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출신은 안돼' 채용 공고, 왜 나왔나 알아보니..

2014. 12. 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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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AS]

남양공업, 외주업체에 채용 공고 내달라 했다는데…

신입직원의 단순 실수? 출신 지역 차별은 명백한 위법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입주해 있는 한 기업이 최근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면서 '전라도 출신은 지원이 불가하다'고 명시했다는 보도가 나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기사는 3일 오후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인데요. (▶ 관련 기사 :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전라도 출신은 안돼' 채용 공고 논란) 인종 차별성 지역 차별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유통되고 있다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문제가 된 기업은 남양공업입니다. 파장을 증명하듯 한때 열리지 않았던 남양공업 누리집에는 4일 오후 현재 공지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남양공업 대표이사 홍성종' 이름으로 올라온 공지글에는 '최근 모 채용 사이트에 사실과 다른 채용 공고가 게재되어 기사화된 것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고 당혹스럽게 생각한다'며 '회사가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 지역 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당연히 남양공업도 지역 차별 없이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 남양공업 누리집 링크

고의가 아니라며 보도한 언론사에 책임을 물으면서, 정작 사과는 하지 않고 유감만 표명했네요.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다'는 뜻이니 여기에서 사용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오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표현이지요.

남양공업 쪽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거둬지지 않습니다. 최근 몇년 사이 적어도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는 공식화하지 않았던 인종 차별성 지역 차별 발언은, 최근 일베와 같은 극우적 성향의 인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발화하고 있습니다. 누리꾼들도 이번 파장이 점점 오른쪽으로 기울어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극렬하게 남양공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만약 남양공업의 이번 채용 공고가 사실이라면 법적 책임도 면할 수 없습니다.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를 보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고 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학력 △출신 학교 △혼인·임신 또는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라도 출신 지원 불가' 채용 공고는 어떤 과정을 거쳐 게재됐을까요. 이동영 남양공업 인사총무팀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채용 공고는 회사 쪽에서 낸 것이 아니다"라며 "채용 의뢰를 맡긴 아웃소싱 업체 중 한 곳의 신입 직원의 혼선으로 벌어진 실수"라고 말했습니다. 이 팀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남양공업이 채용 공고를 의뢰하는 아웃소싱 업체는 10곳쯤 된다고 합니다. 해마다 공개 채용 때 이용하는 사이트가 있지만, 이번에는 생산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 2명을 채용하는 게 목적이라서 협력 업체에 의뢰했다고 합니다. 업체는 10월22일부터 협력을 맺어온 아웃소싱 회사 '인풍글로벌'입니다.

지난 3일 오전 남양공업은 인풍글로벌에 사원 채용 공고를 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때 특별한 채용 요건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풍글로벌 쪽에서 남양공업 채용 공고를 작성한 사원은 입사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이었습니다. 권혁찬 인풍글로벌 팀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신입사원은 스스로 의욕에 가득 차 여러 업체의 모집 요강을 살펴보고 취업 준비생 카페 등에 올라온 댓글도 모아서 정리를 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정보들이 섞였고 '전라도x, 외국인x' 등의 문구가 채용 공고에 들어갔다고 주장합니다.

알바몬에는 보통 게시물을 올리면 처음에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대기중' 상태가 되는데요. 이 신입 직원은 따로 회사 내부의 결재도 받지 않고 게시물을 '대기중' 상태로 올렸다가, 이 게시물이 알바몬에서 바로 유료 결제가 되면서 잠깐 동안 전체 공개가 됐다고 합니다. 권 팀장은 "수정할 내용이 있어서 다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게시물로 전환을 하던 사이 채용 공고 화면이 캡처된 사진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공개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영세한 외주 업체의 경력 짧은 신입사원의 실수라는 말이 되는데요.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캡처된 화면에 이 신입사원의 전화번호가 함께 공개되면서 욕설이 담긴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계속 걸려 오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인터넷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올리면 인풍글로벌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오는데, 이 신입사원은 남양공업 쪽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남양공업의 이 팀장은 "채용 공고 내용 중 지원 자격뿐 아니라 급여 등의 내용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사전에 이 내용을 봤다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남양공업에는 8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안산이라는) 지역 특성상 직원 중 절반이 서울·경기 수도권 출신이고 논란이 됐던 전라도 출신 직원은 10% 정도"라고 합니다. 남양공업 쪽도 억울할 법하지만, 외주업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 신입사원이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 이용자라는 의심이 나옵니다. 권 팀장은 이에 대해 "해당 신입사원은 일간베스트가 일베인 줄도 몰랐다"고 전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모호합니다. 하지만 '전라도 출신 지원 불가' 공고가 나갔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남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겠지요. 그런데, 정말 신입사원의 과도한 의욕이 빚은 실수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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