불하고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 생활을 4년간 했어요. 겨우 도망쳐 나와 목포에서 서울올림픽을 맞았고, 서울역의 노숙자로 되돌아갔죠. 나중에 돈을 벌어보겠다고 신안에 다시 내려와 8년간 염전 생활을 했어요. 일은 고되지 않았지만, 리어카에 다리를 치여 지금도 걷는 데 불편합니다. 그때 전혀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도 노숙생활과 변변찮은 일자리를 전전했습니다."

일자리 꼬드김에 빚더미 떠안고

인천지역에서 깡통주택을 악용한 사기 일당은 최우선변제권이라는 법적인 허점과 대출 과정의 허술한 감시체계를 파고들었다. 또 노숙자들의 명의를 조직적으로 도용해 사기 일당은 이득을 챙기고도 뒤에 숨어 있었고, 은행과 세입자는 배당금을 두고 다투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와 관련된 대부분의 소송에서도 원고와 피고는 은행과 세입자였고, 사기 일당은 소송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구조가 인천지역에서 깡통주택을 악용한 사기가 만연해지도록 방치된 이유였다.

김씨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한 권 팔 때마다 자신에게 2500원이 떨어진다고 했다. 한 권의 가격은 5000원이다. 그는 "하루에 열권 남짓 팔리는데, 가장 안 팔린 날은 딱 한권 팔았다"고 했다. 김씨는 잡지를 팔아 고시원 비용으로 한달에 22만원을 내고, 식비 등 각종 생활비를 충당한다. 잡지 판매비 이외에 다른 수입은 없다고 했다. 김씨가 자신의 채무를 면책·감면받기 위해선 금융위 신용회복위원회에서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거나,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명의로 금융거래, 휴대전화 개통을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절차다. 이곳에서는 신청자의 정기적 소득, 채무 규모 등을 고려해 상환 계획과 면책 범위를 정한다. 본인의 채무를 확인하는 데도 기자와 동행하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인천/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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