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 사기단 수사, 판사들이 나선 이유는

이환직 2015. 2. 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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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부부 배당이익 소송 진행하다 "남편이 억울해 분신 자살" 소식 듣고

인천지법 판사 17명 임차 문제 논의

법원 증거 분석해 의심 중개사 추려 검찰에 자료 제공하며 수사를 의뢰

최근 재판에 넘겨진 인천 깡통주택 사기사건의 전모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배경에는 인천지법 판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깡통주택을 둘러싼 배당이의 소송 급증과 소액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된 임차인 문제에 관심을 갖던 판사들이 검찰에 자료를 제공하며 직접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인천지법 민사5단독 권순남 판사는 지난해 8월 40대 부부의 배당이의 소송을 진행하던 중 앞선 세 차례 기일과 달리 혼자만 나온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분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적장애인인 남편이 강제집행에 의해 셋집에서 쫓겨나게 되자 몸에 불을 붙여 숨졌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인천 중구의 105㎡ 아파트를 시세보다 저렴한 전세금 2,500만원에 빌렸다가 경매에 넘어가자 금융기관으로부터 배당이의 소송을 당했던 터였다. 근저당 설정 우선 순위를 따지는 배당이의 소송은 금융기관이나 임차인이 우선변제를 받기 위해 주로 제기한다.

권 판사는 "숨진 남편 분은 법정에서 말씀을 못할 정도로 격앙되고 적대감을 드러내 기억에 남는다"며 "배당이의 사건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분신 자살 소식이 계기가 돼 동료 판사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당이의 소송과 관련된 논의가 인천지법에서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문유석 부장판사 주도로 인천지법 민사단독 판사 17명 전원이 모여 지역에서 배당이의 사건이 급증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판사들은 배당이의 사건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소액임차인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제도를 역이용해 돈을 챙기는 공인중개사들이 많다는 점을 파악하고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는 부동산임대차 계약서에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몇몇 중개사를 추려내기도 했다.

권 판사는 "깡통주택임을 알면서도 팔아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는 게 주요 원인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배당이의 소송을 줄이고 깡통주택 피해를 막기 위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만나 보증금과 대출금을 받지 못한 임차인과 금융기관이 중개사와 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에 브로커로 의심되는 중개사들이 등장하는 자료를 제공하며 수사도 의뢰했다.

장준아 공보판사는 "소액보증금은 무조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속은 선의의 피해자가 많지만 중개사들조차 (깡통주택의 경우) 소액보증금을 보호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천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철)는 사기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부동산브로커 정모(47)씨와 금융기관 조모(42)씨 등 9명을 최근 구속 기소했다. 또 법무사와 공인중개사 등 53명이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잠적한 최모(32)씨 등 대출 브로커 등 9명은 기소 중지됐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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