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철새 떼죽음, 상수도관 공사 시점과 딱 맞아 떨어져"
서울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성동구 행당동 '살곶이' 수역은 풀과 버들이 무성해 조선 초부터 군마를 먹이거나 연무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체육시설과 생태공원이 들어섰다. 이 일대 중랑천 5.4㎞는 대부분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서울에서는 드물게 황조롱이, 원앙,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텃새는 물론 잿빛개구리매, 백할미새, 쇠오리 등의 철새가 매년 4000∼5000마리 찾아든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개체 수가 많은 철새는 물론이고 텃새도 연일 죽어나간다. 사인은 독극물인 보툴리눔 중독으로 추정되며, 근처의 상수도관 공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11월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겨우 2시간 만에 150마리 사체 발견=지난 2일 오후 2시 그린새 야생조류교육센터 서정화(52) 대표와 살곶이 수역을 찾았다. 서 대표는 갈대숲을 헤치고 강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난번에도 이쯤에서 발견했어요." 가리킨 곳에 이날도 고방오리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서 대표는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죽은 새를 처음 목격했다. 해마다 2∼3마리씩 죽은 철새를 보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떼로 죽은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당시에 본 사체는 어림잡아 10마리가 넘었다.
강 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갈대 숲 사이로 죽어 있는 알락오리 청둥오리 등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장화를 신은 서 대표가 수색을 시작했다. 30분도 채 안 돼 10마리 넘게 폐사한 새들을 수거했다. 죽은 지 오래된 사체도 있었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새도 있었다.
한참을 앞장서서 걷던 서 대표가 갑자기 일행을 불러 모았다. 날개를 퍼덕이며 강 중앙으로 가는 청둥오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머리를 들지 못했고 날갯짓도 힘이 없었다. 서 대표는 "죽어가는 오리가 물살에 밀려오다 인기척에 놀라 다시 강 안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라며 "오리들은 죽을 때 물에 떠밀리기도 하지만 강가로 몸을 향하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했지만 그 오리는 서서히 물에 가라앉았다. 그렇게 10여분 사투를 벌이더니 끝내 사체로 떠올랐다.
이날 서 대표 일행이 2시간 동안 수거한 사체는 40마리나 됐다. 흰죽지, 댕기흰죽지, 청둥오리,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 고방오리, 알락오리 등 종류도 다양했다. 수거하지 못한 것까지 합치면 발견된 사체는 150마리가 넘었다.
◇'떼죽음' 원인은 상수도관 공사?=상류 쪽으로 50m 정도 올라가니 상수도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상수도관을 지하에 묻는 공사다. 공사 전에는 상수도관과 이를 보호하는 콘크리트 보호공이 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다. 근처에 있는 보물 1738호 전곶교(살곶이다리)의 미관을 해치면서 동시에 물의 흐름을 막아 상류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가 쌓이는 원인이기도 했다.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해 11월 5일 지하화 작업에 들어갔다.
서 대표는 새들의 떼죽음이 중랑천 횡단 상수도관을 이설하는 공사와 연관이 있다고 봤다. 폐사가 시작된 시점도 공사 시작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그는 "상수도관을 지하에 묻기 위해 강바닥을 파내자 그동안 쌓여 있던 썩은 찌꺼기들이 하류로 흘러내려 갔다. 새들이 하구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이를 먹고 폐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사현장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퇴적된 흙들을 파내자 썩은 것들이 올라왔다. 오탁방지막 등을 설치해 흘러내려가지 않게 노력하지만 완전히 막을 순 없다"며 "밑바닥에 있던 걸 먹었다면 오리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떼죽음 원인은 신경계 독소 중 하나인 보툴리눔에 노출됐을 때 조류 등에 발생하는 질병인 보툴리즘(botulism)으로 알려졌다. 보툴리즘은 토양에 상존하다 용존산소가 부족할 때 이상 증식하는 보툴리눔 독소가 포함된 물이나 이를 섭취한 곤충·지렁이 등을 먹으면 발병한다. 독극물과 같다.
성동구는 지난해 11월 서 대표의 집단 폐사 신고를 받고 조류인플루엔자(AI) 검사를 했지만 AI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날 함께 현장을 찾은 구청 관계자들은 "목이 뒤틀려 있는 게 보툴리즘 증상인 것 같다"며 "빨리 원인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철새가 떠날 때까지 공사를 연기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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