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자인데 신고하면 처벌.. 법 개정을"

이환직 입력 2014. 12. 18. 20:12 수정 2014. 12. 1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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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성매매 경우 보호처분 소년원에 격리…사실상 처벌 인식

전문가들 "보호처분 조항 삭제하고 성범죄 피해자로 일원화시켜야"

지난 4월 발생한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 가해자 중 1명이었던 A양은 자신도 남성 가해자에게 폭행과 협박, 성매매 강요에 시달리다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네가 성매매를 했다고? 너도 처벌 받는다"고 다그쳤다. 수치스럽고 처벌이 두려웠던 A양은 그대로 경찰서를 나왔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르면 청소년이 업소에 고용되거나 알선 등에 의해 성매매를 하는 경우 피해자 지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청소년은 성매매 대상청소년으로 분류돼 보호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선고받은 청소년은 길게는 2년 동안 소년원에 격리되거나 야간통행금지 명령을 받는다. 의무적으로 보호 또는 재활을 위한 교육과정이나 상담과정을 듣고,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하거나 보호시설에 보호 구금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매매 대상청소년을 추가적인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입법 의도와는 달리 A양의 경우처럼 보호처분을 사실상의 처벌로 인식해 성매매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18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청소년 성매매 근절 및 대책 마련 포럼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이 처벌 받을 것을 감수하면서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는다"며 "성매수자들도 '너도 처벌 받는다' '네가 성매매를 했다는 것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성매수, 성폭행 등을 지속적으로 자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청법은 성매매 대상청소년을 구분하고 보호 및 재활을 위해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두고 있으나 법원 소년부에 송치할 수 있고 수사경력조회에 기록이 들어가 상습성의 판단 근거가 되는 등 처벌에 준하는 강제적 조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청소년이 모바일 채팅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성매매를 하면 알선이나 유도가 없이 자발적 조건 거래를 했다고 판단해 피해자로 보지 않는 수사기관의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수사기관은 청소년을 보호 대상이라기보다 처벌 대상으로, 보호처분을 보호라기보다 처벌로 인식하고 있다"며 "아이들 역시 소년원은 감옥으로, 야간통행금지는 전자발찌와 같은 처벌로 인식한다"고 덧붙였다.

신동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장도 "청소년을 성매매 환경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규정이라 해도 성매수자들이 '너도 처벌 받는다'고 협박해 신고를 막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제도의 맹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선 대안으로 성매매 피해청소년과 대상청소년의 구분을 폐지하고 성범죄 피해자로 일원화하자는 안이 나왔다. 신 센터장은 아청법에서 성매매 대상청소년 개념을 정의한 제2조, 대상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 규정을 담은 제38조와 제40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성진 세상을품은아이들 대표도 "대상청소년 개념으로 인해 성매매 청소년들이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합당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며 "해당 조항을 삭제하고 성범죄 피해자로 일원화시키는 것이 청소년 성매매 근절과 청소년들의 보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에선 청소년 성매매 근절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명 대표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아동·청소년 착취 예방 및 단속 업무를 수행하는 영국 총리실 산하 아동착취온라인보호센터와 같은 기관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신 센터장도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담당할 전문기관의 설치를 규정하는 방향으로 아청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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