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경험이 지능 범죄로..최악의 보이스피싱 조직

정승욱 2014. 11. 19. 19: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이버범죄수사대 경험 악용검찰, 조직원 21명 지명 수배

"저축은행 심사팀의 이○○라고 합니다. 저희 쪽 대출 진행하셨는데 지금 마무리가 안 되셔서 원래 어제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아침 미팅에서 고객님이 안건으로 올랐습니다. 우선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번호 7자리 확인 부탁하겠습니다." 저축은행에 1000만원 대출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김모씨는 이튿날 저축은행 대표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귀가 번쩍 뜨였다.

심사를 다시 하니 대출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김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요구한 인지세, 보증보험료 등 170만원을 보냈다가 그대로 날렸다.

김씨처럼 피해를 본 사람은 수만명, 액수는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조직원들은 번갈아 전화하며 대출 수수료, 보증보험료, 인지대, 신용조회 삭제비 등 명목으로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가로챘다.

4000만원 피해를 본 50대는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이처럼 치밀하고 대담한 수법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보이스피싱을 수사한 전직 경찰관 박모(42)씨의 '작품'이었다.

박씨는 2008년 비위로 해임됐으며 사이버 범죄수사대에서 보이스피싱 수사를 한 경험과 인맥을 활용해 조직을 결성했다. 자신이 수사한 피의자 3명(2명 구속기소·1명 기소중지)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

박씨는 저축은행 대출을 가장한 보이스피싱의 '원조' 격이다. 일부 조직원은 이런 유의 유인 전화 중 70%가량은 자신들이 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서울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현직 경찰관은 조직원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고 조직원들의 경찰 수배 상황을 알려준 사실도 적발됐다.

의심하는 피해자에게는 여신금융협회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상담 직원의 사진을 이용해 위조한 주민등록증 사본을 팩스로 보냈다. 해외에서 건 전화였지만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찍히는 수신번호는 '1588'로 시작했다.

광주지검 형사 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조직원 26명을 구속기소하고 수배조회를 해준 경찰관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전직 광고모델, 모델의 오빠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전직 여행사 본부장 등 다양한 경력의 조직원들은 자금 총책, 필리핀·중국 현지 사장, 전화유인책, 환치기상 등 역할을 분담했다. 검찰은 필리핀에 있는 박씨 등 조직원 21명을 지명수배하고 50여명을 추적하고 있다.

이들 조직원은 저축은행 대출이 거절된 신청자의 명단을 중국 해커를 통해 입수해 범행에 활용했다.

광주지검은 "이들은 전직 경찰 간부로서 수사 경험을 범죄에 악용하였고 저축은행 대출을 가장하기 위해 은행직원 신분증을 위조하기도 했다"면서 "매뉴얼까지 만들어 조직원을 교육시킨 후 범행에 투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불법 이득금으로 박씨의 동생은 가족 명의로 30억원대 건물을 사들이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박씨가 만든 보이스피싱 조직이 지금까지 적발된 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로 보고, 다른 피해자나 조직원이 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